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집단폭행’ 무력한 공권력에 여론 질타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4 10:44
  • 호수 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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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무책 경찰, 무너진 민심

 

광주에서 벌어진 집단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사건 당시의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되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는데도 폭행이 이어졌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여론의 질타에 불이 붙었다. 사건을 맡은 광주 광산경찰서가 “적절하게 조치했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집단폭행 가해자들에게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엄벌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은 순식간에 20만 명을 넘었다.

 

일부에서는 경찰의 현장대응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반론도 있지만 경찰의 공권력이 더 이상 무너지면 안 된다는 시각이 많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부끄러운 일”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경찰의 정당한 공무집행에 대한 치안총수의 단호한 결단과 갈등요소 방지를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비판은 집단폭행 사건 당시의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불이 붙었다. 영상에는 폭행 당시 출동한 경찰관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계속 폭행을 이어가는 가해자들의 모습이 담겼다. 가해자들은 경찰이 피해자를 순찰차에 태우는 와중에도 달려들어 폭력을 휘두르려 했다. 피해자가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지 못한 경찰의 모습에 분노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여론이 계속 악화하자 경찰이 직접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5월4일 김순호 광주 광산경찰서장은 페이스북에 2페이지 분량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던 체포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김 서장은 “SNS 동영상만 보면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고 보일 수 있지만 신속한 현장출동, 상호 분리, 부상자 후송, 경찰장구를 이용한 가해자 체포 등을 순차적으로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그는 피의자들의 강력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에 대해서는 “보강수사를 통해 불구속 가해자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추가 신청했다”며 “또한 피의자들의 조직폭력배 연관성을 철저히 수사하고, 살인미수 적용 여부에 대해서도 심도 깊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지방경찰청도 이날 오전 “대응 매뉴얼에 따라 순차적으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4월30일 SNS에 공개된 광주 집단폭행 영상 ©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연합뉴스


 

집단폭행 영상에 시민 분노

 

경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싸늘했다.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 청와대 청원글은 지난 5월2일 게시된 후 8일 만인 5월10일 기준 27만 명을 넘어섰다. 게시판에는 경찰의 무능함을 질타하는 글이 대다수였다. “매뉴얼대로 했다고 하지만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과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경찰들이 지킬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피해자가 죽어야지만 일하는 경찰” 등 경찰의 안일함에 대한 질타가 줄을 이었다. 이와 함께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에게는 강력한 경찰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글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경찰이 현장에서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5월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경찰공무원 공권력 강화 촉구합니다’ 청원글에는 현재까지 1900여 명이 참여했다. 청원자는 “경찰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진압했다면 피해자의 피해가 달라지지 않았겠냐”며 경찰의 공권력 강화를 요청했다.

 

경찰의 대응을 바라보는 현직 경찰관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엇갈렸다. 현장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동정의 시선이 있는 반면, “같은 경찰이지만 부끄럽다”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왔다.

 

경기도 내 한 일선 경찰관은 “현장의 상황이 어땠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짧은 영상만으로 당시 경찰의 대응에 대해 평가하기는 힘들다”며 “영상을 보면 가해자들이 경찰에게 저항하는 반응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상황에서 무작정 테이저건이나 경찰장구를 함부로 사용하기는 힘들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경찰이 주취자를 적극적으로 제압하려다 오히려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인권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에 요즘에는 현장에서 무리하게 제압하기 힘든 분위기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순호 광주 광산경찰서장이 5월4일 밤 광주지방경찰청 페이스북 페이지에 ‘광주광산경찰서장이 이번 집단폭행사건에 대해 글을 올립니다’는 제목으로 올린 입장문 ©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연합뉴스


 

“현장 상황 이해해야”…“경찰로서 부끄럽다”

 

반면 현장 대응이 부실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 시내 한 경찰관은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같은 경찰이지만 부끄럽다. 솔직히 일선 현장에서는 ‘차라리 못 잡는 게 낫다’는 반응도 있다. 무리하게 잡으려다 문제가 생길 바에는 피하고 보자는 심산”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현장의 무력감은 상당한 수준”이라며 “과감하게 덤벼들어 가해자들을 제압할 경찰관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경찰의 공권력 강화를 위한 여론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얼마 전 유도로 주취자를 제압한 경찰관 영상이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과거였다면 ‘과잉진압’이라고 지적당했을 것이다. 여론이 받쳐줘야 경찰도 적극적인 개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경찰의 현장 대응만이 아닌, 제도적인 장치와 경찰 수뇌부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상원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건 당시 경찰의 대응이 부실했다고 지적하면서도 “경찰 수뇌부의 결단과 함께 현장에 있는 경찰관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선진국 경찰의 경우에는 경찰의 공무집행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며 “경찰 수뇌부는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일선 경찰관들을 독려해야 하고, 그런 경찰관을 끝까지 보호해 줄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경찰, 강한 악인들에게 너무 약하다. 정당한 공무 집행으로 인해 발생한 피의자 혹은 제3자의 부상이나 손실에 대해 징계 등 불이익 없이 보상 및 치료를 지원하는 체제 구축 등 근본적 개혁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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