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라는 예술, 85억원이라는 해방구
  • 반이정 미술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5 13:31
  • 호수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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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기록한 경매 최고가 경신…낙찰가에 대해 전문가들 의견 엇갈려

 

‘저게 85억? 미쳤다.’ ‘나도 그리겠다.’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이 경신됐다. 이 소식은 최근 국내 주요 방송이 메인뉴스로 다뤘고, 김환기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올랐다.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선 이 주제로 내게 전문가 인터뷰 요청까지 했다. 이 모두는 김환기의 그림 한 점이 85억2996만원(6200만 홍콩달러)에 최종 낙찰된 5월27일 하루에 내가 보고 겪은 일이다. 미술이 현실에 소환되는 아주 드문 소동은 이처럼 작품이 시장 가격으로 평가받을 때 일어난다. 이는 미술의 생리에 일반인이 어둡다는 뜻도 되지만, 뒤집어 말하면 일반인이 미술에 기대하는 바를 투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식을 전하는 뉴스의 댓글 창에 시청자가 남긴 허망한 반응들 가운데 나는 두 개를 골라봤다. ‘85억? 미쳤다’와 ‘나도 그리겠다’.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김환기 화백의 ‘붉은 점화’ ⓒ연합뉴스

 

 

85억 화제작은 김환기 화백의 뉴욕시대 작품  

 

서양화 기법을 자생적으로 습득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는 서양 문물을 먼저 수용한 일본의 영향을 받아 서구식 미술 전통을 받아들였다. 1930년대 일본의 미대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김환기는 이 땅에 서구 모더니즘 미술을 소개한 선구자 그룹에 속한다. 그의 작품 세계는 시기별로 동경시대(1933~37), 서울시대(1937~56), 파리시대(1956~59), 서울시대(1959~63) 그리고 뉴욕시대(1963~74)로 나뉜다. 경매에 낙찰된 화제작은 캔버스 전면을 붉은 점으로 채우되, 왼쪽 상단의 일부만 파란 점으로 대체한 김환기 화백의 뉴욕시대 작품이다. 

 

이 문제작은 여론과 언론에선 ‘붉은 점화’로 통칭되고 있다. 원제는 ‘3-Ⅱ-72 #220’이다. 구체적인 형상을 재현하지 않는 추상미술은 이처럼 작가만 아는 일련번호를 기계적으로 나열하거나, 확정된 의미를 고집하지 않는 무제로 제목을 붙일 때가 많다. 

 

완전한 추상에 이르는 뉴욕시대 전까지, 김환기는 동경과 파리를 거치며 구상미술과 반추상미술이 혼재된 작품을 내놨다. 뉴욕에 도착한 이듬해 1964년 개최한 첫 개인전에서, 현지 언론은 그의 작품이 독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평가절하했다.  

 

‘붉은 점화’는 김환기가 타계하기 2년 전에 완성한 추상화로 마크 로스코 계열의 색면 추상에 해당한다. 추상미술이라는 국제 트렌드와, 화폭에 한 점씩 색 점을 찍어 번진 자국이 흡사 한지에 먹이 스며든 효과를 연상시켜 추상미술의 종주국인 서구와 차별화했으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단일한 색(파란색)과 등가로 연결시켜 자기 브랜드를 확립한 시절의 작품이다. 그의 후반기 대표작들은 파랗게 통일됐기 때문에 그의 파란색 화면은 ‘환기 블루’라 불린다. 이는 프랑스 현대미술가 이브 클랭이 코발트 블루로 완성한 작업에 자신의 이름을 섞어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로 브랜드화한 현상을 연상시킨다. 김환기의 독창성은 간단히 요약하면 추상미술이라는 국제 트렌드, 서구 추상의 동양적 수용, 환기 블루라는 자기 브랜드, 이 셋이 혼합된 산물이라 하겠다.  

 

이처럼 김환기 추상미술을 미술사적 차별성과 독창성으로 풀이한들, 색 점으로 화면 전체를 균질하게 채운 단순한 그림 한 점의 가치가 85억원이라는 경매 결과를 설득시키진 못할 것이다. 관련 뉴스마다 허망한 심정을 댓글로 남긴 불특정 다수에겐 말이다. 라디오방송에서 내게 던진 가장 중요한 질문 역시 동일한 거였다. “그림 한 점이 85억이나 한다니, 이렇게 비싼 이유가 뭘까요?”

 

이 질문에 정답을 줄 수 있는 적임자는 누구일까? 김환기는 이중섭, 박수근와 함께 근대 화가그룹에 속하는 만큼, 동시대 미술을 해석하는 나 같은 현장 미술평론가와는 일단 분야부터 다르다. 그렇다고 근대 미술 전문가라 한들 ‘붉은 점화’의 우수성을 풀이하는 방편으로 반증 불가능한 미술사적 해석 이상을 내놓진 못할 것이다. 

 

그러면 미술 시장 전문가라면 속 시원한 답을 알고 있을까? 그들 사이에서도 낙찰 가격에 대한 의견은 ‘적당했다’와 ‘지나쳤다’로 갈린다. 먼저 저 정도 고가에 매매가 이뤄진 미술품은 이미 미학과 경제학이 뒤엉킨 무엇으로 변신한 상태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는 가격을 판단할 만한 합의할 수 있는 요인들이 있게 마련이다. 배기량, 엔진 등급, 오디오, 시트 따위의 옵션이 그렇다. 거기에 더해 제조사의 브랜드 가치가 가세한다. 이런 공산품의 가격 결정에 반해 예술품의 상품성은 상당 부분 작가의 브랜드 가치에 의존한다. 김환기 작품의 단조로운 구성을 보고 ‘나도 그리겠다’는 냉소적인 반응은 그래서 무의미하다. 요령껏 장인들을 고용해 원작을 기계적으로 모사한들, ‘김환기’라는 브랜드까지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낙찰가 기준 100억원 돌파 여부 관심 

 

‘붉은 점화’의 경매 시작 가격이 77억원이었음을 기억하자. 이번 경매로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는 2017년 4월 케이옥션 서울경매에서 낙찰된 김환기의 ‘고요 5-Ⅳ-73 #310’(1973)으로, 65억5000만원에 낙찰됐다. 따라서 ‘붉은 점화’의 시작 가격은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처음부터 깰 심산으로 정해졌다고 할 것이다(정작 업계의 관심은 최초의 ‘낙찰가 기준 100억원 돌파’였단다). 이 경매는 입찰자들에게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작품 소장’이라는 명성과 함께 자산과 투자가치를 내건 셈이다. 

 

이는 미술사적 평가 가치나 입에 발린 찬사로는 대체할 수 없는 자산일 게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예술의 한 속성을 ‘과시재’로 본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렌은 “비싸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이런 현상을 표현했다. 경매장은 인문학의 찬사와 명백한 투기 심리가 뒤엉켜 공존할 것이며, 공정가를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중독성과 흡인력을 지닌 시공간이다. 그런 이유로 그림 한 점이 85억원인 이유를 일반적인 예술 언어로는 풀이할 수 없다. 만인이 공유하지 못하고 만인이 이해 못 한다 한들, 어떤 이들을 위한 이 같은 해방구는 사라지지 않으며 없앨 수도 없으며 없애서도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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