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사망 사고 원인인 ‘불신’ 해소 필요하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01.0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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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의료인을 폭행하는 배경을 파악해야 근본적 예방 가능
의료인 폭행·살해 예방책 "억울하거나 부당한 대우받는 환자도 줄여야"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정신질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의해 의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다. 지난해에도 익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가 의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6~17년 사이엔 환자가 휘두른 칼에 의사가 복부를 찔려 중상을 입기도 했고, 진료 중에 흉기에 수차례 찔려 응급 수술을 받은 치과의사도 있었다. 

모두 일어나지 말아야 할 안타까운 사건이다. 안타깝게도 의료진이 폭행을 당하거나 심지어 사망하는 사건은 흔한 일이 됐다. 의료정책연구소의 2016년 발표자료에 따르면, 전체 의사 중 96.5%가 환자에게 폭력 및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다. 환자에게 피해를 당하고 정신적 후유증을 겪은 의사도 91.4%로 나타났다. 

외국은 의료진에 대한 폭행·폭언을 일반 범죄보다 강력하게 다룬다. 미국 앨라배마주는 의료인에 대한 폭력을 최고 7년의 징역을 받을 수 있는 중대범죄인 2급 폭행죄로 분류한다. 또 외국에는 당장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환자가 난동을 부리면 사실상 진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영국의 한 병원에서는 의사가 3차례 경고한 후에도 환자가 폭행이나 폭언을 멈추지 않으면 무장 경비원이나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국내 병원에서는 환자가 난동을 부려도 의료진은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한 의료인은 "도를 넘어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폭행을 예방하기 위해 각 병원에 경찰에 준하는 경비원이 상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준필 기자=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의사를 흉기로 살해한 피의자 박모씨가 1월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기자=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의사를 흉기로 살해한 피의자 박모씨가 1월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환자가 의료인을 폭행하는 배경을 살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의료 사고나 라돈 사태 등으로 피해를 봐도 국가로부터 구제나 중재를 받지 못한 국민의 불신이 곪아 터진다는 얘기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은 "이런 의료인 폭행·살해 사건은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불신이 쌓인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예컨대 의료 사고를 당한 환자나 가족은 의료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를 중재하는 국가 기관도 제구실을 못 한다. 이런 피해에 대한 구제가 되지 않는 등 간접적인 요인이 쌓여 당사자인 의료인에게 불만을 해소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례는 병원 응급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는 조급한 마음에 신속한 치료를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응급실은 은행처럼 순서대로 진료하지 않는다. 위급한 상태와 중한 정도에 따라 진료 순서가 정해지므로 비교적 가벼운 질환 환자는 진료 순서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대기 시간이 길수록 환자는 자신이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예민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가 성의 없이 환자를 대할 때 폭언이나 폭행이 발생한다. 

어떤 경우라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특히 병원 내부에서의 폭력은 의료인 개인의 생명은 물론이고 다른 환자의 진료권까지 빼앗는 행동이다. 법을 만들어서라도 병원 내 폭력을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의료계에서 나오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번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사망한 의사 이름을 딴 이른바 '임세원법'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질병을 치료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예방인 것처럼, 의료인에 대한 폭행을 예방하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해 보인다. 강 총장은 "병원에서 억울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환자가 없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의료인에 대한 폭행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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