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과 댓글러들의 전쟁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4.25 15:33
  • 호수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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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동거인 김아무개씨의 ‘학력 논란’ 정리하고, “과도한 명예훼손 표현은 유죄” 벌금형 선고

 

지난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자신과 동거인 김아무개씨를 공개 비난한 네티즌들을 고소한 사건에 대한 1심 재판이 속속 마무리되고 있다. 작년 2월부터 최 회장은 일부 네티즌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12월 최 회장이 국내 한 일간지에 불륜 사실을 털어놓으며 시작됐다. 이후 네티즌들은 특정 사이트에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두 사람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보다 못한 최 회장 측은 이들의 비난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경찰에 고소한 것이다. SK 측은 “도저히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 폭설과 명예훼손이 수차례 반복되는 것도 모자라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을 보다 못한 최 회장과 김씨가 세간의 비난을 무릅쓰고 고소한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 사진=연합뉴스


 

SK “최 회장 동거인 비난 도 지나쳐”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50여 건 재판의 쟁점은 크게 3가지다. 네티즌들은 △김씨가 최 회장이 2015년 광복절특사로 풀려나기 한 달 전 이를 사전에 알고 SK그룹 전용기를 타고 미국에 건너가 최 회장에게 선물할 옷 등을 쇼핑했다는 것 △언론에 연세대 음대,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했다고 한 학력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 △김씨 집안이 대단한 것처럼 포장돼 보도된 것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김씨의 ‘학력’ 문제가 쟁점이다. 가정주부들로 구성된 한 사이트의 네티즌들은 “미국 한인 온라인 커뮤니티 미시유에스에이(USA) 등에 김씨가 연세대 음대와 이화여대를 다녔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서울 역삼동에 사는 이아무개씨는 “능력은 능력이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과거를 한국 재계 3위의 불륜남 회장만 감쪽같이 속이고, 연대 음대에 이대 대학원 서양화과, 대한민국 일류 예체대의 음대와 미대를 졸업한 최초”라는 내용의 글을 3차례나 올려 최 회장 측으로부터 피소됐다.

 

네티즌들의 변호를 맡은 강용석 넥스트로 대표변호사는 “최 회장의 공개가 있고 나서 국내 언론에 김씨가 이들 학교를 졸업했다는 기사가 일제히 실렸으며 내연녀 김씨는 미시유에스에이 등에 자신이 이들 대학을 졸업했다는 식의 글을 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의 스캔들이 공개된 2015년 12월말 재미 블로거 안치용씨는 “미국명이 ‘클로이’인 김씨는 SK가 운영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싸이월드와 미시유에스에이 등을 통해 자신의 근황을 전해 미국 현지에서 ‘뉴저지 싸이녀’로 불렸다”고 소개했다.

 

김씨의 학력 문제는 지난 2월 재판에서 가려졌다. 2월13일 서울중앙지법은 악플러 이씨의 글이 피해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검찰의 공소에 대해 “피고인(네티즌 이씨)의 댓글처럼 피해자(동거인 김씨)가 연세대 음대 및 이화여대 예술대학원을 입학 또는 졸업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1999년 9월~2001년 9월 이화여대 대학원 회화·판화 전공 석사학위 과정에 재적했다는 점과 2009년 3월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경영 석사 과정에 입학해 1년 만에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사실만 확인했다. 네티즌들의 주장처럼 연세대 음대를 다녔거나 이화여대 예술대학원을 졸업하진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외에도 김씨가 국내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연세대 음대 졸업은 사실무근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법원은 “피고인과 같은 일반인 입장에선 피해자(김씨)의 학력이 잘못 알려진 것은 아닌가 의심하고 의혹을 제기할 만한 충분한 여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피고인의 댓글 중 피해자 학력 자체에 대한 부분은 그 중요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이를 허위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에 참석한 피고소인 B씨는 “재판부가 ‘연세대 음대와 이화여대 미대 졸업을 증명할 서류를 내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최 회장 측은 중국 베이징중앙미술학원 졸업증명서와 1년짜리 MBA(경영학 석사) 졸업증만 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현재 김씨가 졸업했다고 주장하는 중국 미술전문대 ‘베이징중앙미술학원’의 정식 인가기관 여부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씨 측은 “북경중앙미술학원은 지난 1950년 4월 국립 북평미술전문학교와 화북대학3부 미술계열이 합쳐진 중국 최고 미술대학으로 수많은 화가를 배출했다”고 설명했다. 

 

일부일처제를 지키기 위한 시민모임이 2017년 7월 청와대 앞에서 최태원 SK 회장을 비난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 사진=일부일처제를 지키기 위한 시민모임 제공


 

법원 “김씨 연대 음대·이대 졸업 안 했다”

 

또 다른 쟁점인 전용기 사용과 관련해서도 SK 측은 김씨가 전용기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현재까지 탑승자 명단과 같은 구체적인 자료 제출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항공기 운항자의 ‘당시 운항에는 김씨가 동행하지 않았다’는 운항확인서를 증거로 제출한 상태다.

 

또 김씨의 모친이 두 번 이혼한 경력이 있다는 것을 비난해 피소된 임아무개씨 사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허위사실이 아닌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여러 차례 동거인 김씨 측에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증거자료로 낼 것을 요청했지만 김씨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물론 그렇다고 재판부가 네티즌들의 악플 자체에 대해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 재판부는 반복적인 악플 게재에 대해선 처벌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재판에 부쳐진 이씨에 대해 벌금 70만원을 부과했다. 대구지법 재판부도 재판에 부쳐진 피고인 임아무개씨에 대해 벌금 100만원을 부과했다. 재판부 판단을 요약하면 허위사실에 따른 것은 명예훼손은 아니더라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피해자를 비난한 것은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변호인 측은 공소에 있어 중요한 사실이 바뀐 이상 이번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변호를 맡은 강용석 넥스트로 대표변호사는 “검찰은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유죄를 인정했다는 것은 네티즌의 주장이 사실이란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강 변호사는 “현재 법원은 내연녀 김씨 고소와 관련된 1심 사건들 대부분에 대해 검찰에 ‘사실적시’로 공소장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변호인과 검찰 측 모두 법원의 판단에 불복, 항소한 상태다. 이번 판결에 대해 김씨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원은 “김씨가 SK 업무용 항공기를 탑승했다는 주장 등의 댓글들이 모두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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