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사, 합법적 로비 창구 되나···‘오제세법’ 통과에 동원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1 14:00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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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회 보좌관·공무원 출신 많아…“민원 디테일 공략한다”
미국식 ‘로비스트법’ 도입 주장도

더불어민주당 4선 오제세 의원이 민간요양기관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후원금을 받고 대체입법안을 발의한 혐의로 고발됐다. 시사저널은 지난 16일 이 같은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단독보도했다. ‘오제세법’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민간요양기관에 대한 강화된 재무·회계 규칙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공공성보다 민간요양기관의 이익을 위한 법안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단독] “대체입법 오제세 의원 사무실에 정치후원금 전달” 기사 참조)

민간요양기관단체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안을 무력화하는 대체입법을 추진하면서 행정사 사무소와 계약했다. 행정사를 통해 국회에 제출할 민원서류와 대체법안 관련 입법 활동을 한 것이다. 현재 국내법상 입법 로비 활동은 허용돼 있지 않다. 다만 변호사가 사실상 합법적인 로비 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행정사법 개정으로 행정사도 새로운 ‘로비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보좌관이나 부처 공무원을 경험한 인사들이 행정사로 많이 옮겨가면서 전관 지위를 활용한 입법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식의 ‘로비스트법’ 도입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우후죽순 격으로 설립되고 있는 행정사 사무소(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시사저널 박정훈·최준필
우후죽순 격으로 설립되고 있는 행정사 사무소(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시사저널 박정훈·최준필

국회 보좌관·공무원 출신 다수

민간요양기관단체들은 2017년 7월26일 대체입법안을 발의해 준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회사무실을 방문해 감사인사를 하고, 같은 날 대체입법국회통과추진본부(추진본부)를 발족했다. 이어 8월21일에는 여의도에 위치한 행정사 사무소와 1억1000만원에 계약했다. 추진본부 측은 내부 메신저를 통해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오제세 의원을 통해 요양기관이 재무회계가 아닌 일반회계 관련된 입법안을 진행 중에 있으며 이 진행을 전문기관(행정사)에 의뢰했다. 1억1000만원에 용역계약해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원장님들께서 어려우시더라도 십시일반 보태주시면 ○○○협회 이름으로 납부하도록 하겠다”며 “현재 쥬○○ 회장님, 실버○○, 헤○○ 원장님께서 각각 300만원씩 보내주셨고 한○○ 원장님께서 백만원을 보내주셨다”면서 모금을 위한 계좌번호도 공지했다. 

민간요양기관 측이 의뢰한 행정사 사무소는 국회 보좌관과 정부 부처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전직 국회의원과 청와대 비서관 출신 인사가 고문을 맡고 있기도 하다. 입법과 관련된 ‘전관 출신’들이 많은 셈이다. 

국회 보좌관을 오래 맡은 한 인사는 “입법 로비를 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현행법상 행정사의 업무는 사실상 입법 로비를 할 수 있다. 여기에 전관 출신 행정사들이 일을 맡으면 로비 전략을 꼼꼼하게 세우게 된다”고 덧붙였다. 

현행법상 행정사는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서류작성 및 제출대행, 권리의무나 사실증명에 관한 서류작성 및 제출대행, 행정기관의 업무와 관련된 서류 번역 및 제출대행, 인가·허가 및 면허 등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신고·신청·청구 등의 대리, 행정 관계 법령 및 행정에 대한 상담 또는 자문, 법령으로 위탁받은 사무의 사실조사 및 확인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다. 본래 서류작업 등을 도와주는 ‘행정서사’로 불렸으나 2013년부터 자격시험이 신설돼 해마다 시험을 통해 선발하고 있으며, 업무 범위도 넓어졌다. 

특히 정부 부처나 국회 보좌관을 역임하면 행정사 시험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다. 공무원 경력 10년 이상 된 경우는 행정사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고, 국회 보좌관은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이다. 여당 국회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보좌관 출신 행정사들의 경우 입법 과정에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논리를 세우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국회 근무자들과의 인맥도 좋아서 ‘로비’를 하기에 최적화돼 있다”고 비판했다. 

국내에서는 로비 활동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변호사의 경우에는 변호사법 3조에 규정된 직무 범위로 인해 사실상 로비 활동이 허용된다. 변호사법 3조는 ‘변호사는 당사자와 그 밖의 관계인의 위임이나 국가·지방자치단체와 그 밖의 공공기관의 위촉 등에 의하여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 사무를 하는 것을 그 직무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임을 받을 경우 거의 모든 로비 활동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로펌의 변호사는 “요즘 대형 로펌들은 사건 수임으로 수익을 올리지 않는다. 컨설팅이나 법률자문 등 광범위한 업무를 하는데, 사실상의 로비 활동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미국식 로비스트 도입하는 게 낫다”

기업은 나름의 방식으로 ‘로비’의 최전선에 서 있다.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대관(對官) 담당자들은 이미 수백 명에 이른다. 국정감사 때마다 기업 대관 담당자들이 여의도 국회에 상주하다시피 하는 현실이다. 이들은 주로 기업에 소속돼 있지만 대형 로펌이나 회계법인에 고용된 고위관료 출신 전관(前官)일 때도 있다. 

이처럼 여러 방식을 통해 사실상 로비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미국처럼 로비스트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국에서는 로비스트가 합법이다. 이들은 의뢰인의 의뢰를 받아 입법이나 행정 과정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로비 활동을 한다. 대신 ‘로비공개법’에 따라 사용한 로비 자금의 용처, 로비 대상에 대해 꼼꼼하게 기록해 감독기관에 제출해야만 한다. 현재 미 연방의회에 등록된 로비스트는 1만여 명에 달하며, 이들 가운데는 ‘로빙펌(로비업체)’에 속한 로비스트도 있다. 미 정치자금 감독업체인 책임정치센터(Center of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지난해 로빙펌의 매출은 33억7000만 달러(약 3조8420억원)에 달해 그 전해(31억6000만 달러)에 비해 6.7% 증가했다.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로비스트 관련 입법 시도가 몇 차례 있었다. 린다 김 사태가 벌어졌던 2000년에 참여연대는 가칭 ‘로비 활동 공개법’을 제정해 로비스트는 국회에 등록한 뒤 의뢰인 명단과 로비 내용 등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나라당 이부영 원내총무 등은 “16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로비 양성화 법률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의원은 16대 국회에서 외국 대리인(로비스트) 공개법안을 발의했고, 17대 국회에서는 당시 민주당 이승희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이 각각 로비스트 합법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2005년 법안에는 유기준·유승민·나경원 의원과 이재오 전 의원이, 2006년 법안에는 황우여·이인영·우상호 의원, 전봉주 전 의원이 발의안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사실상 로비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변호사 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2017년 행정사들의 행정심판 대리를 허용하는 행정사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을 당시에도 격렬하게 반발해 해당 내용이 삭제되기도 했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는 “고위직 공무원 출신 행정사들은 전관예우를 받으며 민간과 정부 부처 사이의 로비 창구 역할을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는데 행정사가 행정심판 대리까지 수행하게 되면 인적 관계에 기댄 불법 로비와 행정심판 비리가 판치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한 국회 보좌관은 “변호사들이 자신들의 ‘빅 마켓’인 로비 시장을 절대로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의 법 절차만으로 로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차라리 제도화해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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