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빵 터지는’ 코미디가 돌아왔다, 《극한직업》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6 16:00
  • 호수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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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하게 웃겨주는 영화 《극한직업》
한국 코미디 영화의 ‘봄’은 오는가

죽어라 노력해도 원하는 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 뜻하지 않게 잘 풀리는 것 또한 인생이다. 그러니까 정말 모르겠는 게, 인생이다. 여기 《극한직업》 속 독수리 5형제(마약반 다섯 형사) 인생도 그러하다. 그렇게 원하는 마약범 검거는 허탕 치기 일쑤. 그런데 잠복 수사를 위해 대충 차린 치킨집이 예상치 않게 ‘맛집’으로 소문나면서 돈이 모인다. 이 무슨 인생의 아이러니인가. 잠복은 뒷전으로 밀리고, 치킨 판매에 열의를 불태우는 이들의 모습에 포복절도할 웃음이 튀겨져 나온다. 그것도 아주 바삭하고 맛있게. 

충무로 코미디에는 여러 분파가 있다. 《조폭 마누라》 《가문의 영광》으로 대표되는 조폭 코미디, 《몽정기》 《섹즉시공》이 이끌었던 섹스 코미디, 《동갑내기 과외하기》 《오! 해피데이》가 형성한 로맨틱 코미디 등이 그것이다. 시대 트렌드에 맞춰 ‘조폭’ ‘섹스’ 등과 이종교배를 시도한 이력이 많았던 장르가 바로 코미디다. 그러나 《극한직업》은 코미디 앞에 다른 수식어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코미디 함량 90%를 머금은 코미디 그 자체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코미디 장르에 관객이 요구하는 ‘웃음’을 향해 곁눈질하지 않고 달리는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확실하게’ 웃겨준다는 점에 있다.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치킨 하나 얹었을 뿐인데…전형성을 비틀다

《극한직업》은 웃기는 것 외에는 야심이 크지 않아서, 오히려 더 야심 넘치게 보이는 영화다. 덕분에 ‘선 웃음 후 감동’ 식의 철 지난 공식은 이 영화에 없다. 초반 활력 넘치게 출발하고도 후반 아이디어가 떨어져 미지근하게 끝나는 코미디가 적지 않음을 감안했을 때, 마지막까지 웃음을 향한 감각에 집중하며 달리는 이 영화의 전략은 인상적이다. 

《극한직업》은 발상의 전환이 신선한 영화다. 사실 이 영화에는 마약, 형사, 조폭 등 한국영화가 많이 사용해 온 전형적인 설정이란 설정은 다 들어 있다. 그런데 치킨 한 마리를 얹으면서 이 모든 전형성을 비틀어버린다. 물론 치킨의 힘이 아니다. 치킨을 익숙한 소재에 적절히 버무려 흥미롭게 비틀어 낼 줄 아는 연출의 힘이다. ‘수원왕갈비’에서 착안해 낸 비법 소스를 제조하고,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입에 착착 들러붙는 홍보문구를 만들고, 서빙 실력과 재료 손질에 의외의 실력을 발휘하는 형사들을 보고 있으면, 속으로 낄낄대며 묻게 된다. ‘저들은 형사인가, 치킨집 종업원인가!’ 

독립영화 《힘내세요, 병헌씨》부터 《스물》 《바람 바람 바람》 등에서 이병헌 감독이 펼쳐 보인 장기는 ‘타이밍을 노린 대사’다. 같은 상황이라도 대사의 길이나 속도, 그리고 이를 내뱉는 타이밍에 따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지는 법. 이병헌 감독의 이러한 장기는 《극한직업》에서 위력 있게 발휘된다. 이 영화엔 의외의 액션도 있다. 액션 역시 철저히 코미디에 복무하며 양념 같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관객을 리듬에 태울 줄 아는 연출자의 솜씨다.  


