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지구③] 두 여자의 '플라스틱 쓰레기 제로' 도전기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8.28 16: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년 동안 모은 플라스틱 쓰레기, 유리병 하나 분량···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이사까지

 

[편집자 주]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 수심 1만898m에서 발견한 것은 뜬금없게도 비닐봉지입니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무인도는 30년 후 세계 최대 쓰레기장이 됩니다. 수만 년 전의 무공해 공기를 품고 있을 것 같은 남극의 눈에서 검출한 것은 유해 화학물질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플라스틱입니다. 1분마다 트럭 1대 분량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갑니다. 세계 바다에 떠도는 플라스틱 조각은 약 5조 개에 이릅니다. 해류가 순환하는 곳에는 아예 플라스틱 쓰레기 섬이 생깁니다. 태평양에는 플라스틱 1조8000억 개로 형성된 쓰레기 섬이 있습니다. 크기가 남한 면적의 15배입니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 섬을 국가로 인정해달라고 유엔에 요청했습니다. 실제로 이 섬엔 국기·화폐·우표·여권도 있습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이 섬의 1호 국민입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오염됐고, 웬만한 나라보다 큰 플라스틱 섬까지 생겼으니 가히 '플라스틱 지구'라고 부를 만합니다. 시사저널은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협조를 받아 '플라스틱 지구'를 고발하는 탐사기획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앞으로 수차례에 걸쳐 '조선 시대에 플라스틱이 있었다면·한 주먹도 안 되는 4년 동안 모은 쓰레기양·쓰레기차가 없는 마을' 등 재미있는 주제로 그 내용을 풀어놓겠습니다. 모자이크 같은 단편의 이야기를 다 끼워 맞추면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집니다.

 

©시사저널 고정희

 

미국 뉴욕에 사는 20대 여성 로렌 싱어(Lauren Singer)는 '4년 동안 플라스틱 쓰레기양을 유리병 한 개에 다 들어갈 정도로 줄인 사람'으로 유명하다. 현재 플라스틱을 대신할 친환경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뉴욕대에서 환경 과학을 전공하던 2012년 그는 '플라스틱 쓰레기 제로(plastic waste 0)'를 실천하기로 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려는 생활 태도를 실천하게 된 것은 어느 날 냉장고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그는 테드(TED) 강연과 현지 언론을 통해 "어느 날 저녁을 준비하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작은 식품들이 플라스틱 포장에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또 학교 친구가 매일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점심을 싸 오는 것을 봤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플라스틱 쓰레기가 없는 삶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7년 한 생활잡지 표지에 등장한 로렌 싱어가 4년 동안 모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담긴 유리병을 들고 있다. (©Experience life)

 

"작은 변화만으로도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우선 로렌 싱어는 플라스틱 생활용품을 줄여나갔다. 점점 소유하는 물건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미니멀 라이프(minimal life)를 실천하게 됐다. 미니멀 라이프는 소유하는 물건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물건을 사더라도 플라스틱 제품은 피했다. 

 

그래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전혀 나오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의류 가격표, 음료수 뚜껑, 빨대, 머리끈, 과일에 붙어있는 스티커, 약병에 있는 습기제거제 등 뉴욕시가 재활용하지 않는 플라스틱 조각들을 모았다. 4년 동안 모은 그 양은 작은 유리병 한 개에 들어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로렌 싱어가 4년 동안 모은 플라스틱 쓰레기엔 의류 가격표, 음료수 뚜껑, 빨대, 머리끈, 과일에 붙어있는 스티커, 약병에 있는 습기제거제 등이 있다 (©TED)

 

이 내용과 함께 플라스틱 쓰레기를 담은 유리병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자 일반인의 관심이 뜨거웠다. CNN 등 현지 언론도 이 사실을 조명하자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로렌 싱어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지 언론을 통해 "나는 매우 게으르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야 했다면 나는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작은 변화만 있으면 된다. 예컨대, 카페에서 음료수를 주문할 때 빨대를 빼달라고 요청하거나, 장을 볼 때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정도다. 예전엔 치약 하나를 사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가게까지 가서 8달러를 쓰고 집에 오는 데 30분을 허비했다. 그러나 지금은 코코넛오일과 베이킹소다 등 3가지 재료로 치약을 만들어 사용한다. 30초밖에 걸리지 않고 가격도 50센트다. 이런 식으로 조금만 신경 쓰면 플라스틱 쓰레기뿐만 아니라 시간과 돈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재은씨는 장을 볼 때 작은 과일은 삼베 주머니와 스테인리스 밀폐 용기에 담는다. (©jeonjaeeun)

