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6·13 최대 격전지 경남 6개 도시 민심 긴급점검
  • 이민우·구민주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5 13:52
  • 호수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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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민심 르포(1)] “수많은 사람 일자리 잃고 떠났는데, 또 한 표 달라고 하면 누가 주나”

 

경상남도는 6·13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다. 지난 대선에서 여유 있게 당선됐던 문재인 대통령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패할 정도로 보수 성향이 강한 곳이다. 경남 도민들 사이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억센 사투리는 오랜 세월 약속처럼 통용됐다. 때문에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며 낙동강 전선 아래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때문에 경남은 어느 한쪽도 유리하다고 할 수 없는 곳이다.

 

현재 경남지사 선거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김태호 자유한국당 후보가 그 뒤를 추격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드루킹 특검’이라는 초대형 악재 속에서도 김경수 후보는 의원직까지 던지며 사실상 지사 선거에 정치생명을 걸었다. 그에 맞서는 김태호 후보도 경남을 방어해 보수진영의 잠룡(潛龍)으로 재기하길 꿈꾼다. 드루킹 사건이 전개될수록 민심의 떨림도 커져 선거 결과를 쉽게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6·13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경남 지역 중 인구와 상징성, 정치성향 등을 고려해 6개 시·군을 찾아 민심을 들어봤다.

 

경남 거제시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부처님오신날인 5월22일 선박을 건조하는 모습 © 시사저널 이민우


 

[창원​] “김태호는 무난한데 홍준표가 좀…”

 

지방에서 유일한 인구 100만 도시, 경남의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창원은 경남 지역 내에서도 최대 경합지로 꼽힌다. 창원은 8년 전 마산·진해와 통합하면서 경남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선거 때마다 경남지사 승패를 좌우하는 가늠자 역할을 했다. 김해·양산 등이 위치한 경남 동부는 민주당 세(勢)가, 거창·합천 등이 위치한 경남 내륙은 한국당 세가 확실히 강한 데 반해, 창원은 어느 한쪽에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35.8%,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36.3%를 얻어 경남에서 가장 팽팽한 결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창원은 지난 20여 년간 한 번도 진보진영에 시장 자리를 내준 적 없었다. 시의회도 한국당 의원(24명)이 민주당 의원(12명) 수의 두 배를 차지해 보수 쪽으로 한껏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많이 거주하는 대도시, 노동자들이 대거 몰려 있는 공장 밀집지역이라는 특성상 주변 지역에 비해 늘 진보 성향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공장들이 모여 있는 창원 성산구는 17·18대 총선 당시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에 이어, 지난 20대 총선에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당선되면서 ‘진보정치 1번지’로 불려왔다. 그간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만 놓고 무조건 보수의 텃밭으로 분류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김경수·김태호 두 경남지사 후보를 마주한 창원 시민들은 ‘구관이 명관이냐’ ‘30년 만에 바꿀 기회냐’를 두고 고심 중이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경남지사를 역임한 김태호 후보는 중년 이상의 시민들에겐 확실히 더 ‘친숙한 얼굴’이다. 창원시 의창구 팔용동에서 노점상을 하는 고아무개씨(67)는 5월21일 “예전에 동네 여성단체 회장으로 활동할 때 김태호 지사를 여러 번 만났다. 믿음직한 이미지로 기억에 남아 있어 이번에도 한 표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태호 후보가 속한 한국당에 대한 실망이 커, 보수를 지지해 온 시민들 사이에선 ‘정치 혐오’ ‘선거 무관심’ 정서가 커질 대로 커진 상태로 보였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국가유공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창원 토박이 오아무개씨(73)는 “예전에 김태호 지사 나왔을 때 뽑아줬고 계속 한나라당 지지했는데 동네가 발전된 게 없었다”며 “지금 한국당이 잘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들 별로 없고 다 옛정으로 뽑으려는 건데, 이번에 새 인물 뽑아서 고인 물 좀 퍼내야 한다”고 비판했다.

 

기자가 만난 시민들 중 상당수는 김태호 후보에 대한 직접적 평가보다 한국당과 홍준표 대표에 대해 더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이들은 5월2일 홍 대표가 창원을 찾아 “창원엔 빨갱이가 많다”고 한 발언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창원 시내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황아무개씨(28)는 “김태호 후보에 대한 평가는 ‘무난하다’ 정도였는데 홍 대표의 ‘빨갱이 발언’을 비롯한 당 지도부들의 행동 때문에 마음이 돌아섰다”며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한국당이 더 못해서 김경수 후보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기가 보수 텃밭이긴 하지만 부모님을 봐도 그렇고 예전처럼 앞뒤 안 보고 보수만 뽑는 분위기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선거에서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하는 창원대학교 재학생 강도연씨(20) 역시 “첫 투표라서 매우 설레고 후보들에 대한 관심도 더 가지려 하는데 후보들만 보면 크게 마음 가는 쪽이 없다”며 “빨간색(한국당)보다는 그래도 파란색(민주당)이 더 괜찮은 것 같아 당을 보고 뽑으려 한다”고 답했다.

