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 자본주의 성장 패러다임 될 수 없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8.12.24 11:09
  • 호수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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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정성진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우리나라 군부독재 시절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독일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 Karl Heinrich Marx) 사상은 ‘절대 반지’였다. 자본과 권력에 맞설 강력한 힘을 지닌 이데올로기 무기였다.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그날’로 다가가는 지침서이기도 했다. ‘운동권’엔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과도 같았다. 마르크스 서적은 명실상부 좌파의 바이블이었다. 하지만 1991년 옛 소련이 붕괴하고 동유럽이 무너졌다. 진보진영 마르크스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 책을 손에서 내려놨다.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가 파산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회민주주의자로, 포스트모더니스트로, 뉴라이트로 대거 ‘사상전향’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르크스주의는 그렇게 진보진영 내에서도 ‘비주류의 비주류’로 고립됐다.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황량한 들판에서 아직도 마르크스주의를 한 손에 치켜든 채 “마르크스는 죽지 않았다”고 설파하는 학자가 있다. 1984년부터 현재까지 경상대 경제학과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하며 강의하는 정성진 교수(61)다. 1979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1990년 논문 ‘한국경제에서의 마르크스 비율의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 교수는 1970년대 후반 서울대 운동권 동아리 ‘사회철학회’ 회원 등으로 활동했다. 이른바 ‘열혈 운동권 학생’이었다.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 저물어가던 지난 11월8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교수는 “40년 전인 대학 시절 운동권 언더서클에서 《자본론》을 읽으면서 마르크스에 입문한 후 오늘까지 마르크스를 떠난 적이 없다”며 “이것은 자본주의 분석과 대안 모색에서 아직 마르크스 이상 가는 이론과 사상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마르크스주의는 이미 죽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동의하지 않는다. 바로 이웃 중국만 보더라도 마르크스주의는 주요 대학들에서 필수 교과목이다. 시진핑 주석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중국 발전의 원동력이었으며 오늘날 중국 국가 이념임을 강조했다.”

중국이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것 같진 않은데.

“물론 현재 중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마르크스주의는 원래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과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로서의 마르크스 사상과는 크게 다르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엔 이러저러한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동안 상당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와 동일시했던 옛 소련의 지배 이데올로기, 즉 스탈린주의는 오늘날 영향력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지난 세기말 이후 자본주의 모순과 위기가 격화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대안으로서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를 배경으로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운동이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만약 마르크스가 환생해 오늘날 세계 모습을 본다면, 자신의 이론과 전망에 대해 뭐라 말할 것 같나.

“마르크스가 오늘날 환생한다면 자신의 전망이 대부분 적중했다고 말할 것 같다. 21세기 세계는 세계화, 전면적 상품화, 물상화(物象化), 착취에 기초한 이윤 추구, 양극화, 금융의 득세, 세계 경제위기, 자동화, AI(인공지능)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마르크스는 이것들을 150년 전에 정확히 예측했다. 예컨대 마르크스는 1848년 엥겔스와 함께 쓴 《공산당선언》에서 자본의 세계화 경향, 세계시장 창출 경향을 강조했다. 또 마르크스는 1867년 출판한 《자본론》 1권에서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상품화 경향, 그리고 인간과 인간 관계가 화폐와 화폐 관계로 전도되고, 인간이 만들어낸 화폐와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경향, 즉 물상화 현상, 노동자의 잉여노동 착취를 통한 자본의 이윤 추구 경향 등을 내다봤다. 또한 자본의 축적과 빈곤의 축적 등을 자본주의 발전의 일반적 법칙으로 정식화했다. 이는 정확히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자본주의 모순에서 비롯됐던 것 같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이윤율 저하 경향과 금융을 매개로 한 세계시장 공황론을 이론화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그대로 현실화됐다. 신(新)고전파 주류경제학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예측과 설명에서 완전한 무능을 드러낸 것과 대조적이다. 또 마르크스는 《그룬트리쎄》(1857~58년)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극한에서 자동화에 따라 일반지성이 출현하고 직접적 노동시간은 더 이상 가치를 규정하지 않게 된다고 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를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최근 AI를 중심으로 한 제4차 산업혁명 담론을 무려 한 세기 반이나 앞질러 내다본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월4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카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 EPA 연합

 

“文정부도 노동자 착취와 억압 시스템”

한국 경제가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입각한 해법이 있다면.

“마르크스 관점에서 보면, 현재 한국 경제의 어려움, 예컨대 위기와 양극화는 한국 경제가 자본주의 체제에 머물러 있는 한 근본적 극복이 불가능하다. 즉 자본주의 안에선 답이 없다. 노동자의 잉여노동 착취와 축적, 이로부터 비롯된 궁핍화와 양극화, 또 반복되고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위기는 모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재적 경향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철폐, 부유세, 기본소득, 소득주도성장 등과 같은 자본주의 틀 내에서의 개혁으론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한국 경제의 어려움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전면적으로 폐지하는 것을 통해서만, 그리고 이를 사회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통해서만, 즉 노동자 대중이 잉여의 생산 과정과 분배 및 전유(專有)의 전 과정을 직접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우파들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좌파적이라고 주장한다. 반(反)자본주의 혹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의미의 좌파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기에 자본주의 구원투수 역할을 했던 케인스가 고안한 유효수요 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에서 성장은 임금 주도 혹은 소득 주도가 아니라 이윤 주도로 이뤄진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따른 임금 상승은, 다른 모든 조건이 일정할 경우 이윤율 저하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투자 감소로 이어져 성장 둔화로 귀결될 것이다. 물론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경우, 또 유효수요가 정체돼 있는 불황기엔 케인스적(的) 임금 주도 혹은 소득 주도 성장이 일시적으로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적·장기적으론 지속될 수 없다. 소득주도성장은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이 될 수 없다. 자본주의 분석으로서도 또는 그 대안으로서도 마르크스주의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에 대해 노동계 반발이 강하다.

