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스트레스로 알츠하이머” 전두환측 주장은 사실일까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7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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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전문의들 “단식·스트레스가 알츠하이머 원인이란 연구결과는 없어”…진단받은 2013년 어떤 상태였는지가 핵심

 

회고록을 통해 고(故) 조비오 신부를 비난해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에서 열리는 공판을 하루 앞두고 입장을 번복해 재판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알츠하이머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8월26일 전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아 법정 진술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냈다. 또 알츠하이머의 발병 원인이 1995년 옥중 단식과 2013년 검찰 수사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여사는 입장문을 통해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전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약을 복용해 오고 있다. 아내 입장에서 볼 때 공판 출석은 매우 난감하다. 90세를 바라보는 고령 때문인지 근간에는 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방금 전의 일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정신건강 상태에서 정상적인 법정 진술이 가능할지도 의심스럽고 그 진술을 통해 형사소송의 목적인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며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공개된 장소에 불려 나와 앞뒤도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동문서답하는 모습을 국민도 보길 원치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여사는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1995년 옥중 단식과 2013년 미납 추징금 환수 수사를 위해 실시한 자택 압수수색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1995년 옥중에서 시작한 단식을 병원 호송 뒤에서 강행하다 28일 만에 중단했는데 당시 주치의가 뇌세포 손상을 우려했다. 2013년 검찰이 자택 압수수색을 벌이고 일가친척·친지들의 재산 압류 소동 후 기억상실증을 앓았는데, 그 일이 있은 뒤 대학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증세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이따금 세브란스병원에 들러 건강을 챙겨왔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가끔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아왔으나 알츠하이머 때문인지, 또 2013년 그런 진단을 받았는지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전 전 대통령의 사례처럼 알츠하이머가 단식이나 심한 스트레스로 생길 수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치매 전문의는 "식사를 하지 않아서 알츠하이머가 생긴다거나 안 생긴다는 연구는 없다. 다만 음식을 먹지 않으면 뇌 기능에 필요한 여러 영양이 부족해진다. 특히 비타민B 농도가 떨어지면 마치 알츠하이머처럼 기억 장애가 생긴다. 그러나 이는 영양을 공급하면 회복 가능하다"면서 "갑자기 스트레스를 받아 알츠하이머가 발생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도 없다. 다만, 스트레스를 장기적으로 받았을 때 그 위험이 약간 커진다는 보고는 있다"고 설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발간한 회고록에 기억력 이상을 언급한 바 있다.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편 여는 말에 “근년에 이르러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까운 일들이 기억에 저장되지 않는 사례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사물을 인식하고, 사리를 판단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정리해야 할 일들을 서둘러 마무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오래전의 일들은 마치 그림처럼 생생하게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그 기억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내서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고 썼다. 

 

이 여사의 주장대로 전 전 대통령이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면 지난해 회고록을 어떻게 낼 수 있었느냐는 의혹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재판에 나가지 않으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8월27일 전 전 대통령이 법정에 나오지 않은 상태로 열린 공판에서 재판을 맡은 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호석 판사도 전 전 대통령 주장대로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면, 2017년 출간한 회고록을 쓸 수 없었지 않았겠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 대신 법정에 나온 정주교 변호사는 “회고록을 준비한 것은 오래전이다. 회고록을 준비하면서 2013년 가족들이 이상 증세를 보고 병원에 가서 검진했더니 알츠하이머를 확인했다. 증세를 보인 것은 2013년보다 몇 해 전이다”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2013년 그의 상태가 어떤 정도인지에 따라 현재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게 전문의의 판단이다. 한 치매 전문의는 "알츠하이머의 자연 경과는 이렇다. 뇌에서 발병한 후 10여 년 동안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그 후 남들보다 기억은 조금 떨어지는데 사는 데는 불편하지 않은 단계 즉 경도인지장애를 수년간 앓는다. 이후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치매 단계로 발전한다"며 "미국 레이건 대통령도 임기를 마친 후 알츠하이머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임기 중 초기 단기기억 장애가 일어났으나 장기 기억에는 문제가 없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처럼 진단받은 시점에 어떤 상태였는지에 따라 현재 상태를 가늠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알츠하이머병은 1907년 독일 정신과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에 의해 최초로 발견됐다. 알츠하이머는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 질환이다. 보통 8~10년에 걸쳐 서서히 발병하여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의 악화가 점진적으로 진행하는 병이다. 초기엔 기억력 문제가 생기고 이후 언어와 판단력 등 인지기능 장애가 생긴다. 말기엔 경직, 대소변 실금, 감염 등 여러 합병증도 나타난다. 

 

이 병을 일으키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과도하게 형성돼 뇌에 쌓이면서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전적 요인도 무시하기 어렵다. 의학계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이들 중 40~50%가 유전적 요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가면을 쓴 사탄’이라고 표현해 조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에게 고소당했다. 5월과 7월에도 재판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연기신청으로 두 번 연기됐다. 전 전 대통령은 8월27일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할 것이라는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전했었다. 그러나 출석을 하루 앞두고 입장을 번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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