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 “벼랑 끝에 내몰려 네덜란드까지 왔다”
  • 네덜란드 에데 = 이용우 시사저널e. 기자 (ywl@sisajournal-e.com)
  • 승인 2018.03.05 16:42
  • 호수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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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세월호 유가족과 선조위, 진실 밝히려 네덜란드 찾아…해양연구소 ‘마린’에서 3차례 걸쳐 모형실험 진행​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이역만리 네덜란드까지 와야 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와 세월호 유가족들이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MARIN)에서 세 차례 모형실험을 진행하며 한 말들이다. 표현만 달리했을 뿐 비슷한 감정들이 같은 뜻을 전달했다. 특히 유가족들은 실험 도중, 모형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지켜보며 고통스러워했고, 수차례 무너지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실험 광경을 바라봤다. 네덜란드 마린의 실험은 그렇게 매일 밤 9시를 넘겨가며 며칠째 계속됐다.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에서 진행한 세월호 모형실험은 세월호 사고 당시를 직접 재연해 진실을 찾기 위한 작업이다. 지금까지는 사고 당시의 급회전과 기울기의 원인, 최초 해수 유입과 침수 과정을 선체를 보지 않고 자료에 의존해서만 분석했다. 하지만 세월호가 인양된 후 선조위는 선체 조사를 통해 내부 구조를 모두 확인했다. 이를 바탕으로 네덜란드에서 모형실험이 진행됐다.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 직원과 유가족들이 2월19일(현지 시각) 네덜란드 마린에서 진행된 세월호 시뮬레이션에 참가했다. © 시사저널 이용우



세월호 유가족 “누구도 못 믿는 의심병 생겨”

선조위와 마린은 1월22일부터 26일까지 네덜란드 바헤닝언에서 세월호 자유 항주(航走)실험을 했다. 세월호의 빠른 침몰 원인을 찾기 위한 1차 실험이다. 세월호 크기를 25분의 1로 축소한 모형 배로 길이 170m, 너비 40m의 대형 수조에서 진행됐다. 선조위와 마린은 복원성과 타 각도를 바꿔가며 200회 이상 실험을 진행했다. 복원성은 배가 기울었다 다시 돌아오는 힘을 말하고, 타(舵)는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키를 말한다.

2차 실험은 2월19일부터 22일까지 네덜란드 에데(Ede)에서 진행됐다. 세월호 시뮬레이션과 침수 모형실험이다. 시뮬레이션 실험은 세월호 조타실과 비슷하게 꾸민 실험실에서 사람이 직접 타각을 변형시켜 세월호의 급회전을 구현하는 게 목적이다. 아울러 침수 모형실험도 진행됐다. 세월호를 3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으로 진행됐다. 세월호는 사고 당시 5시간 이상 버틸 것이란 예상과 달리 1시간40분 만에 빠르게 침몰했다. 해수의 유입이 어디에서 발생해 침몰했는지를 찾는 것이 실험 목적이다. 이후 3차 실험은 지금까지 진행한 실험들에서 나온 결과를 가지고 다시 자유 항주실험을 한 것으로, 2월28일부터 3월2일까지 진행됐다.

이번 세월호 모형실험에 참석한 유가족 정성욱 세월호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故 정동수군의 아버지)은 “4년을 보내면서 누구도 믿지 못하는 의심병이 생겼다. 정부가 가족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선조위와 ‘세월호 특조위’를 믿고 가야 하는데 저희 눈으로 보고 확인하지 못하면 그걸 또 믿지 못하게 된다”며 “이런 상황에까지 내몰렸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것이다. 이렇게 네덜란드까지 직접 오게 된 이유다”라고 말했다.

마린은 세월호 침수실험을 통해 물이 어떻게 유입되고 침몰되는지 조사해 세월호 침몰 원인을 분석할 계획이다. © 시사저널 이용우


김광배 세월호가족협의회 사무처 팀장(故 김건우군 아버지)은 “책임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실험을 지켜봤다”며 “세월호가 인양된 후부터 부모님들이 교대로 세월호를 지키고 있다. 아직 결과를 말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참사의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가족들의 말대로 세월호 진상규명은 지금까지 잘못된 정보와 추측으로 인해 진실과 다소 멀리 있었다. 이번 네덜란드 현지 실험은 그 잘못된 추측들을 바로잡고 진실규명에 한걸음 더 나아가는 데 그 의미가 있었다. 침수 모형실험에서 선조위가 밝혀낸 것도 최초 바닷물이 들어온 위치와 세월호의 해수 유입 각도다. 기존에 해양플랜트연구소(KRISO)는 세월호의 최초 해수 유입 시기를 선체가 약 30도 기울었을 때로 봤다. 이 자료를 토대로 재판까지 진행됐다. 한 선조위 관계자는 “세월호를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은 채 재판이 진행된 것 또한 잘못됐다”며 “인양 후 선체를 조사하고 지금 같은 실험을 통해 세월호의 사고 원인을 밝혔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마린은 30분의 1 크기로 제작한 세월호 모형을 대기압 또한 30분의 1로 줄인 감압 수조 안에서 실험했다. 이번 실험에서 모형배의 기울기가 45도 이상 됐을 때 침수가 시작됐다. 물은 화물창 C데크 통풍구와 창문에서 유입됐다. 통풍구를 통해 유입된 물은 차오르면서 기울기를 재촉했다. 이어 창문까지 차오른 물은 급격하게 내부로 유입됐고 배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후 배는 세월호의 침몰 모습대로 전복됐고 배 끝머리만 수면 위에 드러냈다. 권영빈 선조위 1소위원장은 “기존에 나온 정보들은 선체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나와 추측성이 많았다”며 “선조위는 세월호 인양 후 선체를 조사해 얻은 정보를 통해 직접 실험을 진행했다. 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행크 봄 세월호 침수실험 총괄책임자가 세월호 모형 옆에서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용우

