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민간인 사찰 논란과 촛불정신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journal.com)
  • 승인 2018.12.21 16:38
  • 호수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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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우 수사관발(發) 청와대 민간인 사찰 의혹 파문이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김태우 수사관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태의 흐름을 보면 파문이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진 않다. 만에 하나 그의 주장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문재인 정권은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검찰이 김 수사관을 처벌하는 데만 주력하고 그가 제기한 여러 의혹을 규명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국민들의 불신을 높이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18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민정수석실 특감반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특감반 의혹'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민간인 사찰은 그만큼 간단찮은 문제다. 한국의 50대 중후반 이상은 유신에 대한 기억이 있다. 1970년대의 한국은 공포가 일상화된 나라였다. 부모들이 집을 나서는 자식들에게 늘 신신당부하는 말이 “얘야. 밖에 나가서 절대 정부 욕하면 안 된다. 말조심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누가 식당이나 술집에서 박정희를 욕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당시 중앙정보부의 민간 호칭)에 끌려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는 식의 공포담이 만연했다. 그만큼 정권의 민간인 사찰이 일상적이었다는 뜻이다.

민간인 사찰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역사가 퇴보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2차대전 후 개발도상국 지도자 중 최고의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박정희 자신이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인권유린이 주된 이유다. 딸이 감방에 있는 것도 선친의 과오가 부각된 게 한몫했다. 박정희 시대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반체제인사들을 상대로 고문을 자행했고,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례도 다수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몰락한 것은 세월호 참사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 이전에 법 위에 군림하는 듯한 권위주의적인 언행으로 일관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국민들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것은 그가 부친의 과오로부터 배웠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박근혜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고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여지없이 몰락해 버렸다.

박근혜의 교훈은 지금의 집권세력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문재인 정권은 ‘촛불정부’를 자처하고 있다. 촛불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정권이니 스스로 촛불정부라며 촛불정신을 운운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몰락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현 집권세력은 촛불정신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이맘때 국민들이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에 나가 촛불을 든 이유는 특정 정파의 세상을 만들라는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촛불정신은 누구든 법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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