차려진 밥상을 맛깔나게 먹은 배우들

그리고 이병헌 감독이 차려놓은 밥상을 배우들이 잘 먹었다. 그냥 먹지 않았다. 맛깔나게 먹었다. 코미디 영화에서 배우 스스로가 우스워지면 캐릭터가 식상해지기 쉽다. 감각이 뛰어난 배우는 관객은 웃게 하되 자신은 웃음을 쉽게 소비하지 않는다. 이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코미디에도 일가견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이유이기도 하다. 코미디는 생각 이상으로 철저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넘버3》의 송강호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건 그가 웃긴 배우여서가 아니다. 《공공의 적》 시리즈를 통해 강철중이란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설경구는 어떤가. 그들은 코미디가 아니라, 상황과 대사로 웃기는 전법을 구사하며 관객에게 웃음을 전해 왔다. ‘장진 사단’ 출신인 류승룡 역시 이러한 코미디 구사를 잘하는 배우다(‘말맛’ 코미디라는 점에서 ‘장진 식 코미디’와 ‘이병헌 식 코미디’는 닮은 부분이 많다). 오랜만에 코미디로 돌아온 류승룡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매끈하게 자신의 장기를 발휘한다.   

장형사 역의 이하늬는 빤하게 소모되기 쉬운 여형사 캐릭터에 그만의 개성을 입히는 데 성공했다. 마형사로 분한 진선규는 《범죄도시》에서 보여준 무시무시한 캐릭터에만 소질이 있는 배우가 아님을 증명해 보였고, 이동휘는 특유의 엇박자 리듬으로, 공명은 사랑스러움으로 연신 활력을 불어넣는다. ‘구강 액션’의 진수를 펼쳐 보이는 신하균과 오정세의 악역 연기 또한 빼놓으면 섭섭하다. 

배우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코미디가 있고, 감독의 연출력에 빚지는 코미디가 있는데 《극한직업》은 이 두 가지가 시너지를 내며 끊이지 않는 웃음을 전한다. 여기서 빵, 저기서 빵, 연신 웃음을 빵빵 터뜨려주는 《극한직업》은 유머의 빈도가 높을 뿐 아니라 타율도 좋은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극한직업》은 소재와 캐릭터가 신선하다기보다, 이를 빤하지 않게 전환시키는 재주가 탁월한 영화다. 쉬운 일은 아니다. 상황과 대사만으로 관객과 호흡할 수 있다는 건 보기 드문 재능이다. 《극한직업》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쉽지 않은 걸 쉽고 편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소재 고갈’에 시달리는 충무로가 곱씹을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메리크리스마스
ⓒ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메리크리스마스

올 초, 코미디 영화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포문을 연 건 박성웅과 진영 주연의 《내 안의 그놈》이다. 중년 사업가 판수(박성웅)와 왕따 고교생 동현(진영)이 우연한 사고로 몸이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체인지업 무비’로 손익분기점(150만)을 돌파하며 예기치 않은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행보다. 총 제작비 45억원의 영화로, 최근 쏟아지고 있는 100억원대 대작들과 비교해 열세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객 입소문을 타며 연신 순항 중이다. 한마디로 복병이다. 

이 영화는 유정훈 전 쇼박스 대표가 설립한 신생회사 ‘메리크리스마스’의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그 행보가 주목된다. 배급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다가 ‘메리크리스마스’를 만나 빛을 본 사례라는 점에서 기존 메이저 배급사들에 뒤늦은 후회를 안기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극한직업》이 코미디 영화의 바통을 넘겨받은 가운데, 다음 달 14일에는 정재영, 김남길, 엄지원 주연의 《기묘한 가족》이 관객의 배꼽을 노리고 출격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에 살고 있던 한 가족 앞에 좀비가 나타나면서 펼쳐지는 사연을 그린다. 좀비에게 물리면 죽기는커녕 ‘회춘’한다는 기발한 설정이 기존 좀비에 대한 인식을 비튼다. 최근 주가가 부쩍 상승한 ‘좀비’ 소재를 코미디에 어떻게 접목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전망이다.    

한동안 변방으로 밀려났던 코미디 장르에 봄이 오는 것일까. 확단하긴 어렵다. 짐작 가능한 건, 《내 안의 그놈》이 기선을 잡은 상황에서 《극한직업》과 《기묘한 가족》의 흥행 결과가 충무로 제작 환경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한동안 묵직한 사회극과 액션물이 줄지어 나오면서 코미디 장르에 대한 관객의 갈증이 적지 않았다는 점 역시 코미디 장르엔 기회다. 다만, 유행에 편승해 비슷비슷한 콘텐츠를 졸속으로 내놓으며 스스로 자멸했던 과거 코미디 장르의 이력을 떠올려봤을 때, 신선한 콘셉트에 대한 고민은 수반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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