 

김해시는 경남에서 가장 진보 성향이 강한 도시로 분류된다. 5월23일 봉하마을을 찾은 시민들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민우


 

[김해·양산​] “이번엔 맡겨도 되지 않겠느냐”

 

경남에서 지리적으로 동쪽, 창원과 부산 인근에 위치한 김해시와 양산시는 민주당이 PK(부산·경남) 탈환의 교두보로 삼고 있는 낙동강 벨트의 중심지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와 묘역이 있는 봉하마을도 김해시에 속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 또한 양산시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일까. 김해·양산 시민들의 선택은 언제부턴가 늘 ‘왼쪽’으로 쏠려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긍정 평가가 많았다. 문 대통령이 잘하니 민주당 후보를 뽑겠다는 논리다. 5월22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양산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던 주부 이선화씨(42)는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 대통령 한 명 바뀌니까 나라가 달라졌다”며 “그만큼 잘해 주고 있는데 당연히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함께 장을 보러 나섰던 현지혜씨(43)도 “김경수 후보가 워낙 인상도 좋고 성실해서 일을 잘할 것 같다”며 “김태호 후보는 전에 경남지사 할 때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다른 지역과 달리 고령층에서도 민주당 강세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산지하철 2호선 양산역으로 향하던 임아무개씨(63)는 “이 동네에서 자라 50년 넘게 살았는데 원래 이 동네가 보수적인 곳은 아니고, (1979년) 부마항쟁으로 독재정권에 맞섰던 동네”라며 “그동안 주변 사람들 따라서 한나라당(현 한국당) 찍었는데 크게 바뀐 게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 잘되게 하려고 동분서주하는데 홍준표 대표는 맨날 헛소리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9주기를 맞은 5월23일 김해시에서도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김해시 장유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전아무개씨(여·61)는 “지난 지방선거 때 홍준표 지사(현 한국당 대표) 뽑았는데, 맨날 사고만 치고 나중에 관두더니 투표도 못하게 했다”며 “그래 놓고 또 새누리당(현 한국당) 뽑아달라고 하면 양심도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옆에서 식사와 반주를 곁들이며 아들 자랑을 늘어놓던 건설업 종사자 황주원씨(63)는 “나이 든 사람들이야 무조건 저쪽(한국당) 뽑자고 하는데 그래서 경상도가 욕먹는 것”이라며 “서울에 사는 아들이 1번(김경수 후보) 뽑으라고 사정하는데, 나이 먹은 사람들도 자식들 얘기 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이들과 봉하마을을 찾은 율하동 주민 이상국씨(41)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욕하던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 잃고 나서 얼마나 후회하고 있느냐”며 “노 전 대통령을 곁에서 묵묵히 지키던 김경수야말로 경남지사에 어울린다”고 밝혔다. 내내 1번(옛 새누리당)을 찍었다던 택시기사 박아무개씨(68)는 “어디서 한국당 뽑자고 말을 못 하겠다”며 “홍준표 하는 짓도 이상하고, 이번에는 투표를 안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5월20일의 경남 합천군 왕후시장(위)과 창녕군 창녕시장. 이들 지역은 경남에서도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분류된다. © 시사저널 이민우


 

[합천·창녕​] “우리가 오리지널 경남…그래도 한국당”

 

경남 내륙지방의 민심은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도심의 모습만큼이나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 5월21일 보수 색채가 강한 합천과 창녕 지역을 찾았다. 모내기철이라 도심 지역은 한산하기만 했다. 합천시장에서 종묘(種苗)사를 운영하는 임아무개씨(68)는 선거 전망을 묻자 “젊은 사람들이야 김경수를 뽑고 나이 든 사람들이야 김태호를 뽑지 않겠느냐”며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답했다. 10여 분 동안 정부 비판을 늘어놓던 임씨는 “젊은 사람들이 배고픈 줄 몰라서 복지 타령만 하는데 그 돈은 다 어디서 나오겠느냐”며 “나라 부도내는지 모르고 (북한의) 평화쇼에 놀아나고 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옆집에서 신발을 팔던 백아무개씨(61) 역시 “전부 언론 장악을 해서 민주당에 유리한 여론조사만 쏟아지고 있다”며 “믿을 게 못 된다”고 비판했다. 외곽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박아무개씨(58) 부부는 “이 동네는 조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라며 “경남지사는 몰라도 군수는 민주당 찍어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인근 창녕군에서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 지역에서 30년 넘게 택시를 몰았다는 김아무개씨(67)는 “아무리 그래도 이쪽 동네 사람(김태호 후보 고향은 거창군)을 뽑아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가 오리지널 경상도”라며 “아무래도 인물 면에서도 김태호(후보)가 일을 잘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창녕시장에서 간판가게를 지키고 있던 40대 남성은 “여긴 사실 부산보단 대구와 가까워서 그쪽 정서와 비슷하다”며 “원래 난 민주당을 뽑아왔지만, 일가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하면 아예 대화를 피해 버린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거제​] “선거하면 뭐 하느냐” 회의론도

