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난민②] 독일인들 “난민, 만나면 바뀐다”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0 15:34
  • 호수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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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예멘 난민과 관련, SNS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엔 이들에 대한 공포와 혐오에 불을 더 지피는 해외 난민 범죄 사례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그중 2015년 12월31일 독일 쾰른에서 발생한 집단성폭력 사건은 예멘인 난민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낙인찍는 근거로 쓰이고 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이러한 시각이 지난 3년여 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대중 정치적 어젠다로 자리 잡은 새로운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도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무슬림 난민 이슈가 종교 및 정치적 경계들을 넘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 사건 전후로 극우파인 독일 대안당(AfD)과 네오 나치인 NPD가 “무슬림 남성 난민은 독일 여성을 강간할 것”이라는 혐오 선동을 편 것이다. 그런데 독일에선 쾰른 사건 이후 “페미니즘 이슈를 인종차별에 이용하지 말라”는 비판이 거셌다. 2016년 여성의 날엔 “우리의 페미니즘은 반(反)인종주의적이다-페미니즘을 되찾자!”라는 모토 아래 5000여 명의 여성이 쾰른 시내에 모여 행진했다. 이처럼 인종주의적 선 긋기에 대항해 페미니즘과 좌파 정치의 다양성을 지켜내려는 움직임은 독일에서 진행 중인 난민 담론의 매우 중요한 특질이다. 그러나 한국의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선 이러한 복합적인 논쟁의 양상은 무시되고 조직적이고 반복적으로 ‘독일은 난민 때문에 망하고 있다’는 편향된 시각만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무슬림 난민들과 수년째 대면하며 살고 있는 두 명의 독일인과 인터뷰했다. 무슬림 난민에 대한 공포는 어디에서 비롯되며 이 공포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에 살고 있는 저널리스트 코넬리아 슈바르츠는 2015년 늦여름 그리스 코스 섬으로 휴가를 떠났다. 휴가 중 그녀는 남편과 세 아이들과 함께 여객선을 타고 터키의 보드룸 해변으로 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신문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주저앉고 말았다. 바로 전날 슈바르츠 가족이 거닐던 해변에 세 살 난 시리아 난민 어린이 시체가 떠밀려온 모습이었다. 아이는 슈바르츠 가족의 막내와 동갑이었다. “전에도 유럽으로 북아프리카 난민들이 오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하지만 코스 섬에 다녀온 이후 나는 상황이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015년 9월 시리아 난민을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고 선언한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같은 해 9월10일(현지 시각) 베를린 난민 센터를 방문해 난민을 만나고 있다. ⓒAP연합


 

난민 400명, 3년간 성범죄 ‘0’…오히려 피해자

 

슈바르츠 가족은 독일 남서부의 라인펠트-에히터딩엔에 산다. 인구 4만 명의 소도시다. 이곳의 작은 광장에 2015년 가을 텐트로 만든 난민 숙소가 생겼고 400명의 시리아 난민이 수용됐다. 코넬리아 슈바르츠는 옷가지를 모아 나눠주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왔다. 방과후 교실을 꾸렸고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독일어와 독일문화 수업을 열었다. 그러다 2016년 초엔 시리아에서 혼자 온 아홉 살 남자아이 디마(가명)를 위탁하기에 이르렀다. “혼자 수용소에 계속 뒀다가는 잘못된 길에 빠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녀는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란 아이를 데려왔기 때문에 쉬운 일이 없었다”면서도 “다시 데려오라고 해도 당장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바르츠 부부의 세 아이는 디마와 함께 사는 것을 “완전히 정상적인 일”로 받아들였다. 아이들은 디마와 함께 교회에 갔고 디마를 따라 이슬람 사원에 가기도 했다.

 

이슬람 국가 출신의 난민 남성이 성범죄를 저지른 일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단연코 없다”면서 “오히려 사람들이 쉬쉬하고 있는 다른 문제가 있다. 독일인들이 난민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거나 성매매를 제안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밝혔다. 무슬림 성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독일 사회문화 교실도 진행하고 있는 그녀는 “그들도 독일은 다른 문화권이고 다른 성 규범이 적용된다는 것을 잘 안다”고 주장했다.

 

독일연방경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발생한 범죄사건 중 망명 희망자가 적어도 1명 이상 가해자에 포함된 경우는 29만여 건으로, 전체의 약 9.3%를 차지했다. 슈바르츠는 “난민이 들어온 이후 범죄율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그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난민 범죄 중 상당수는 난민수용소에서 일어났다. 독일 난민숙소의 실태는 끔찍하다. 노동을 해 돈을 벌 수도 없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없다. 출신국가가 어디든 그런 환경에 반년 이상 사람을 가둬 둔다면 범죄가 일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바스티안 뢰더는 2015년부터 난민 자원봉사자 지원단체인 난민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을 하기 전 뢰더는 기업법 전문 로펌 변호사와 행정법원 판사로 일했다. 사회적 명성과 경제적 안정이 보장된 직업이었지만 그의 적성엔 맞지 않았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던 그는 2013년 난민위원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뢰더는 한 시간 동안 진행된 통화에서 수차례나 “독일 사회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다. 남을 도우면 행복해진다. 이 일을 하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뢰더는 “현재 한국에선 난민에 대한 논란이 추상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 같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독일엔 2015년 한 해에만 90만 명 가까이 무슬림 난민이 들어왔다. 작은 마을에도 수백 명씩 난민들이 들어왔고 거기 살던 사람들과 만났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순간 뭔가 바뀐다. 난민에 대한 공포는 이들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며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자란 90년대 독일은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내전을 피해 온 난민들이 어디에나 있었다. 뢰더의 아버지는 당시 어느 난민 가족을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고, 뢰더 가족은 난민들이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동시에 뢰더는 “난민을 ‘선물’로 취급해선 곤란하다”며 이들에 대한 미화를 경계했다. 다른 문화에서 온 난민과 선주민 간에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인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문제도 다른 모든 문제들처럼 해결책을 찾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난민을 고립시키면 오히려 문화 간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슈바르츠는 “우리가 낯선 곳에 당도했을 때 우리를 어떻게 맞이해 줬으면 하는지” 생각해 볼 것을 부탁했다. “난민들은 가진 게 없다. 독일도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랬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때 우리는 누군가 도와주길 바란다”는 그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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