 

5ℓ 종량제 쓰레기봉투 하나로 2개월 이상 사용

 

로렌 싱어의 '플라스틱 쓰레기 제로' 실천은 지구촌 수많은 사람에게 자극제로 작용했다. 경기도 성남에 사는 30대 직장인 여성 전재은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2016년 TV에서 환경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로 했다. 쇼핑 횟수는 물론 가지고 있는 물건 수도 줄였다. 사용하는 물건 개수가 줄어드는 만큼 배출하는 쓰레기양도 줄었다. 2개월 넘게 나온 쓰레기가 5ℓ짜리 종량제 쓰레기봉투 하나로 해결됐다. 전씨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문제였다. 1인 가구라서 장을 볼 때 소포장이나 개별 포장된 것을 샀는데,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포장돼있다. 처음엔 재활용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2017년 플라스틱 쓰레기 제로를 실천하는 로렌 싱어의 TED 강연을 인터넷에서 보고 나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를 실천했지만 가장 큰 실천은 이사할 때 텃밭이 있는 집을 고집했던 일이다. 그는 최근 서울에서 성남시로 이사한 후 계획대로 작은 텃밭을 만들어 채소와 과일을 가꾸기 시작했다. 이것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이라는 게 전씨의 주장이다. 그는 "텃밭에서 채소나 과일을 키우면 싱싱하고 맛도 좋은 데다 포장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 또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사용하니까 음식물 쓰레기도 거의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해 전씨는 그린피스 홈페이지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10가지 팁을 소개했다. 그는 "사람마다 생활 방식이 달라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플라스틱 쓰레기 제로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영상이나 블로그를 참고하면서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재은씨는 주방에서 플라스틱 용기 대신 유리병을 사용한다. (©jeonjaeeun)​

 

전재은씨가 전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제로' 실천팁 10가지 

 

1. 과대 포장 제품 거르기

마트나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과도하게 플라스틱 포장이 된 제품을 거르고, 최대한 단순하게 포장된 제품을 구입한다. 예를 들면, 사과를 사더라도 스티로폼 접시·포장캡·랩포장이 된 것보다 종이상자에 담긴 사과를 산다. 또 전통시장에서 사과만 장바구니에 담아온다. 

 

2. 삼베 주머니 활용 

과일이나 채소는 포장 없이 살 수 있는 청과물 가게나 과일 트럭을 자주 이용한다. 흔히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방울토마토 등 작은 과일은 삼베 주머니에 담아 보관한다.

 

3. 스테인리스·유리 용기 사용 

흔히 일회용 플라스틱 패키지나 비닐봉지에 담아 주는 식료품은 가지고 간 스테인리스 밀폐 용기에 담아달라고 요청한다. 주방에서도 플라스틱 식기와 조리기구 대신 영구적이고 환경 호르몬 위험이 없는 스테인리스 제품과 유리 용기를 사용한다.

 

4. 천연 수세미·설거지 솔 이용

플라스틱 수세미 대신 식물 수세미를 잘라 사용하거나 설거지 솔을 사용한다.

 

5. 고체 비누 사용

샴푸, 컨디셔너, 바디워시 등 여러 제품 대신 고체 비누 하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는 데 사용한다. 주방에서도 친환경 비누를 사용한다. 플라스틱 용기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6. 바디 브러시 선호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폴리에스테르 성분의 샤워 타올 대신 바디 브러시를 사용한다.

 

7. 만년필 사용

만년필을 사용하면 플라스틱 볼펜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만년필 잉크도 일회용 카트리지보다 유리병 잉크를 사용한다.  

 

8. 생리컵 이용

일회용 생리대는 플라스틱 소재의 얇은 막들이 겹쳐진 방수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분해되려면 100년 이상 걸린다. 생리컵을 사용하면 매번 생기는 생리대 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사람에 따라서는 피부 습진이나 생리통도 줄일 수 있다. 

 

9. 폐플라스틱을 활용한 제품 구입

많은 패션 브랜드가 해양 폐기물이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활용해 옷, 신발, 수영복, 화장품 용기 등을 만든다. 

 

10. 한번 산 물건 오래 쓰기

결국 지금 사용하는 생활용품이라도 버리는 순간 플라스틱 쓰레기가 된다. 이미 가지고 있는 플라스틱 제품을 계속 사용하면서 새로운 플라스틱 제품 구매를 하지 않는 것도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