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경제야②]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데…”(下)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6 09:33
  • 호수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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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文 정부, 우클릭으로 지지층 돌아서며 지지율 추락

 

※ 앞선 ☞[문제는 경제야①]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데…”(上)편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변화가 직접적으로 감지된 것은 무더위가 시작된 올 7월 무렵. 문 대통령은 7월9일 인도에서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당부했다. 기업 방문을 꺼리던 문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을 현장에서 5분간 접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았다. 

 

이후 갖가지 해석이 뒤따랐다. 대통령 동선의 무게감을 고려할 때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전략적 행보로 평가된다는 시각이었다. 청와대는 ‘예정된 일정이 아니었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세간의 시선은 달랐다.​ 

 

인도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7월9일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노이다시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서 이재용 부회장(왼쪽)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제 살리기 위해 악마와도 손을 잡자”는 靑

 

때마침 재벌 개혁 트로이카의 한 축을 담당했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김 위원장은 7월11일자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정부의 성패는 경제 문제, 국민이 먹고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면서 “정부가 성과를 낼 시간적 여유가 짧게는 6개월, 길게 잡아도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지층의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규제 혁신 없이는 이 정부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앞서 한겨레 인터뷰에선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과 경직성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친정에 해당하는 진보진영을 작심하고 비판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기조 변화에는 경제·고용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평화 이슈와 적폐청산 등을 앞세워 전폭적 지지를 받았지만 정작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집권 중·후반기 국정운영 동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7월12일 경제 현안 간담회에서 이례적으로 고용 부진에 최저임금의 영향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동안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적은 있었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부총리의 발언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문 대통령의 발언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소득주도 성장 대신 포용적 성장이라는 새로운 표현을 쓰고 있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당내 토론회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만큼 용감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강 의원은 “최근 경제상황에 대해 여당 의원으로서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당시 발언은 우클릭하자는 것은 아니었다”면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고집만 부릴 것이 아니라 모든 방법을 다 검토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銀産분리 놓고 지지층 동요 가능성도

 

문재인 정부의 변화 조짐에 지지층도 동요하고 있다. 진보 지식인 323명은 7월18일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개혁 포기’를 우려하며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과 부동산 보유세 등 세제 개편, 재벌 개혁의 후퇴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지식인 선언을 주도한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는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제시했던 소득주도 성장의 본래 취지가 희석되고 길을 잃었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번 성명이 현 정부와의 완전한 결별도 아니지만 단순한 충고도 아니다. 정부가 초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선언을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언문에는 이병천 교수 외에도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교수,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 등 진보 지식인 323명이 이름을 올렸다.  

 

진보 지식인 323명이 7월18일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개혁 포기’를 우려하며 적극적인 개혁정책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 뉴스뱅크이미지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입만 열면 ‘규제 완화’를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움직임이 다소 우려스럽다”며 “일관되게 경제민주화, 소득주도 성장을 소신 있게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아직 1년밖에 안 됐는데 경제 지표가 안 좋다고 해서 정책을 포기하기엔 이르다. 아직 본격적인 정책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긴 어렵다”며 “문 대통령에게 뭔가 잘못된 시그널이 계속 전달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시민단체들이 지금까지는 인수위도 없이 출범했고 1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비판도 자제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친기업 행보로 선회한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쟁점은 은산(銀産)분리다.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을 위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20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 당시 은산분리 완화에 반대하는 이학영·박용진·제윤경 의원 등을 정무위가 아닌 다른 상임위에 배치하도록 당 지도부에 요청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문재인 정부의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시민사회는 이 문제를 고리로 연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의원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을 때부터 흔들리는 인상을 남겼다”며 “차라리 (소득주도 성장을) 뚝심 있게 밀고 가든가, 정책 방향 수정을 공표하든가 택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정책 방향을 유지하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면 대부분 수용하겠지만, 방향을 아예 바꾸는 것은 당내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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