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향군은 왜 보훈처 반대에도 남북정상회담 지지 성명 냈나
  • 조해수·유지만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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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군 이사회 녹취파일 단독 입수
보훈처 “향군이 왜 지지 광고 내나”

문재인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 지지 성명을 이끌어내기 위해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이하 향군) 등 관변단체를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향군을 관리·감독하는 국가보훈처(이하 보훈처)는 정치적 중립 의무와 예산 남용을 이유로, 향군이 남북 정상회담 지지 성명을 언론에 내는 것에 반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정권 비호를 위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관변단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 나무심기 사업’에도 관변단체를 동원한 의혹을 받고 있다(1월22일자 “[단독] 민간 주도?…文정부, ‘북한 나무심기’ 사업에 관변단체 참여 강요” 기사 참조).

향군은 지난 1월14일 1시30분 향군회관에서 2019년도 1차 이사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진호 향군 회장을 비롯해 재적이사 43명 중 25명이 참석했다. 시사저널은 이사회 녹음 파일을 단독 입수했다.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향군, 10개 언론에 5000만원 들여 남북정상회담 지지 광고

이 녹음 파일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작년에 3월15일날, 우리가 10개 신문에다가 남북 정상회담 지지하는 성명을 광고를 냈다. 5000만원이다”면서 “여기 출입하는 과장(보훈처 제대군인과장)이라는 녀석이 와서 하는 소리가 ‘왜 향군이 빚이 많은데 이런 데에 남의 돈, 예산을 남용합니까?’라고 하는 거다”고 밝혔다.

향군은 2018년 3월15일 전국 10개 일간지에 ‘1천만 향군은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지지한다’는 제목의 성명서 광고를 냈다. 성명서에는 ▲비핵화는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기본 목표 ▲북한의 진정성 기대 ▲한·미동맹의 공고화 등을 강조했다.

보훈처는 무분별한 투자에 따른 부채로 향군의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보훈처는 향군의 2017년 부채를 6500억원 수준으로 파악했다. 이에 따라 보훈처는 향군의 부실자산 7곳을 정리하는 등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보훈처로서는 향군이 정상회담 지지광고에 5000만원을 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관리·감독 기관인 보훈처 반대에도 성명광고를 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호소문’ 때문이었다. 김 회장은 이사회에서 “그때 그 당시에 3월12일날 대통령께서 수석회의를 통해서 그야말로 ‘남북 정상회담은 국민들의 전체적인 합심에 의해서 지지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라고 완곡하게 호소하는 그런 호소문이 전부 우리를 포함해서 각 기관으로 내려갔다”면서 “그래서 아, 이거 정말 우리가 정부 정책을 지지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3월1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에서 “앞으로 두 달 사이에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이 연이어 개최되면서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면서 “여야, 보수와 진보, 이념과 진영을 초월해 성공적 회담이 되도록 국력을 하나로 모아 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밝혔다.

2018년 3월15일 향군의 남북 정상회담 지지 성명서
2018년 3월15일 향군의 남북 정상회담 지지 성명서

관변단체에 대한 정권 개입 없어져야

김 회장은 “안보 단체인 향군이 지지하는 것을 10개 신문에 내면 ‘20개 신문에 내세요, 내십시오’ 해야 되는 보훈처가 ‘이거 왜 내냐’는 거다. 4월27일날 판문점 행사를 우리가 가서 내가 보훈처장한테 서울사무소에서 보고를 하니까 ‘아, 이거 꼭 해야 됩니까? 향군이 왜 이거 합니까?’라는 거다. 깜짝 놀랐다”면서 “정무직에 있는 사람이 국가 정부 정책을 지지하는 것을 ‘꼭 해야 되겠냐’라는 이러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현직 보훈처 지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향군은 지난해 4·27 정상회담 당시 6000여명의 회원을 동원해 문 대통령에 대한 대대적인 환송 행사를 열었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으로 가는 도중 차를 멈춰 세우고 향군 회원들과 직접 악수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향군의 환송 행사를 청와대와 사전조율을 통해 이뤄진 사실상의 ‘관제행사’로 보고 있다. 향군은 회담 직전인 지난해 4월25일 환송 행렬 배치도를 작성했는데, 이것이 문 대통령의 이동경로와 일치했다. 청와대와의 사전조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1월3일자 “[단독] 靑 백원우, ‘비리 수사’ 향군 회장 왜 만났나” 기사 참조).

보훈처 제대군인국장은 지난해 4월24일 ‘정치행위 금지’를 담은 공문을 향군에 발송했다. 이와 관련해 보훈처 관계자는 “현 정부의 대북 비핵화 정책에 반대되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향군법 3조에 따른 정치활동의 금지 의무를 향군에 안내한 것”이라고 밝혔다.

향군은 회원 1000만명의 국내 최대 안보단체로, 전 정권에서 보수 진영을 대표했다. 따라서 향군은 대북 정책에서도 문재인 정부와 큰 차이점을 보였다. 향군은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이 터지자,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정책과 달리 ‘전술핵 즉각 재배치’와 ‘자체적인 핵무장 공론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대북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역점 분야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대북정책에서 향군의 지지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향군의 지지를 얻는다면 ‘보수단체도 환영하는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이상적인 타이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향군은 남북 정상회담 지지 성명을 발표했고, 이를 통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향군도 찬성하는 남북정상회담, 자유한국당만 반대’라고 홍보할 수 있었다.

향군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위해 관변단체를 대거 동원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관변단체 동원은 7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일’이라고 비난했다”면서 “그러나 문재인 정부 역시 다르지 않다. 설립목적에 맞는 활동을 펼 수 있도록 관변단체에 대한 정권의 개입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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