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보 라인도 청와대로 통한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4 14:00
  • 호수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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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정보 라인 개혁 나섰지만 오히려 권한 독점 초래 지적

‘정보 라인 개혁’에 힘을 쏟았던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정보 라인에 뒤통수를 맞았다. 국가정보원, 국군기무사령부, 검찰, 경찰 등 기존 정보 라인이 축소된 만큼 청와대의 정보 라인 권력이 비대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정보 분야에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는 힘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에서는 ‘IO (Intelligence Officer·정보담당관)’를 두고 정보를 모으고 있다. 역대 정권이 가장 힘을 쏟은 것도 정보 라인이다. 그러나 정권의 몰락을 가져오는 비리가 터져 나오는 곳도 바로 이 정보 라인이다. 정보수집 활동은 언제든 ‘사찰’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청와대, 국정원, 경찰, 기무사 등은 여론 동향수집 명목으로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대한 사찰을 벌이기도 했다. 

‘적폐청산’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내건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 국내정보 담당관 제도를 폐지하고 기무사를 해편하는 등 정보 라인 개혁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 들어 IO 분야는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위축됐다고 할 수 있다.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와 관련해 김태우 수사관이 1월3일 서울동부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와 관련해 김태우 수사관이 1월3일 서울동부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정권에 관한 첩보는 절대 보고하지 않는다”

최대 정보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의 정보 라인 역시 축소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지난해 10월, 한남동 분실 폐쇄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경찰은 경찰법과 경찰관 직무집행법의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에 따라 3개의 정보 분실을 운영했다. 남산 정보1분실, 청계천 2분실, 한남동 3분실이 바로 그것이다. 2014년 11월 이른바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면서 남산 분실과 청계천 분실이 폐쇄됐다. 

이 당시의 정보 분실 폐쇄는 문건 유출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징계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번 한남동 분실 폐쇄는 경찰의 정보수집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에 따른 것이다. 시민단체는 ‘치안정보’라는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경찰의 정보수집 활동이 민간인 사찰로 이어져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비판했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국정원은 국내동향 정보 담당 부서였던 수집국과 분석국을 폐지했다. 국정원은 정부부처 및 주요 기관과 단체, 언론사 등을 담당하는 IO를 두고 정보를 수집해 왔다. 그러나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은 법적 근거도 모호한 상태였다. 국정원법은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 관련 보안 정보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서훈 원장은 대대적인 수술에 나섰다. 서훈 원장은 IO뿐만 아니라 담당 부서인 수집국과 분석국까지 없애버린 것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8년 1월14일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8년 1월14일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현 정부의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해명도 결국 “개인적 일탈”

정보는 권력에 의해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가 크다. 문재인 정부는 비대해진 정보 라인을 축소해 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 경찰 정보 라인이 급속히 축소되면서 IO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IO로 십 수년째 근무하고 있는 A씨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IO들 사이에서 정보수집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면서 “특히 (문재인) 정권과 관련된 정보는 들어도 보고하지 않고, 입 밖에 내지도 않는다. 윗선에 보고를 했다간 ‘네가 왜 이런 정보를 모으고 다니느냐. 출처가 어디냐’는 추궁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IO B씨는 “범죄 첩보만 올리고 동향 보고도 하지 말라는 식”이라면서 “정보 출처를 밝혀야 할 때도 있다. 정보라는 것이 출처 보호가 생명인데, 이런 식이라면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보에 대한 정권의 수요가 없어질 리 없다. 이 때문에 국정원, 검찰, 경찰 등 기존의 정보 라인이 축소된 만큼 청와대의 권한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태우 청와대 특감반원 사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른바 ‘김태우 리스트’에 따르면, ‘국토부 1급 인사 관련 동향’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관련 동향보고’ ‘청와대 독주론에 대한 각 부처 반응’ 등 청와대 민정실 특감반이 고위공직자 감찰이라는 고유 업무 범위를 넘어 일반 정보수집까지 그 영역을 확대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인위적으로 정보 라인을 축소하면서 오히려 일부 부서에 권력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이 청와대 내에서도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 출신 특감반 직원이었던 C씨는 “민정실 산하의 한 비서관실에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다. 민정수석도 아닌 한 비서관이 전체 비서실을 좌지우지한다. 이 비서관은 전체 민정수석실 수사관들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한 예로 이 비서관은 전체 문자를 통해 특정 대기업을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밖에서 보면 특감반이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빈 수레’에 불과했다”면서 “모든 정보를 한곳에서 관리했다고 보면 된다. 정보의 독점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릴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박근혜 정부가 몰락한 것도 ‘문고리 권력’이라는 일부 실세들이 모든 정보를 독점한 것 때문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문제가 터졌을 때 모든 책임을 IO 개인에게 떠넘기는 행태도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C씨는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청와대가 해 온 말이 ‘개인적인 일탈 행위’였다. 이런 식이다 보니,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졌을 때는 서울경찰청 소속 IO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국정원 해킹 사건 때는 임아무개 과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서 “김태우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보라. 이들도 역시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IO들을 문제가 생기면 몸통을 위해 언제든 잘라낼 수 있는 ‘꼬리’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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