 

 

 

실험 과정서 예상치 못한 변수도 발생

선조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급선회에 의한 횡경사(기울기) 발생과 침수에 의한 침몰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네덜란드 현지 실험도 기존 사고에 맞춰 항주실험과 침수실험이 반복 진행된 것이다. 1차 항주실험을 통해 세월호 당시의 기울기와 복원성 값(GM·횡메타센터 높이)을 찾고 2차 침몰실험을 통해 과연 해수가 어디로 유입됐는지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김창준 세월호 선조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횡경사 발생과 침수에 의한 침몰로 볼 수 있다”며 “횡경사가 발생해도 침수가 없었다면 배는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안에 복합적인 원인들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험 도중 선조위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곤 했다. 선조위 조사관들은 세월호 인양 후 닫혀 있어야 했던 기관구역의 수밀문들과 맨홀 등 개구부들이 대부분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네덜란드 2차 침수 모형실험에 적용했다. 그 결과, 침수실험에서 세월호 침몰 모습을 똑같이 구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조위는 반대로 모든 개구부를 닫고 침수실험을 진행하지 못했다. 개구부가 닫힌 상태에서도 선체가 유지되는지 실험해야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선조위는 이 실험을 3차에서 진행해 결과를 도출하기로 했다.

실험 과정에 대한 논란도 선조위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자유 항주실험과 침수 모형실험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선박 복원성 지표인 GM이 공개되지 않은 것이다. GM은 배가 수면에 떠 있을 때 파도나 바람 등에 의해 기울어졌다가 오뚝이처럼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려는 복원력을 말한다. GM이 높을수록 세월호는 복원성이 높게 되고 사고 원인이 된 급회전과 기울기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세월호 특조위가 외부 전문가를 통해 도출한 GM은 0.4m 이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0.6~0.7m 이상으로 본다. 두 GM 모두 세월호 당시 사고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높은 수준이다. 이 값으로는 세월호의 기울기와 급회전을 구현하기 어렵다.

합동수사본부 전문가 자문단도 세월호가 급격하게 기울고, 오전 8시49분40초부터는 8초 동안 물리적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선회 각도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자체만으론 구현하기 힘든 회전을 했기 때문이다. 마린과 선조위도 마찬가지였다.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세월호 시뮬레이션에서 기존 AIS 항적을 똑같이 구현하기 어려웠다. GM을 낮춰도 실제 세월호가 보인 급회전은 시뮬레이션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에 자유 항주실험이 3차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GM은 적재 화물과 선체의 무게중심을 계산해 나오는 수치니만큼 GM을 과도하게 낮추려면 근거가 있어야 한다. 선조위가 항주실험에 적용한 GM에 대한 설명이 차후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2차 세월호 시뮬레이션에서 낮은 GM을 설정하고 실험이 진행됐지만, 기존 항적보다 300m가량 밑으로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세월호 모형실험 총괄책임자인 행크 봄 마린 대표는 “(세월호 급선회에)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크다”며 “다만 실험이 남아 있기 때문에 기존 항적과 비슷하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조위 관계자는 “실험이 진행되는 중이다. 실험 내용을 모두 공개하기 어렵다”며 “차후에 실험 결과가 공개될 것”이라고 전했다.

선조위가 실험에 적용한 타각 변화도 공개 대상이 될 수 있다. 세월호 타각 변화는 기존 항적과 레이더 자료를 바탕으로 사용해야 한다. 세월호가 사고 직전까지 타각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항적을 무시하지 않고선 타의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선조위 관계자는 “조타수의 진술이나 기존 AIS 항적을 모두 신뢰하기란 어렵다”고 설명했다.

세월호 시뮬레이션에서 선체가 약 38도 기울기를 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용우



선조위 “8월에 세월호 최종보고서 나올 것”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에서 진행된 실험 결과는 오는 4월께 선조위에 제출된다. 선조위는 이 보고서와 추가적인 선체 조사를 통해 8월께 세월호 사고에 대한 최종 조사보고서를 내놓을 계획이다. 다만 불필요한 의혹이 제기돼 조사에 방해가 될 우려가 있어 마린 보고서는 공개하지 않고 8월 최종보고서 작성에만 사용할 예정이다.

김창준 선조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여러 의혹이 나왔고, 국가적 혼란과 분란이 야기됐다. 선조위 운영 방침은 팩트는 공개하되 해석은 최후 보고서에 담자는 것이다”며 “마린의 실험 결과는 해석에 가깝다. 자칫 우리가 피하고자 했던 사전 공개가 될 우려가 있다. 선조위 조사 보고서는 8월쯤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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