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가족의 귀환 《인크레더블 2》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3 10:50
  • 호수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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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인크레더블》의 속편

 

슈퍼히어로 영화가 전 세계 극장가를 장악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2000)이 시리즈의 포문을 열고, 샘 레이미 감독이 연출하고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을 맡은 《스파이더맨》(2002)이 처음 관객과 만나던 때만 해도 슈퍼히어로 영화는 아직 본격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블루오션이었다. 지금은 거대한 하나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이룩한 마블 스튜디오의 첫 영화인 《아이언맨》도 2008년이 돼서야 등장했다. 그 이전에는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가 선보인 《인크레더블》(2004)이 있었다. 브래드 버드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 애니메이션은 구성원 모두가 초능력을 지닌 ‘슈퍼히어로 가족’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루며 픽사에 기념비적 흥행을 안겨줬다. 7월18일 개봉하는 《인크레더블 2》는 무려 14년 만에 돌아온 속편이다.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모션 픽처스


우려에서 기대로, 픽사의 효자상품

 

《인크레더블》은 《토이 스토리》(1995)를 시작으로 애니메이션 시장의 판도를 바꿔온 픽사의 6번째 작품이다.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한 2006년 이전에 나온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몬스터 주식회사》(2001)의 인간 아기 부를 제외하고, 이때까지 픽사 작품 중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토이 스토리》 1, 2편의 주인공은 장난감이며, 《벅스 라이프》(1998)의 주인공은 개미와 각종 풀벌레들이다. 《몬스터 주식회사》(2001)와 《니모를 찾아서》(2003)는 각각 아이들의 상상에 등장하는 괴물, 바다 생물들을 의인화한 작품이었다.

 

감독인 브래드 버드가 픽사 내부 연출가가 아닌 ‘외부인’이라는 점, 픽사의 기존 작품 중 가장 긴 러닝타임(115분)이라는 핸디캡도 있었다. 《인크레더블》은 브래드 버드가 워너 브러더스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아이템이었다. 버드는 어릴 적 즐겨봤던 스파이 영화, 코믹스 등등의 레퍼런스에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섞어 이야기를 구상했다. 당시 픽사의 수장이자 칼아츠에서 버드와 함께 공부했던 존 래스터는 이 프로젝트의 잠재력을 알아봤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버드가 전 세계 수많은 애니메이션 감독들에게 깊은 영감을 줬던 《아이언 자이언트》(1999)를 연출했다는 이력도 또 하나의 중요한 가능성으로 작용했다. 

 

《인크레더블》 등장 직전 픽사의 초점은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뛰어넘은 ‘현실적 묘사’에 맞춰져 있었다. 《몬스터 주식회사》의 주인공 괴물인 설리의 털 묘사, 《니모를 찾아서》의 광대한 바다 풍경 등은 픽사가 기술적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인크레더블》은 비주얼의 리얼리티가 중요한 작품이 아니었다. 신체를 자유자재로 늘이며 사용하는 일라스티걸의 묘사는 오히려 애니메이션의 과장법에 더 적합했다. 반대로 가족을 다루는 이야기는 그간 픽사가 선보였던 그 어떤 작품보다 현실을 반영했다. 《인크레더블》에는 실사영화에 견줘도 부족하지 않을 뛰어난 액션 시퀀스가 많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재미는 정부의 제약 때문에 단조로운 일상에 갇힌 슈퍼히어로들을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족의 모습으로 묘사한 전복의 아이디어에서 나온다. 

 

이래저래 픽사의 새로운 도전이었던 《인크레더블》은 개봉 전까지 이전 작들에 비해 페이소스가 부족하다는 불안한 비판까지 들어야 했다. 어른까지 울리는 애니메이션인 픽사 작품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보여준 기세는 놀라웠다. 《인크레더블》은 전 세계에서 6억3300만 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렸고, DVD 시장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했다. 미국에서만 1억7000만 장 이상이 팔린 것이다.

 

©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모션 픽처스

 

 

《인크레더블》이 14년 만에 귀환한 이유

 

그렇다면 속편이 등장하기까지는 왜 14년씩이나 걸린 걸까. 사실 완벽한 스토리를 선보이려는 픽사에서는 흔한 일이긴 하다. 《몬스터 주식회사》는 프리퀄 《몬스터 대학교》(2013)를 선보이기까지 11년이 걸렸고, 《니모를 찾아서》의 스핀오프 《도리를 찾아서》(2016)가 나오기까지도 13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다. 물론 그간 브래드 버드 감독이 애니메이션 《라따뚜이》(2007),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01), 《투모로우랜드》(2015) 같은 굵직한 실사영화까지 연출을 맡았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인크레더블》에는 보다 복잡한 사연이 있다.

 

2006년 이후 픽사의 모회사가 된 디즈니가 마블 스튜디오까지 인수함에 따라, 슈퍼히어로 영화는 매해 기록적으로 쏟아졌다. 《인크레더블》이 처음 등장했던 2004년과 비교해 시장 환경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슈퍼히어로들의 활약과 고뇌, 정부와의 갈등 등은 이미 숱하게 묘사됐다. 브래드 버드는 《인크레더블》만의 차별화 전략을 가족 내 이야기로 잡았다. 부모 되기의 어려움, 엄마가 된 이후 경력단절을 겪어야만 했던 여성의 활약, 1편에서 그 능력이 채 온전히 발휘되지 않은 갓난쟁이 잭잭의 활약을 화두로 내세운 것이다. 특히 온몸이 고무처럼 늘어나는 일라스티걸의 활약과 갓난아이 잭잭의 슈퍼파워는 실사영화로는 표현이 어려운 대목이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범람하는 현재 상황에서도 이 애니메이션만의 좋은 처세술로 기능한다.

 

2편은 1편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악당 언더마이너의 등장에 아빠 밥(미스터 인크레더블), 엄마 헬렌(일라스티걸), 딸 바이올렛, 아들 대쉬, 아기 잭잭까지 가족 전체가 맞서며 끝을 맺었던 터다. 이들은 새로운 악당 스크린슬레이버에 다시 한번 맞선다. 슈퍼히어로 금지법 해결을 위해 일라스티걸이 전방에서 활약하며 대중의 호감을 쌓는 사이, 미스터 인크레더블은 평범한 아빠 밥으로 돌아가 육아 전쟁에 뛰어든다. 가족을 지키는 육아의 영역도 영웅의 역할임을 강조하는 스토리다. 스크린이나 가상현실 등의 매체를 통한 간접경험에 익숙해진 오늘날의 세태를 꼬집는 악당 스크린슬레이버의 경고는 여느 슈퍼히어로 영화가 제시하는 문제에 견주더라도 충분히 서늘하다. 알고 보니 가장 많은 초능력을 지니고 있는 아기 잭잭의 활약도 큰 볼거리다.

 

흥행 부문에서는 이미 더할 나위 없는 슈퍼 파워가 발휘되는 중이다. 《인크레더블 2》는 북미 수입만 이미 애니메이션 최초로 5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7월12일 기준 북미 역대 흥행순위 11위에 올랐다. 역대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중 가장 높은 기록이다. 14년 만의 귀환이 무색할 정도로, 말 그대로 ‘인크레더블’한 작품의 탄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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