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망아지, 프랑스 파리의 집값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21 13:49
  • 호수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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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하녀방’ 구하기도 힘든 부동산 지옥

 

새 학기가 시작되는 매년 9월이면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 학생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파리에 도착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것은 도시의 낭만이 아닌, 바로 살벌한 파리의 집값이다.

 

프랑스엔 전세가 없다. 따라서 집을 구하는 방법은 다달이 세를 내는 월세로 들어가거나 집을 사는 것, 이 두 방법뿐이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프랑스 전체 주택시장의 구매력은 다소 둔화되고 있는 반면, 파리만은 거의 2배 속도로 활력을 띠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평균 주택 가격은 1㎡당 2545유로(333만원) 선인 반면, 파리의 경우 1㎡당 평균 9510유로(1245만원)에 육박한다. 르피가로의 부동산 부문 팀장인 기 호케는 “파리 집값은 지난 5개월간 평균 7% 상승했다”고 지적하며 “올해 안에 1㎡당 1만 유로(1309만원)대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 파리 시내에 위치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을 지나가던 한 시민이 창문에 붙은 집값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 AP 연합

 

3평 집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

 

현재 프랑스에서 부동산은 최고의 안전자산이라 손꼽혀온 ‘금’에 버금가는 투자처로 인식되고 있다. 더구나 파리의 경우 수요가 넘쳐 도통 집값이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부동산 경기의 활황은 학생들과 사회 초년병들이 다수 진입해 있는 월세 시장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통 파리에서 한 사람이 묵을 수 있는 스튜디오(우리나라 원룸)의 평균 월세 가격은 최소 600유로(78만원)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주거 형태는 스튜데트(studette)라는 소형 단칸 아파트다. 스튜디오 중에서도 가장 작은 크기의 집으로, 평균 면적 9㎡(2.7평)다. 동화 《소공녀》에서 하녀 세라가 머문 다락방과 유사해 ‘하녀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9㎡는 프랑스 1인 임대 주거의 최소 단위이기도 하다. 그 이하로는 임대 자체가 불가능하다. 9㎡ 안엔 화장실을 제외한 침대·싱크대·샤워실 등 웬만한 건 다 들어 있다. 화장실은 대부분 복도에 공동화장실 형태로 설치돼 있다. 대개 건물의 6~7층에 위치해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파리에선 이 집에 들어가는 것도 경쟁이 매우 치열해 입주에 성공하면 축하할 일이다. 

 

파리에선 월세 세입자들이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거래할 경우 한 달 치 집세를 중개수수료로 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초기 지출을 줄이기 위해 학생들은 세입자와 집주인을 직접 연결해 주는 사이트를 활용한다. 이곳에 게재되는 집 광고를 보고 명시된 방문 날짜에 찾아가 보면 적게는 10명, 많게는 30여 명의 경쟁자들을 만나게 된다. 집주인은 그들 가운데 세입자를 선정한다.

 

프랑스에선 주인이 함부로 세입자를 내쫓을 수 없다. 주택 거래에서 상대적으로 ‘을’인 세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입자를 위한 배려로 인해 오히려 세입자들은 거래 과정에서 매우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곤 한다. 직장인의 경우 월세의 3배가 넘는 급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기도 한다. 

 

집주인들이 학생 세입자에게 요구하는 건 단연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부모의 보증이다. 만약 부모가 프랑스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 학생들의 경우 1년 치 집세를 은행에 묶어두는 은행보증을 요구한다. 적어도 집세를 못 받게 되는 경우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프랑스 언론에선 연일 학생들이 파리에서 집구하기란 “지옥과 같다”고 표현한다.

 

작은 스튜디오를 임차하는 학생들과 달리 2인 이상 가정의 경우 월세는 1500유로(196만원)를 훌쩍 넘어간다. 이렇다 보니 파리에서 높은 집세를 감당하던 세입자들은 어느 순간 ‘세입자로 남을 것인가, 집주인이 될 것인가’하는 고민에 부닥치게 된다. 

 

프랑스 경제 전문지 ‘레제코’의 장 드니 에라드 기자는 “이는 끊임없는 논쟁을 유발하는 복잡한 질문”이라고 말한다. 낮은 이자율은 부동산 구매에 유리한 환경이지만 시장의 추세와 주거지역, 거주기간 등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라 어느 쪽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지 쉽게 판가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파리에선 2년 이상 세입자로 거주할 경우 차라리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하는 게 더 경제적인 선택으로 여겨지고 있다.

 

 

멀어지는 ‘파리지앵’의 꿈

 

현재 금에 버금가는 안전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는 프랑스의 부동산, 특히 파리의 집에 대한 투기 열기는 없을까. 파리의 경우 대개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보다는 임대업을 통한 투자 경향이 더 일반화돼 있다. 투기를 하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세금도 많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어떤 주택이든 구입 시 계약 체결과 동시에 지불하는 수수료가 거래액의 7~8% 선이다. 예를 들면 20만 유로(2억6000만원)의 부동산을 구입할 때 내는 중개수수료만 1만2000유로(1270만원)인 셈이다. 구입하는 아파트나 주택이 새 건물일 경우 수수료는 2~3%로 낮아지지만 그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이다.

 

부동산 소유세는 최근 한국에서 개정된 종부세 수준의 세금을 구간별로 부과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5년 이하의 집을 되팔 경우 이때 발생하는 부가가치에 대한 세율이 최고 34%까지 치솟는다는 점이다. 집값으로 생긴 이윤에 약 19%를 부가세로,  15.5%를 사회분담금으로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세율은 개별 거래의 특수성(구입 시기, 고정수입 수준)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한다. 

 

르피가로의 기 호케 기자에 따르면, 파리의 평균 집값은 47만 유로(6억1000만원)로, 프랑스 전체 평균 집값인 22만 유로(2억8000만원)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선 가격대가 맞으면 집을 내놓은 지 일주일 안에 대부분 팔린다고 귀띔한다. 하루가 다르게 무섭도록 치솟는 집값과 주택시장의 약자일수록 더욱 숨이 막혀오는 부동산 현실은 과연 한국의 서울이나 프랑스의 파리나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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