히말라야의 기(氣)를 청소년에게 쏟는 엄홍길 대장
  • 노진섭 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2.21 09:18
  • 호수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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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엄홍길 “아이들과 자연에서 뒹구는 재미에 빠졌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隊長)을 잘 아는 지인은 엄 대장을 “자연을 닮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그는 아이들과 자연에서 뒹구는 재미에 빠졌다”고 했다. ‘히말라야 16좌(座)를 등반한 세계적인 산악인이 아이들과 자연에서 뒹군다?’ 기자의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람들은 고산(高山)을 내려온 지 10년이 넘은 그를 여전히 ‘엄홍길 대장’이라고 부른다. 20년 넘게 따라붙은 등반대장(登攀隊長)이라는 호칭이 쉽게 떨어질 리 없다.

 

엄 대장을 만난 때는 지난해 늦가을이었다. 세 차례 만나면서도 만추(晩秋)를 만끽할 틈은 없었다. 지난해 유독 청소년 살인·폭행 사건이 많아 자연스럽게 청소년 문제가 화두였다. 그는 아이들과 자연에서 뒹구는 이유를 설명했다.

 

“요즘 상상도 못할 청소년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집단폭행이나 살인을 저지를 수 있나. 청소년기는 에너지가 많을 땐데, 이를 가두고 묶고 눌러두니 폭발한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학교가 아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범위에 한계가 있다. 체험을 통한 인성교육이 있어야 한다. 나는 경험으로 해답을 얻었다. 인간의 본성을 정화하고 맑고 순수하게 유지하려면 자연이 필요하다. 산이 아니어도 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이 야외에서 활동하도록 유도하면 된다.”


 

중학생·대학생과 산길로, 휴전선 길로

 

그는 매달 한 차례 중학생들과 산에 오른다. 2012년부터 그랬으니 올해로 6년 차다. 서울 강북구청의 요청으로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청소년 희망원정대’를 꾸린 것이 시발점이다. 그는 매년 구내 각 중학교 교장이 추천한 학생 60명과 매달 가까운 산에 오르며 그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여준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는 병영캠프나 1박2일 등반을 하며 말 그대로 자연에서 뒹군다. 그는 평일 아침 시간에는 휴대전화를 꺼두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새벽부터 조찬모임이니 강연이니 하며 불러낸다. 과거보다 더 바빠졌지만, 아이들과 자연에서 뒹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전국 시·도 교육청이 지역 초·중·고 학생들에게 야외에서 뒹굴 기회를 주면 좋겠다. 서울 강북구 중학생들과 자연에서 지내보니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소위 문제아라고 해도 행동과 말이 부드럽게 변한다. 산 정상에 오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휴대전화보다 친구와 자연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깨닫는다.”

 

엄 대장은 대학생들과도 뒹군다. 2013년부터 매년 여름 무렵, 보름 동안 대학생 100명과 휴전선을 따라 350km를 걷는다. 이 행사 명칭 ‘DMZ평화통일대장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엄 대장은 대학생들과 고락(苦樂)을 같이하며 분단 한국의 현실을 알린다.

 

“학생들은 텐트와 군부대에서 자고 먹으면서 동료애와 안보의식을 배운다. 학생 한 명이 1km를 걸을 때마다 100원씩 적립되는데, 그 돈은 통일기금으로 기부한다. 폭우가 쏟아져도 하루 30km 정도 걸어야 하므로 학생들은 극기와 도전정신을 체험한다.”

 

‘엄홍길’은 우리 사회에서 도전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그런 사람이 아이들과 함께 뒹구니 이만큼 생생한 도전정신 교육도 없겠다 싶다. 이쯤 되자 기자의 비판의식이 고개를 들었다. 성공한 사람이니까 도전을 강조할 수 있지 않은가. 실패한 자는 도전을 무모하게 여긴다. 도전이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할지 아무도 모르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도전을 강요하는 게 옳은 일일까.

