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만 관심 갖는 ‘일자리 만들기’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3.27 22:50
  • 호수 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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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여전히 현장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 나와

 

“현 정권에서 ‘대통령이’ 일자리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우려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그 의지가 깎이고 깎여 도통 현장까지 닿지 못한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는 한 노동계 측 민간위원의 말이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일 만에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던 대통령의 다짐과 팍팍한 노동시장 개선을 향한 국민적 호소의 산물이었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위원장을 맡았고 곧장 청와대 집무실에 실시간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했다. 돌아가는 일자리 현황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였다.

 

‘초반 러시’가 너무 강했던 걸까. 최근 노동계를 중심으로 일자리위원회가 동력을 급격히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존재감도 처음과 같지 않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협력팀장은 “초창기 때와 달리 별다른 활동이 없어 보인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기자님이 물어봐 달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60페이지 분량의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 이후 그렇다 할 아웃풋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상 일자리위 수장이었던 이용섭 부위원장이 지난 2월 지방선거 출마로 사퇴하면서 이에 대한 아쉬움도 커지고 있다. 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국민 일자리는 안 찾고 일자리위를 발판 삼아 본인 일자리를 찾아 나선 셈”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일자리위 측은 이 부위원장이 기초 인프라 토대를 다지는 데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설명했다. 이도영 일자리위 정책개발부장은 “일자리 수석도 따로 계시기 때문에 바깥에서 우려하는 업무 공백은 없다”면서 “조만간 좋은 인물로 공석이 채워지면 2기에 더 동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자리위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3배수 정도로 부위원장 후보를 뽑아 어느 정도 검증을  마무리 지은 상태다.

 

정부 출범 초인 2017년 5월24일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이 청와대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한 일자리 상황판 모니터 앞에서 설명회를 가졌다. ©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의지는 100% 신뢰, 실무자 의지 약해”

 

일자리위 출범 후 전체회의는 지난 3월15일까지 총 다섯 차례 열렸다. 이 중 문 대통령은 세 차례 참석했다. 회의는 정부·경영계·노동계 등 각계 위원들이 참석하는 가운데, 각 분과에서 합의한 사안을 총괄하고 검토한다.

 

동등하게 발언권이 주어지지만, 평균 2시간 정도 진행되는 회의에서 위원 수십 명의 발언 시간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청년 대표 위원으로 참여해 온 문유진 청년복지국가네트워크 대표는 “참석 위원들이 한마디 하면 회의가 끝나 숙의나 토론 과정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회의 의제도 불과 하루 이틀 전에 분과로 주어지는 탓에 충분한 회의 준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장 최근 열린 5차 회의의 경우, 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의 정책 보고가 주를 이루는 바람에 일자리위원회 참석위원들은 ‘입도 뻥긋 못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자리 대책 보고대회와 함께 회의가 진행된 탓에 이들의 발언권이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자리위 노동계 민간위원으로 활동 중인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는 “5차 회의를 한 후 민간위원들 사이에 일자리위 회의 방식에 대한 불만이 오히려 증폭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날 각 부처에서 보고한 안건들을 봤을 때, 그간 일자리위 내에서 나온 의견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도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합의가 좀체 현장까지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기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이를 현실화해야 하는 담당 부처 실무자들의 의지를 느낄 수 없다는 게 노동계 시각이다. 조돈문 대표는 “회의에 참석한 결과, 일자리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는 100% 신뢰한다. 그런데 이를 구체화하고 집행해야 하는 행정부처 관료들의 의지는 매우 박약하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 당선 후 노동계는 그가 내세웠던 일자리 공약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수십 년 지속돼 온 이윤주도성장을 소득주도성장 패러다임으로 바꾸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에도 큰 의미를 뒀다. 오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전환 등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보인 의지와 관련 공약만 임기 내 제대로 지켜도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 상당부분이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일자리 행보는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천공항을 찾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는 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실현을 위한 행보에 나섰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고 각 공공기관에 대한 철저한 감시·점검이 부족해 무기계약직만 더욱 양산할 거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게다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 따르면, 일자리위에서 발표한 ‘일자리 중심 국정운영 체계 구축방안’에서도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세부 강령들은 과거 이윤주도성장 내용들을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다수다. 이와 관련해 일자리위에 참석하는 한 민간위원 역시 “대통령의 메시지와 방향을 각 행정부처와 실무자들이 제대로 구체화시켜내지 못하고 있다”며 “대통령과 대통령 공약을 집행하는 행정부처들 사이의 의지나 인식 차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괴리 때문에 청년실업 등 일자리 문제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 역시 지난 1월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일자리점검회의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이 더딘 점을 꼬집으며 “이에 대한 의지가 각 부처에 제대로 전달됐는지 의문”이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일자리 컨트롤타워로서 더 강한 힘 가져야”

 

일자리위가 매달 통계청의 자료를 받아 ‘일자리 지표’를 업데이트하는 일자리 상황판은 정부 출범 후 크게 긍정적인 수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실업률은 2017년 5월부터 3% 중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엔 4.6%를 기록하기도 했다. 전년 동월과 대비해 소폭 떨어졌지만 1년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청년 실업률 역시 8%대에서 10% 사이를 불규칙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다소 정체된 지표상 수치에 대해 일자리위원회 실무를 담당하는 일자리기획단 측과 노동계는 각기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장신철 일자리기획단 부단장은 “일자리라는 게 열심히 한다고 곧장 확 느는 게 아니고 작업 경로가 워낙 복잡하다”면서 “지금처럼 하면 올 연말부터 성과가 조금씩 지표에 반영돼 보이리라 예상하고 있다”고 예측했다. 일자리기획단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일부 우려와 달리 지난 1월 기준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과 비교해 33만 명 이상 늘어난 데 대해서도 큰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노동계의 전망은 이보다 부정적이다. 정책을 구체화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물론, 기간제법 등 필요한 법률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데도 상당한 난항을 겪게 될 것이란 예상이다.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는 “철옹성 같은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이후 관련 법률안이나 예산 통과가 어렵겠지만, 애초에 문 대통령이 일자리 공약을 내놓은 작년 대선 때도 지금과 같은 국회 의석 분포였다”면서 “이런 제약을 극복해 낼 방법은 충분히 고민했을 것이고 또 고민해 놨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일자리위가 국회뿐 아니라 공공기관 및 민간기업에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협조의 목소리를 내야, 5년 임기 내 조금이라도 일자리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 부위원장이 이끌 2기 일자리위는 무엇보다 ‘일자리 정책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하다. 일자리위는 고용노동부·여성가족부·공정거래위원회·중소기업청 등 주요 부처를 총망라한 기구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위 출범 당시부터 “일자리위가 정부 일자리 정책의 컨트롤타워가 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출범 이후 줄곧 부처 간 업무 중복에 대한 문제가 제기돼 왔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나 최저임금위원회 등 다른 위원회들과의 유사성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이도영 일자리기획단 국장은 “일자리위 산하 각 분과 소위나 전문위원, TF팀 등에서 다양한 정책 개발에 앞장서고 있으며 관계부처 간 조율도 원활히 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계나 시민사회단체 일부는 다른 부처 및 위원회들과 차별화된 일자리위만의 역할이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좀 더 뚜렷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위해선 향후 일자리위의 힘이 안팎으로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안에선 다른 부처, 밖에선 일자리 정책을 반영할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 대한 일자리위의 권한이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우리가 회의장에 모여 합의하는 모습만 보이고 마는 ‘이벤트’가 아니라면, 일자리위가 좀 더 강한 힘과 강제성을 갖고 조직을 총괄하고 현장의 정책 이행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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