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와 메시 10년 권좌에 도전하는 모하메드 살라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8.05.12 00:59
  • 호수 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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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는 축구의 神을 넘을 수 있을까

 

지난 10년간 세계 축구는 호날두와 메시의 시대였다. 신체 조건은 대조적이지만 그것을 장점으로 승화한 테크닉과 시즌 50골을 넘는 놀라운 득점력으로 무장했다. 시즌 30골만 넣어도 월드클래스라는 평가를 받는 상황에서 두 선수의 활약은 다른 차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언론과 팬들은 ‘메날두(메시+호날두)’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두 선수의 10년 권좌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것은 발롱도르 수상 내역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는 지난 10년간 두 선수가 정확히 5번씩 가져갔다. 역대 최다 수상자도 두 선수다.

 

‘메날두(메시 호날두)’의 시대에 모하메드 살라가 도전장을 던졌다. © EPA 연합


 

호날두와 메시를 쫓는 유일한 인간

 

호날두와 메시의 이런 특별한 경쟁은 신들의 대결, ‘신계’로 묘사된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둘의 경쟁에는 범접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2017~18시즌 한 선수가 새롭게 도전장을 던졌다. 리버풀의 공격수 모하메드 살라다. 

올 시즌 살라는 총 43골을 기록 중이다. 프리미어리그에서 31골,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11골, FA컵에서 1골을 넣었다. 호날두·메시와 함께 유럽에서 40골 이상을 기록한 3명 중 1명이다. 호날두와 메시는 각각 44골을 기록 중이다. 남은 시즌 동안 살라는 2경기, 메시는 3경기, 호날두는 4경기를 더 치른다. 가장 불리한 입장이지만 이런 경쟁을 해낸 것만으로 살라는 박수를 받고 있다. 앞선 세 시즌 동안 살라가 터트린 총 득점수가 43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살라의 가치가 더 빛나는 것은 단지 골만 많이 넣는 선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호날두와 메시처럼 경기를 지배하고, 결과를 바꾸는 영향력을 미치는 선수다. 올 시즌 살라가 가장 빛난 무대는 챔피언스리그다. 리버풀이 2007년 이후 11년 만에 결승에 진출하게 된 데는 살라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당초 리버풀은 잘해야 8강권이라는 평가였다. 실제로 8강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만났다. 당시 맨체스터 시티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리버풀에 승점 20점 차로 앞서며 우승 카운트다운에 들어선 상태였다. 대부분의 전문가가 맨체스터 시티의 우세를 점쳤지만, 살라가 결과를 바꿨다. 8강 1차전에서 1골 1도움으로 리버풀의 3대0 승리를 이끈 살라는 2차전에서도 동점골을 넣으며 2대1 역전승을 이끌었다.

 

AS로마와의 4강전에서도 빛났다. 1차전에서 2골 2도움으로 5대2 대승을 만들었다. 4강 1차전 후 살라는 대부분의 매체로부터 평점 10점 만점을 받았다. 골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모두 완벽했다.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살라의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 눈이 즐거울 정도였다. 리버풀은 2차전 원정 경기에서 2대4로 패했지만 골득실에서 앞서며 결승에 올랐다. 이제 리버풀과 살라를 기다리는 것은 레알 마드리드와 호날두다.

 

 

‘흙수저’ 살라가 신들의 시대를 끝낼까

 

사실 살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세계적인 유망주 출신은 아니다. 이집트 카이로 근교의 시골에서 태어난 살라는 축구를 배우기 위해 매일 버스로 3시간 넘는 거리를 오갔다. 16세에 재능을 발휘해 1부 리그의 엘 모카우룬과 프로 계약을 체결했다. 1년 뒤 프로 데뷔에 성공했지만, 그때까지는 발이 빠른 공격수에 불과했다. 행운과도 거리가 멀었다. 본격적으로 주전 자리를 차지한 2011~12시즌에는 경기장 내 폭력 사건으로 이집트 자국 리그가 조기 종료됐다.

 

낙심하던 살라에게 뜻밖의 기회가 왔다. 리그 공백기 중 이집트 23세 이하 대표팀 소속으로 유럽에서 가진 평가전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고, 스위스의 명문 FC바젤이 그를 주목한 것이다. 살라는 바젤의 러브콜을 수락했고, 만 20세가 되던 해 유럽 무대로 진출했다. 스위스는 빅리그와는 거리가 멀지만 바젤은 챔피언스리그에 꾸준히 출전하는 팀이었다.

 

그것이 살라에겐 또 다른 기회가 됐다. 유럽 무대 적응을 마친 2년 차에 살라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첼시를 상대로 한 조별리그 2경기에서 맹활약했다. 첼시는 살라에게 매력을 느꼈고, 2013년 여름 이적료 160억원에 영입했다. 하지만 발 빠른 공격수가 주전으로 살아남기에는 첼시의 수준이 높았다. 첼시에서 2년간 19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는 데 그쳤다. 살라는 임대를 통해 활로를 모색했다. 이탈리아 세리에A의 피오렌티나로 임대를 떠난 그는 반 시즌 동안 26경기에서 9골을 넣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이탈리아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한 살라는 2015~16시즌에는 로마에서 임대 생활을 했다. 15골을 터트리며 실력을 검증하자 로마는 190억원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그를 완전 영입했다. 2016~17시즌 살라는 41경기에서 19골 15도움으로 로마에 보답했다. 세리에A에서 재기한 살라를 주목한 것은 리버풀이었다. 1년 전 로마가 첼시에 지불한 이적료의 3배가 훌쩍 넘는 640억원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살라를 영입했다. 리버풀의 구단 최고 이적료 기록이었다.

 

리버풀이 살라를 영입한 이유는 위르겐 클롭 감독의 게겐 프레싱 전술에 최적화됐다는 판단에서였다. 클롭 감독은 공격과 수비 라인을 바짝 끌어올려 전방에서 강한 압박을 가해 공을 뺏은 후 곧바로 역습에 나서는 게겐 프레싱으로 전술의 유행을 바꾼 인물이다. 그는 빠른 발과 골, 도움 모두 능한 살라가 공격의 한 축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살라의 잠재력은 그 이상이었다. 수비가 거친 이탈리아 무대에서 살아남으며 축구에 눈을 떴고, 골 결정력도 한층 강화됐다. 사디오 마네, 호베르투 피르미누와 함께 공격 트리오를 구성했다. 정통 스트라이커가 아닌 윙포워드임에도 수시로 위치를 바꾸며 득점 찬스에서 골을 책임졌다.

 

이미 잉글랜드에서 개인이 수상할 수 있는 트로피를 싹쓸이한 살라는 이제 발롱도르에도 도전한다. 단판 승부로 펼쳐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호날두와 레알 마드리드를 넘어선다면 더 강렬한 임팩트를 줄 수 있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여서 챔피언스리그 비중이 예년보다 높진 않다. 그러나 살라는 조국 이집트를 28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켜 놓은 상태다. 16강 이상의 돌풍을 일으킨다면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축구 강국 출신도, 좋은 시스템과 환경도 거치지 못한 살라는 흙수저 영웅이다. 지난 수년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혼란기를 거친 이집트의 국민 영웅이기도 하다. 그는 최근 고향의 관개수로 공사와 병원 건립을 위해 5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파라오(고대 이집트의 통치자)’라는 별명을 지닌 그는 왕을 넘어 신들의 시대를 끝낼 수 있을까. 올해 말 열리는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황금공은 10년 만에 특별한 주인을 맞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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