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물⑨] 베트남 ‘국민 영웅’ 박항서 감독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8.12.21 14:14
  • 호수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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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분야] 축구대표팀 맡아 승승장구 ‘박항서 신드롬’ 불러와…한국 기업도 ‘박항서 효과’ 톡톡히 누려

그야말로 ‘박항서 신드롬’이다. 2018년 한 해 박항서 감독은 스포츠계는 물론 사회·경제·문화계 전반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베트남에서 국민적 영웅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그는, 한국과 베트남을 이어주는 민간 외교관으로서도 최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스포츠 분야 올해의 인물에 당당히 뽑힐 만하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10년 만에 스즈키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자 베트남 전역이 흥분에 휩싸였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을 연상시키듯 밤새도록 축제가 펼쳐졌다. 박항서 개인을 넘어 대한민국에 대한 찬사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히딩크 감독 보좌해 2002 한·일월드컵 신화 일궈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맡은 박항서 감독은 연령별 대표도 함께 맡으면서 ‘박항서 매직’의 시작을 알렸다. U-23 대표팀을 이끌며 숙적 태국을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2018년에도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결승에 진출했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4강에 올라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런 후 스즈키컵 우승으로 동남아시아 최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다.

박항서 감독이 축구 인생에서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축구와의 첫 인연부터 다른 선수들보다 늦었다. 지리산 산골에서 자란 그는 고교 입시 때까지는 운동선수를 꿈꾸지 않았다. 당시 1차로 지망했던 고교에 가지 못하고 2차로 지망했던 고교에 들어가 축구 인생을 뒤늦게 시작한 것이다.

늦게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U-20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럭키금성 창단 멤버로 프로축구 초창기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다. K리그 통산 115경기에 출장해 20골 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현역 시절 그의 별명은 ‘밧데리’(배터리)였다고 한다.

박 감독은 1989년 일찌감치 럭키금성 코치로 변신해 지도자 수업에 들어갔다. 럭키금성을 나와서는 미국월드컵 국가대표팀 트레이너와 수원 삼성 코치를 지냈다. 그의 축구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를 맡아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낸 것이다.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의 ‘형님 리더십’은 한·일월드컵을 통해 재평가 받았다.

같은 해 열린 부산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감독을 거쳐 포항 스틸러스 수석코치로 지내던 박 감독은 2005년 생애 처음으로 프로팀 감독을 맡아 홀로서기에 나섰다. 도민구단인 경남FC였다. 신생팀을 맡아 돌풍을 일으키면서 히딩크 감독의 그늘에서 벗어나 ‘박항서 신화’의 싹을 틔웠다.

하지만 싹이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다. 2007년 경남FC를 떠나 전남 드래곤즈에 이어 상주 상무 감독에서 물러난 2016년, K리그에서 더 이상 그를 찾는 구단이 없자 창원시청 감독을 맡게 됐다. 이로써 축구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때 박 감독의 부인이 동남아시아 쪽이라도 알아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고 마침 베트남에서 그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낙점하면서 부활의 계기를 마련했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 모집 당시 전 세계에서 300명 가까운 지원자가 응했다고 한다. 면접 때 박항서 감독은 작은 키를 어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가 작은 자신이 베트남의 키 작은 선수의 비애를 잘 알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베트남만의 축구 스타일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결국 베트남은 그를 선택했고, 이 선택은 최상의 결과를 낳았다. 

 

12월15일 하노이의 미딘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스즈키컵 결승 2차전에서 베트남 관중들이 태극기와 박항서 감독의 사진판 등을 들고 응원하고 있다. ⓒ EPA 연합


한국 기업도 베트남에서 ‘박항서 효과’ 거둬

‘박항서 신드롬’이 불러온 베트남의 한국에 대한 우호 감정은 우리 경제에도 특별한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베트남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는 ‘박항서 정신’을 경제 발전 모델에 넣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쑤언푹 총리가 베트남 산업 지원 육성을 위한 솔루션 개발 회의에서 “박항서 감독이 축구를 통해 베트남에 위대한 업적을 쌓았던 방법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비전을 승화시킬 필요가 있다”며 베트남 경제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박항서 감독의 성공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베트남은 한국 경제와의 교류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국가다. 최근 들어 한국 기업들의 투자가 집중되는 곳이기도 하다. 박항서 열풍은 베트남 시장 공략에 나선 한국 기업 입장에서 더없는 호재다. 베트남 전체 TV 시장 점유율 40%대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박 감독을 TV 광고 모델로 낙점해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LG전자도 베트남 법인 홈페이지 초기 화면을 축구 경기에서 환호하는 선수와 응원단으로 설정해 놓는 등 박 감독을 활용한 축구 마케팅에 공을 들였다. 동아제약은 박 감독의 이름과 발음이 거의 같은 자양강장제 박카스를 베트남에 론칭해 4개월 만에 판매량 280만 개를 돌파했다. 국내 유명 치킨의 호찌민 1호점 매출이 한 주 만에 120% 상승하기도 했다. 주류 업체도 베트남 시장에서 ‘박항서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 베트남에서 만개한 ‘박항서 리더십’이 한국에 훈풍을 불러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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