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우리에게 새로 집 지을 곳이 없을까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2.17 16:00
  • 호수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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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서울 도심 활용할 ‘역발상 시각’ 필요…재개발 세운상가 주거비율 90%까지 확대 주목

56년 전인 1962년 9월7일, 서울 한남동에서 맞은편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신사리(지금의 강남구 신사동)로 건너가던 나룻배가 전복돼 36명이 사망·실종됐다. 사고 발생 5일 후인 1962년 9월12일, 서울시는 사고를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제3한강교를 건설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1962년 10월 서울시는 기존 268.35㎢이던 서울시의 면적을 552㎢로 확장하는 서울특별시 행정구역조정안을 발표한다. 서울이 2배 넘게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강남 개발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알려진 1968년 경부고속도로 계획이 발표되기 한참 전에 이미 서울시는 한강 너머로 확장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의 확장은 거의 6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이뤄져왔다. 1970년대 한강을 건너 강남과 잠실이 주거지역으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서울을 벗어나 분당과 일산으로 대표되는 1기 신도시들이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20km에 해당하는 지역에 만들어졌다. 2기 신도시는 40km 떨어진 곳에 만들어졌다. 집 지을 땅이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에 외곽으로, 더 멀리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출퇴근하는 것을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광역교통망 투자 지연으로 인한 통근시간 증가와 맞벌이 확대로 인한 사회구조 변화로 사람들이 서울로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서울의 집값이 뛰기 시작했다. 모두가 서울에 새로 집 지을 땅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번 오르기 시작한 서울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정부는 강력한 대출 규제를 포함한 대책으로 일단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규제에 의한 진정세가 언제까지 계속되기는 힘들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 남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 시사저널 최준필

 

토지가 부족하다는 선입견

결국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법은 공급의 확대다. 그렇지만 공급을 위한 토지가 부족하다. 그래서 그린벨트를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이를 거부하는 서울시에 대해 비난이 쏟아진다. 정말 우리에게는 새로 집을 지을 곳이 없을까? 아니다. 많다. 땅이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생각이 미치지 못할 따름이다. 어디에? 사람들이 떠나왔던 바로 그곳, 서울 도심에 있다.

서울 도심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이들은 우뚝 솟은 고층건물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고층건물은 생각보다 적다. 도심의 상당수는 3~5층 내외의 저층건축물이 차지하고 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에 지어진 건물 대다수는 노후화됐고 주거기능도, 상업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용산의 건물 붕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적인 안전마저 위협받고 있는 곳이 도심의 현실이다.

도심 지역 대부분은 도시계획 용도구역상 상업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의 토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주거지역에 비해 높은 용적률을 주고 있는 것이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주거지역의 경우 용적률 200~300%를, 상업지역은 최대 900~1500%에 이르는 높은 용적률을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정된 땅에 더 높은 건물을 지어 토지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제약조건으로 인해 서울 도심의 땅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도시계획조례를 통해 도심의 경우 500~600%의 용적률만 허용하고 있다. 고층건물이 도심의 역사적 경관과 분위기를 저해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과연 서울 도심이 고색창연하고 역사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을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낙후된 도심을 바꾸기 위한 재개발은 19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다. 플라자호텔, 교보빌딩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고층건물들은 이런 도심재개발을 통해 만들어져왔다. 그러나 이런 건물은 업무시설로 이뤄져 있는 만큼, 퇴근시간이 지나면 도심은 사람이 거의 없는 유령도시로 바뀌게 됐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 도심재개발 사업은 사무용 건축물 공급 과잉으로 인해 사업성마저 불투명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도심이 왜 저렇게 방치됐을까를 생각해 보자. 사람이 떠났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도심을 떠나게 됐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주거공간을 찾아서’일 것이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새로운 주거공간은 외곽에 공급됐고, 사람들은 이를 좇아 계속 외곽으로, 더 멀리 이동하게 됐다. 그렇다면 다시 도심에 주거공간을 공급하면 주택의 공급, 도심의 부활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을 주도한 지역은 업무지역 인근에 위치한 마포, 용산, 성동이었다. 도심에 주거지역이 공급된다면 업무지역과 도보로 이동 가능한 지역이기에 수요는 충분히 보장된다. 도보로 충분히 이동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이므로 차량 이동은 줄어들게 된다. 학생 수 부족으로 인해 폐교 위기에 처해 있던 도심의 오래된 학교들은 다시금 살아나게 되고, 저녁에도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는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가 가능하다. 도심에 주거지역이 공급된다면 이런 꿈같은 변화는 자연스럽게 가능할 것이다.


도심에 주거지역 공급된다면 어떨까

다행스럽게도 서울시도 최근 이러한 방식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세운상가 주변지역 재개발에 대해 과거 주거비율 50%를 90%까지 늘려주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되면 세운상가 주변의 정비구역에서만도 약 3만 가구의 주택 공급이 가능해진다. 사람들의 수요가 몰리는 곳에 적절한 공급이 이뤄진다면 가수요는 진정되고 주택시장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입자 문제를 비롯해 복잡한 토지권리 관계, 각종 규제의 정비, 그리고 특혜 논란까지 많은 논란과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도시계획과 도시개발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럼에도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을, 2500만 명의 수도권을 만들었다. 이제 그런 경험을 토대로 우리가 떠나왔던 그곳 도심으로 방향을 잡을 때가 왔다.

1962년 나룻배로 한강을 건너 한남동과 신사리를 오가던 사람들 가운데 한강 이남에 대규모 주거지가 건설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도시가 건설될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역사는 익숙함과의 결별에서 시작된다. 한남동 나루터 전복 사고가 발생한 지 60여 년이 다 돼 가는 지금, 도심을 등지고 멀리 떠나던 흐름을 되돌릴 때가 됐다. 우리가 떠나왔던 그곳 도심을 다시 사람의 온기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살아 있는 공간으로 만들 때가 왔다. 떠나왔던 그곳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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