“문재인 정부는 우파들이 주장하듯이 좌파 정부, 민주노총 정부, 참여연대 정부 등이 아니다. 자본가 정부다.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일부다. 문재인 정부의 행동반경은 자본축적 논리에 의해 규정·제한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일시적으론 지난번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등에서 보듯이 친(親)노동적 개혁적 수사와 제스처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정부로서 노동자 대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는 것을 본령으로 한다. 자본주의 정부로서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은 구조적으로 반(反)노동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자(勞資)대립 및 노정(勞政)대립은 향후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개혁의 물적 토대가 취약해지면 더욱 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 등 조직노동이 촛불투쟁과 같은 노동자 대중 투쟁이 고양된 정세에선 문재인 정부와 일시적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립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노동계와 정의당 등 진보진영 활동방식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노동계와 정의당 등 우리나라 진보진영 주류가 1980년대엔 마르크스주의자들이었다. 하지만 1991년 옛 소련 동유럽 블록 해체 후 사회민주주의 개혁주의로 입장을 바꾼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21세기 들어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물론 반(反)자본주의 급진좌파 정치를 외면하거나 거리를 두고 있다.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명백해진 자본주의 틀 내에서의 개혁, 스웨덴 모델과 같은 사회민주주의에 집착하고 있다. 또 적폐청산 명분하에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치에 흡수됐다. 한편에선 진보정치에서 마르크스주의 반자본주의 급진좌파의 주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다른 한편에선 대중이 진보정치 일반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진보진영, 마르크스로 다시 돌아가야!”

이런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제도권 정치에서 더 영향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노동계와 정의당 등 현재 진보진영 주류는 유효기간이 만료된 사회민주주의 정치 대신, 자신들이 오래전에 기각했던 마르크스로 돌아가 반자본주의 급진좌파 정치를 자신들의 정치 중심으로 회복할 필요가 있다. 옛 소련 동유럽 블록 해체 후 ‘역사의 종언’과 TINA(‘자본주의 시장경제 이외 대안은 없다’는 주장)의 광풍 속에서도, ‘제3의 길’ 대세에도 굴하지 않고 평생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고 공공연하게 선전 조직해 온 미국의 샌더스와 영국의 코빈이 최근 집권을 넘볼 정도로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도 참고해야 할 것이다.”

북한을 ‘마르크스주의 국가’로 분류할 수 있나.

“‘마르크스주의 국가’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대안으로 제시했던 사회주의로 이해한다면, 북한은 마르크스주의 국가가 아니다. 북한은 물론 ‘우리식 사회주의’를 자임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인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에 기초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서의 사회주의와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북한은 노동자 대중의 잉여노동이 당·국가에 의해 착취 전유되고 있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다.”

북한 주체사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김일성 주체사상은 옛 소련 스탈린주의 등의 변형일 뿐이다. 게다가 오늘날 북한에선 중국과도 달리, 마르크스에 관한 담론 자체가 실종됐다. 남한보다 북한에서 마르크스 문헌들을 접하기가 어렵다. 중국과 달리 북한에선 이렇다 할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지 않은 데서 보듯이 북한의 지배계급은 마르크스주의를 지배 이데올로기로도 활용하고 있지 않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로 분류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 어디인가.

“마르크스주의를 이념으로 표방하고 있는 정당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를 ‘마르크스주의 국가’로 이해한다면 중국, 쿠바, 베트남, 네팔 같은 나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마르크스가 뜻한 사회주의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오늘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쿠바, 베트남, 네팔 등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당·국가가 인민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세계에 마르크스적 의미의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 혹은 그것을 추구하는 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오늘날 이행 과정으로서의 사회주의, 운동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존재하며 작동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자본주의 모순과 위기가 격화되면서 점차 가속화·활성화되고 있다.”  

 

12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2018 전국민중대회 참석자들이 탄력근로제 확대 저지, 비정규직 철폐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北,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

사회주의가 아닌 또 다른 대안이 있다고 보나.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자본주의 안에선 대안 찾기가 어렵다는 것, 이른바 ‘좋은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등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 반(反)자본주의, 사회주의 이외엔 미래 인류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오늘날 핵전쟁,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심화, 지구 생태계 위기와 인류 공멸 위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 글로벌 자본주의 위기는 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정치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인류를 야만의 상태로 몰아넣을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폴란드 출신 사회주의 혁명가)’가 내걸었던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라는 구호는 21세기 오늘날 더 현재적으로 들린다. 임박한 전 지구적 야만의 도래를 저지하기 위해서도, 인류는 사회주의 대안을 선택하고 구체화해야 한다.”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나.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는 아무리 위기에 직면하더라도 자동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류를 전쟁, 지구 생태계 파괴와 같은 비극과 야만의 상태로 몰아넣는다 하더라도 대중이 마르크스주의,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정치를 통해 이를 폐지하지 않는 한, 계속 형태를 변형하면서 존속할 것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가.

“현재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의 가장 약한 고리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지배계급은 그간의 고도축적이 구조적 위기에 봉착하자 이를 노동자 대중에 대한 초과착취와 억압 강화를 통해 돌파하려 하고 있다. 또 이를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담론과 같은 관제 마르크스주의로 정당화하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근 노학(勞學)연대 투쟁에서 보듯이 중국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은 기존의 관제 마르크스주의와 국가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에 맞선 투쟁의 무기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요컨대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 운명은 최근 중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또 지난 세기 초 러시아 혁명에서 보듯이, 노동자 대중투쟁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정치의 융합 여하에 달려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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