 

역시나 정치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 것일까. 공장 밀집지역에선 선거 자체에 회의적인 의견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경남 지역 후보자들은 선거 때마다 이들 수만 명의 표심을 잡기 위해 앞다퉈 공장을 방문하고 관련 공약을 내걸어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공장 노동자들은 그 누구보다 선거에 무심한 듯 보였다. 일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지방선거일은 그저 하루 쉴 수 있는 ‘빨간 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선업 불황이나 해고·정리해고에 직격탄을 맞은 노동자들의 시선은 더욱 차갑다.

 

5월22일 공휴일에도 옥포조선소 남문으로 들어서는 전아무개씨(43)는 “조선소가 다 망해 갈 때 어느 누구 하나 관심 갖고 해결하려는 사람이 없었다”며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동네를 떠났는데, 이제 와서 또 한 표 달라고 하면 누가 뽑아주겠느냐”고 비판했다. 대기업 공장에 다니는 백아무개 과장(46)은 5월21일 “아마 여기 퇴근하는 직원들 잡고 물어보면 다 선거에 관심 없다 답할 것”이라며 “직접 우리 일에 와 닿는 것도 없고 후보들마다 선거철에만 공장 한 번씩 방문하는 게 전부인데 관심 없는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GM공장 정문 앞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고 그 앞을 지키고 있는 해고자 이아무개씨는 “비정규직 문제에 여야 후보 모두 예전보다 관심을 갖는 듯 보이지만 그저 구색 맞추기 위한 공약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여당에서 만들었던 GM대책위원회를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비정규직 해고자 문제 처리해 주겠다 했지만 실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 때만 반짝하는 말뿐인 약속들을 더 이상 믿고 기대할 기력이 없다는 얘기였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경남 권역별 여론조사

 

여론조사는 통계다. 통계 수치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인 내용들이 다분히 혼재된 결과물이다. 선거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특정 지역 민심을 두 후보의 지지율로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서울시에선 강남 3구(區)와 다른 구의 흐름이 다르게 나타난다. 경남도 마찬가지다. 지역별로는 어떨까. 여론조사 세부 데이터를 분석해 유추해 봤다. 단, 여론조사를 세부 집단으로 나눠 살펴볼 때 사례 수가 적어져 오차범위가 커지는 등 해석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역대 선거에서 경남 민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졌던 창원권(現 창원시, 통합 이전 마산·창원·진해)의 흐름은 혼전 양상을 보여왔다. MBC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전문기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5월19~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창원권 주민 47.8%가 김경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반면 김태호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6.1%에 불과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자체적으로 5월13일 실시한 여론조사 가상대결에서도 김경수 후보(43.5%)가 김태호 후보(22.7%)를 여유 있게 따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KBS와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11~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김경수 후보와 김태호 후보는 각각 48.6%와 24.7%의 지지율을 보였다.

 

경남의 동쪽에 위치한 김해시와 양산시는 여론조사 기관에서 동부권으로 별도 분류하고 있다. 경남 지역에서도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낙동강 벨트의 중심지역으로 분류된다. KBS·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 동부권은 확실히 김경수 후보의 손을 잡아줬다. 김경수 후보는 이곳에서 58.5%의 지지율을 보여 18.9%에 그친 김태호 후보를 훨씬 앞섰다. MBC경남이 5월8~9일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김경수 후보(66.8%)와 김태호 후보(23.2%)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앞선 한국리서치 자체 여론조사는 서부해안권(거제·고성·남해·사천·진주·통영·하동)과 내륙권(거창·산청·의령·창녕·함안·함양·합천)으로 분류해 조사했다. 서부해안권에선 김경수 후보(40.5%)가 김태호 후보(28.2%)를 앞섰지만 경남 전체 통계보단 격차가 다소 줄어든 모습이다. 반면 내륙권에선 김태호 후보(40.5%)가 김경수 후보(23.3%)를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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