 

“나는 성공과 실패를 모두 경험했다. 사실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그래서 성공하려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를 안다. 예컨대 8000m급 산에서는 눈사태·크레바스 등 자연현상으로 인한,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이 두려움이다. 하지만 그 죽음을 두려워하면 결코 산의 정상을 밟지 못한다. 두려운 마음이 생기면 사고가 나거나 누군가는 죽는다. 사실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가슴속에서는 포기할까, 도전할까 갈등이 소용돌이친다. 포기를 택하면 실패만 있고,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22년 등반 인생 동안 수십 차례 실패를 맛봤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도전했다. 그의 얘기는 계속됐다.

 

 

원망·실패를 긍정의 힘으로 극복

 

“고백하건대, 에베레스트에서 2차례 실패했을 때 산악인의 꿈을 포기하고 싶었다. 평범한 삶을 택했다면 무난하게 살았을 것이다. 안나푸르나에서는 4차례나 실패했다. 다른 사람은 한 번 만에 정상에 오르는데 말이다. 같은 산에서 그만큼 실패하면 뭐를 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하는 것마다 안 되고 재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바닥, 아니 그 밑까지 경험하면서 두려움이 사라졌다. 최악을 맛보면서 긍정의 힘이 생겼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반드시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이 성공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살면서 목표를 정해야 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엄 대장의 말을 듣다 보면 ‘이 사람은 긍정적이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도전 아이콘’보다 ‘긍정 아이콘’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그 긍정적 습관은 엄 대장이 어릴 때부터 몸에 뱄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난 엄 대장은 3살 때 어머니의 등에 업혀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원도봉산 골짜기로 이사했다. 당시 도봉산을 경기도에서는 원도봉산이라고 불렀다. 그의 가족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등산객을 상대로 장사하며 입에 풀칠했다. 어린 엄 대장은 학교에 가려면 약 1시간 산길을 내려가야 했고, 수업을 마치면 싫어도 산길을 거슬러 올라야 집에 갈 수 있었다. 도시에 사는 친구 집에 갔을 때, 산골짜기에 사는 게 싫어서 부모를 원망했다.

 

“원도봉산은 어머니 같은 산이다. 나를 히말라야로 인도해 준 모산이다. 지금도 가끔 간다. 그 산은 어릴 적 놀이터였다. 겨울에는 토끼를 잡으러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했던 적도 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토끼를 잡으러 갔다가 눈 속에서 길을 잃었다. 어린 생각에 차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계곡을 타고 내려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산에 적응했고 산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그 산길에서 생필품을 져서 날랐다. 이런 경험들이 산을 오르기 위한 정신적·신체적 적응 훈련이었던 셈이다. 그런 공간을 제공해 준 부모님이 고맙다.”

 

이렇게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고산 등반을 끊은 지 11년 차다. 아무리 국내 산을 자주 찾는다지만 몸이 근질거릴 게 뻔하다.

 

“문득 산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신은 나에게 여기까지 허락한 것 같다. 더 욕심내면 신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히말라야 등반 때의 얘기를 슬쩍 꺼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산 이야기보따리를 풀고야 말았다. 그는 히말라야 고봉 가운데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산으로 안나푸르나를 꼽았다. 그 산은 엄 대장에게 가장 깊은 시련을 안겨준 산이다.

 

 

다시 가고 싶은 산 ‘안나푸르나’

 

