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빌딩 숲 서울, 매력 없어” 관광 대국 스페인의 일갈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10.24 10:36
  • 호수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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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곤살로 오르티스 주한 스페인 대사 “관광 성공하려면 자연 보존해야”

남산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창 뒤로 가을 햇볕이 내리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언덕배기에 위치한 주한 스페인 대사관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작은 연립주택 같았던 대사관에는 스페인 출신 화가 피카소의 그림과 스페인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 여러 점 걸려 있었다. 천장은 꽤 낮았고 조명은 푸근한 느낌이 드는 노란 빛깔이었다.

곤살로 오르티스 주한 스페인 대사의 집무실은 3층 꼭대기 가장 큰 방이었다. 원목의 책상 앞에 걸터앉아 있던 오르티스 대사 옆 벽엔 커다란 우리나라 지도가 붙어 있었다. 오르티스 대사는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한국 여행지를 추천해 달란 기자의 요청에 지도의 이곳저곳을 짚으며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고”라고 말했다. 그중에 서울은 없었다.

서울이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서울의 고층빌딩은 멋있기도 하지만 불편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오르티스 대사가 한국에 온 건 벌써 5년째. 2014년 10월 주한 스페인 대사로 부임한 이후 꼬박 4년간 서울에서 지냈다. 오래 머물던 익숙한 곳이어서 서울을 제외한 건 아니었다. 그에게 ‘관광하고 싶은 도시’는 명확했다.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자연과의 공존을 택한 것이 관광 대국 스페인의 비결”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서울은 그의 기준을 채우기엔 부족한 곳이었다.

오르티스 대사는 ‘아시아통(通)’으로 불린다. 한국 이외에도 일본·중국·호주·베트남·인도 등 외교 경력의 대부분을 아시아에서 보냈다. 아시아 사정에 밝은 그가 보는 한국은 어떤 곳일까. 10월4일 주한 스페인 대사관에서 만난 곤살로 오르티스 대사를 통해 한국을 짚어봤다. 그에 따르면, 스페인에 한국은 같은 선상 양극에 놓인 나라였다. 서로 다른 듯하면서도 배울 점이 많은 국가였단 의미다.

 

곤살로 오르티스 주한 스페인 대사가 ‘굿모닝 아메리카’ 신문 1면에 실린 방탄소년단 사진을 들어보이며 “스페인에서도 BTS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스페인을 찾는 한국인 관광 규모가 5년 전에 비해 10배 늘었다. 요인이 뭐라고 보나.

“예능 프로그램이 한몫했다. 《윤식당》이나 《꽃보다 할배》가 큰 인기를 끌면서 스페인 여행 욕구를 자극한 것 같다. 특히 나와 같은 할아버지들도 저 멀리 유럽까지 여행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꽃보다 할배》의 역할이 컸다. 한국인 자체가 해외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그에 발맞춰 스페인 직항편을 늘린 것도 시의적절했다.”

올해 말부터 시행한다는 ‘한-스페인 워킹 홀리데이’ 비자 발급 진행 상황은 어떠한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양국이 비자 협약에 서명은 했는데 아직 이행은 못 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안에 시행될 수 있다는 건 확신한다. 비자가 발급되면 매년 한국과 스페인 각각 1000명의 청년들이 문화와 일자리를 공유할 수 있다.”


반대로 한국을 찾는 스페인 사람들은 지난해 2만3000여 명에 불과했다. 스페인에 한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인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 중심에 정말 큰 한식당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면서 한국 음식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있다. 방탄소년단(BTS)도 빼놓을 수 없다. 스페인 청년 사이에서 BTS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한국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곤살로 오르티스 대사는 스페인의 대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말라가와 라 팔마, 그라나다, 산티아고 등을 추천했다. 사진은 스페인 말라가 대성당 ⓒ 스페인관광청 제공



스페인은 세계 3위의 관광 대국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관광업은 걸음마 수준이다. 스페인의 관광 비결은 무엇인가.

“‘보존’이다.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과, 오래된 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광에서 중요한 건 휴식이다. 생각해 봐라. 모르는 나라의 길을 걷는데 여기저기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고 쓰레기가 나뒹군다면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겠는가. 또 최근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그에 비춰볼 때, 거대 도시 서울의 빌딩숲은 걱정덩어리다. 물론 서울의 현대적 모습에 압도당하는 외국인도 있겠지만, 적어도 환경을 신경 쓰는 유럽인들에게 마냥 좋게 보이진 않을 거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지방도 좋은 여행지다. 전라북도 전주나 강원도 속초, 경상남도 창원은 역사와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다.”


다른 이야기도 해 보자. 스페인의 실업률은 두 자릿수다. 게다가 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스페인 청년들의 자조가 깊어지고 있다던데.

“스페인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사정이 어렵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근데 달리 생각할 필요도 있다. 과거에 비해 요즘엔 해외 교류가 활발하지 않나. 청년들이 국경의 제한 없이 기술이나 문화를 배워오면 그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거다.”

스페인 청년들은 어떤 교육을 받나.

“학구열 높은 한국과 비교하면, 스페인은 ‘엔조이(enjoy)’에 가깝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도 모두 대학은 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창의성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런 인식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내 생각엔 직업전문학교로의 진학이 더 활발해져야 한다. 앞으로 모든 교육이 엔지니어링 같은 기술적 교육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스페인의 경우,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방향의 교육 혁신에 대해선 여야(與野) 정치권 모두 동의하고 있다.”

스페인과 한국 정부의 대응은 정반대다. 스페인은 고강도 노동 개혁을 시도하고 있지만, 한국은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등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방향을 택했다. 양국 모두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경제성장률도 답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기본은 재정이다. 늘어만 가는 복지 규모, 줄어드는 신규 일자리,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국가 재정에 구멍이 나서 파산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이다. 양국의 각기 다른 방향 중 뭐가 옳고 그른지 저울질할 순 없다. 다만, 서로 부족한 산업군을 확장해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제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서비스업은 아니다. 반대로 스페인은 서비스업은 굉장한데 제조업은 부족한 편이다. 부족한 점을 서로 메울 수 있다면 최고의 관계다.”

스페인에 투자할 만한 사업 분야를 추천한다면.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스페인의 음식 산업은 정말 잘돼 있다. 아마 한국보다 자율성이나 사회보장 측면에서 훨씬 잘돼 있을 거다. 또 스페인 내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어 시기도 좋다. 신재생에너지 사업도 좋은 분야다. 스페인은 4차 산업혁명이나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같이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오는 11월 은퇴를 앞두고 있다.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나.

“건강이 허락한다면, 아시아와 스페인의 관계를 이을 수 있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싶다. 당장 하고 싶은 건 한국 예능을 챙겨 보는 일이다. 《윤식당》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은퇴 이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쉬면서 한번 볼 생각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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