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학생 추락사, ‘대처’ 없었고 ‘상처’ 남았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11.22 17:25
  • 호수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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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학생 중 한명 폭행 전력 드러났지만…“학교에서 자치위원회 연 적 없다”

11월13일 집단폭행 당한 뒤 추락사한 인천 중학생 A(14)군은 아버지 없이 러시아 출신 고려인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학생이었다. 그의 죽음엔 ‘전조증상’이 있었다. 가해학생 4명 중 한명이 예전에도 폭행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는 미리 대응하지 않았던 걸로 알려졌다.

인천 연수경찰서에 따르면, 가해 여학생 B(15)양은 올해 1월 또래 여학생에게 폭행을 휘두른 적이 있다. 이 사건으로 상해 혐의가 적용된 B양은 불구속 입건됐다. B양은 A군의 패딩점퍼를 입고 법원에 나와 논란이 된 가해 남학생 C(14)군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김성우 인천시교육청 장학사는 11월19일 “이번 사건의 가해 학생들에 대해 학교에서 자치위원회를 연 적은 없다”고 했다.  

 

인천에서 10대 중학생이 또래 학생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뒤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진 사건과 관련해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이 22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교육청 소회의실에서 '학교폭력예방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학교폭력에 침묵한 학교···“자세한 내용 못 밝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는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6가지 경우 중 하나가 발생하면 소집하게 돼 있다. 그 경우란 △자치위원회 재적위원 4분의 1 이상이 요청하는 경우 △학교장이 요청하는 경우 △피해학생 또는 보호자가 요청하는 경우 △가해학생이 협박 또는 보복한 사실을 신고 받거나 보고받은 경우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학교폭력 발생 사실을 신고 받거나 보고받은 경우 등이다. B양이 폭행으로 입건됐기 때문에, 학교 측도 학교폭력 발생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

학폭위는 가해학생에 대한 특별교육이나 봉사활동, 전학처분 등 조치 수위를 결정한다. 하지만 학폭위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사법부는 “학교의 교사는 학생을 보호·감독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학교는 A군을 가해자들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자세한 얘기를 피했다. B양과 C군이 다니는 중학교의 교감은 11월22일 “우리 학교는 학생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항상 자치위원회를 연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학생의 신원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해당 학교를 관할하는 인천동부교육청의 고현숙 장학사는 “학교폭력예방법 21조(비밀누설금지)에 따라 말해줄 부분이 없다”고 했다.

당국이 완전히 손을 놓았던 건 아니다. 단 비극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찰은 B양을 입건한 뒤 ‘위기청소년’으로 지정했다. 1년 이내에 또 범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위기청소년으로 지정되면 6개월간 월 1회씩 면담을 하게 된다. 그런데 경찰 관계자는 “B양이 경찰과 만나기를 거부해 11월까지 전화로만 4번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또 B양은 올 4월 인천시교육청 산하 해밀학교에 들어갔다. 이곳은 일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다. 그러나 B양은 해밀학교에서 무단결석을 해 10월 원래 다니던 중학교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 달 뒤에 A군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됐다.

이현정 동서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11월22일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학폭위의 인적 구성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학폭위는 학부모 위주로 운영되다보니 전문성이 없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경우도 많다”며 “법조인과 의사 등 각계 전문가들을 학폭위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지방 교육지원청이 전문가 인력풀을 꾸려 개별학교를 지원하거나, 학폭위를 직접 소집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우리 사회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수·우·미·양·‘가’

한편 A군과 같은 다문화가정 학생에 대한 학교의 관심이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11월19일 “이주민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는 지난 1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다”며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2009년부터 다문화 가정에 대한 양적 연구를 진행해왔다.

다문화가정은 이미 한국 사회의 일부가 됐다. 최근 5년간 다문화가정 초·중·고등학생 수는 매년 1만명 이상 증가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그 수는 2012년 4만6900여 명에서 지난해 10만 9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학생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치면 0.7%에서 1.9%로 뛰었다. 이 비율은 앞으로 계속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저출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인 학생 수는 지속적으로 줄고 있어서다.

추세가 이렇지만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인식은 과거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여성가족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다문화가정에 대한 일반 국민의 열린 정도를 나타내는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2015년에 53.95점(100점 만점)으로 조사됐다. 2012년 51.17점과 비교했을 때 2.78점 증가했다. 그럼에도 수우미양가로 따지면 여전히 ‘가’에 머물러 있다.

청소년의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2015년 67.63점으로 일반 국민보다는 높았다. 그런데 청소년들 중 다문화와 관련해 “이주민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15년 23.2%로 조사됐다. 향후 취업에 있어 약 4명 중 1명이 이주민을 위협요소로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는 늦게나마 대책을 마련했다. 교육부는 올해 초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을 개정, 9월에 일선 학교에 배포했다. 여기엔 폭력 피해를 입은 다문화 학생들에 대한 대응지침이 실려 있다. “자치위원회에 전문가를 참여시켜 피해 다문화 학생의 문화적 특성 등에 대한 의견을 참고해야 한다” “가해학생에게 다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이 가능한 내용을 포함한 특별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등이다. 이전까진 가이드북에 없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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