“4번째 안나푸르나 도전 중에 7600m에서 오른쪽 다리가 180도 꺾이는 사고를 당했다. 30m만 가면 정상 도전을 위한 마지막 캠프가 있는 곳에서 셰르파(고산 등반 안내인)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순간적으로 그 셰르파의 몸에 감겨 있던 줄을 잡았는데, 순식간에 그 줄에 엉키면서 나까지 딸려갔다. 죽는다는 생각이 스쳤다. 30m 아래로 추락했는데 다행히 바닥에 눈이 있어서 살았다. 그런데 오른쪽 다리가 빠져 덜렁거렸다. 2박3일 줄에 매달려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온 것만도 기적 같았다. 진통제를 먹어도 얼마나 아픈지, 동료들에게 다리를 잘라달라고 울부짖었다. 경희의료원에서 나를 수술한 의사는 등산은 고사하고 걷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수술 후 3개월까지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았다. 매일 집 근처 목욕탕 물속에서 다리를 움직였고, 병원 물리치료도 열심히 받았다. 몇 개월 후 무릎이 조금이나마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걷기도 하고 등산도 하지만, 발목은 지금도 움직일 수 없어서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발목이 안 움직이니 산에 오를 때 오른쪽 발을 까치발처럼 해서 걷는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산에 잘 오르는 이유가 까치발 때문인 줄 알고 나처럼 산에 오르는 흉내를 내다가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한다(웃음).”

 

그는 수술 10개월 만에 안나푸르나에 또 도전했다. 멀쩡한 몸으로 4번 실패하고 비정상의 몸으로 5번 만에 성공한 그는 정상에서 서럽게 울었다. 엄 대장은 그 산에서 선배 산악인, 여성 산악인, 셰르파 등 동료 여럿을 잃었다. 그런 산을 그는 또 가보고 싶다고 했고, 그의 산 이야기는 쉼이 없었다.

 

“고산 등반에는 큰돈이 필요하다. 입산비·인건비·식비 등 모두 돈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다. 등반대가 10명이면 현지 포터(짐꾼)는 200~300명이 필요하다. 이들이 한 달 정도 먹을 음식과 등산 장비 등 짐이 어마어마하다. 이런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과거에는 집을 팔아 충당하기도 했다. 그러니 등반에 성공하려는 욕심이 생긴다. 욕심을 내면 사고가 예견되는 상황에도 판단이 흐려진다. 그러면 사고가 나거나 누군가 죽는다. 자연 앞에서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산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떠한 노력을 해도 실패한다. 8000m 이상은 신의 영역이어서 신이 허락해야 8000m 이상까지 오를 수 있다.”

 

그는 산이 살아 있으며 기(氣)가 있다고 믿는다. 그가 산에서 큰 나무나 바위에 이마를 대고 기도하는 것도 기를 느끼기 위함이다. 엄 대장은 술을 좋아하는데, 그의 건배사도 ‘기’다.

 

“모든 자연물에 기운이 있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다고 믿는 것이다. 산에 가면 머리가 맑아지고 힐링되는 게 산의 기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 정상은 기가 모이는 곳이다. 그리고 나무가 한자리에서 100년, 500년 있으면 보통의 생명력이 아니다. 그쯤 되면 그냥 나무가 아니라 나무신이다. 그런 나무에 머리를 대면 에너지가 느껴진다. 묘한 모양의 바위도 기가 넘친다.”

 

 

“다시 태어나도 산에 오르고 싶다”

 

그렇다고 해도 목숨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그 높은 산을 오를 이유는 없지 않은가. 엄 대장 자신도 다시 태어난다면 그 생고생을 다시 하지 않을 듯했다. 그래서 물었다. 현재 삶에 만족하는지, 다시 태어나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말이다.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8000m급 산은 나 개인의 목표이기도 했지만, 후배 산악인의 길을 열어줄 필요도 있어서 올랐다. 내 삶에 후회 없고 만족한다. 고통스럽고 위험할 때는 후회할 때도 있었지만, 다시 태어나도 산에 오르는 삶을 살겠다.”

 

엄 대장은 22년 등반 인생에서 받은 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풀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그 긴 세월 동안 엄 대장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기다렸던 가족을 위해 좋은 아빠, 남편으로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에게 취미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죄다 운동이다.

 

“겨울에는 스키와 스노보드를, 여름에는 수상스키를 탄다. UDT(해군 특수부대)였기 때문에 스쿠버다이빙도 한다.”

 

그 운동을 가족과 함께 즐기냐고 재차 물었더니 엄 대장은 겸연쩍어하며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과 두어 차례 히말라야에 가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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