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역습②] 변곡점 넘은 ‘적폐청산 수사’ 어디까지 왔나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1 11:00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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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사법농단’과 ‘민간인 사찰’ 조사에 속도
피의자 자살하고 여권 인사 이름 나오자 ‘당혹’

문재인 정부 들어 속도를 높이던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검찰이 ‘사법농단’과 ‘민간인 사찰’ 등 주요 적폐청산 수사 혐의 입증에 애를 먹으면서 숨죽이던 보수 세력이 반발 강도를 높여가는 모양새다. 수사 과정에서 핵심 여권 인사의 이름이 거론되고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연이어 나온 것도 ‘보수정권이 쌓은 적폐를 끊겠다’던 정부의 공언(公言)에 금을 냈다.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권에 대한 지지율도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검찰의 수사 동력이 한풀 꺾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검찰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월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검찰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줄 잇는 피의자 자살에 수사 ‘과속’ 논란

적폐청산 수사는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수사력이 집중된 곳이 ‘민간인 사찰’과 ‘댓글 조작’ 의혹 수사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사익(私益)과 특정 이데올로기를 고취시키기 위해 여론을 조직적으로 조작하려 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과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등이 민간인을 불법으로 사찰하기도 했으며, 이를 각 집단의 수장들이 진두지휘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2017년 8월 국정원을 시작으로 지난해 기무사, 경찰 등으로 적폐 수사를 점차 확대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지휘 아래 검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의혹에만 머물던 사건들의 실체가 점차 드러나기도 했다. 공무원·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뒤 비선 보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에 대해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다. 추 전 국장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지시를 받아 정부 비판적 인사들에 대해 비난 공작을 벌이고,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등 공무원과 민간인을 불법 사찰해 결과를 보고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는 지난 1월3일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추 전 국장에게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의 정보 수집·배포 업무는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한 것인데도 이 목적에서 벗어났다”며 “직권을 남용해 사찰 대상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국정원 업무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했으며 특수활동비를 목적과 무관한 곳에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댓글 조작 의혹 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수사’를 강행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빠른 결과를 도출해 내려다 보니, 피의자 조사 강도가 너무 높았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세월호 유가족을 사찰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아온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유서를 남기고 지난 1월7일 투신자살했다. 이 전 사령관은 유서에서 “세월호 사고 시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5년이 다 돼 가는 지금 그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해 안타깝다”고 적었다. 당시 검찰 관계자는 “군인으로서 오랜 세월 헌신해 온 분의 불행한 일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의 적폐 수사를 받다가 유명을 달리한 피의자는 이 전 사령관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17년 10월 국정원 소속 변호사 정아무개씨가 춘천시의 한 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데 이어 일주일 뒤 수사 은폐 의혹을 받던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사무실 건물 4층에서 뛰어내렸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관한 수사도 적폐청산의 일환이다. 드러난 의혹은 있다. 다만 조사에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검찰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를 모두 마쳤지만, 양 전 원장의 조서 열람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양 전 원장은 1월15일 오전 9시20분쯤 검찰에 출석해 오후 2시까지 조사를 받았다. 이후 밤 11시30분까지 조서를 열람했는데도 마치지 못했다. 당초 검찰 안팎에서는 1월18일까지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양 전 원장이 조서 열람에 오랜 시간을 쓰면서 신병처리 결정은 1월21일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된 이후 검찰 조사에서 줄곧 진술거부권(묵비권)을 행사하며 검찰의 수 싸움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임 전 차장이 입을 닫은 가운데 공모자로 지목된 양 전 원장 역시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및 검찰 내부자료 유출 △3억원대 대법원 비자금 조성 등 다른 혐의를 인정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보수정권’ 겨냥했지만…여권 인사까지 ‘불똥’

검찰은 양 전 원장에 대해 40개가 넘는 구체적 범죄 혐의를 포착했지만, 양 전 원장이 명백한 증거에도 전면 혐의를 부인하는 만큼 증거인멸 우려 등 이유로 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검찰은 이 사건을 조직적 범죄로 규정하고 양 전 원장과 공모관계인 임 전 차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 모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임 전 차장에게 영장을 발부했지만,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영장은 기각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전 대법관 영장도 기각됐는데, 수장인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이 발부되겠느냐. 구체적인 물증이나 자백이 나오지 않는 이상 검찰이 유리한 상황에 서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사 과정에서 불똥이 여권에까지 옮겨 붙으면서,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의 탄핵을 추진하고 있던 민주당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서영교 의원이 2015년 5월 부장판사를 의원실로 불러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지인의 아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 당시 서 의원은 법원을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위원이었다.  

홍성문 평화당 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박근혜 정권의 사법농단 사태를 강하게 비난하던 민주당의 민낯이 한국당의 상식과 다를 바 없음이 드러났다”며 “서민들의 대변인을 자처했던 서영교 의원의 본모습은 권력을 이용해 주변인만 챙기는 구태정치인에 불과했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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