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EU②] 방향 잃은 브렉시트, 초조한 EU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5 08:00
  • 호수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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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없는 영국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플랜 B’

영국은 2019년 3월29일 유럽연합(EU) 탈퇴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1월15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브렉시트 합의안은 영국 의회 역사상 가장 큰 표 차이로 부결되며 영국을 교착상태에 빠트렸다. 이번 투표는 의회의 오랜 분열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같은 날 런던 국회의사당 앞 광장엔 시민들이 모였다. 모순적이게도 EU 탈퇴 반대파와 찬성파 모두 이번 테리사 메이 총리의 합의안 부결에 환호했다. EU 잔류를 원하는 반대파는 제2의 국민투표를 기대할 수 있게 됐고, 탈퇴를 주장하는 찬성파는 그간 불만의 대상이었던 ‘백스톱 조항’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기뻐했다.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가 1월16일(현지 시각) 자신의 불신임안 표결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투표 결과 찬성 306표, 반대 325표로 불신임안은 부결됐다. ⓒ AP 연합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가 1월16일(현지 시각) 자신의 불신임안 표결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투표 결과 찬성 306표, 반대 325표로 불신임안은 부결됐다. ⓒ AP 연합

브렉시트 합의안 부결, 환호 속 동상이몽

실제 본 투표 부결의 주된 원인은 기존에도 논란이 많았던 백스톱 조항이다.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 연방 소속 영토인 북아일랜드는 국경이 맞닿아 있다. 만일 이 두 국가 간 물리적 국경 장벽이 부활하게 된다면 그간 자유로웠던 두 국가 간 무역에 통관절차, 관세 등 제약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불편과 혼란으로 인해, 무역 규모가 줄어드는 등 궁극적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될 가능성이 우려돼 왔다. 이뿐만 아니라 북아일랜드에서 ‘굿 프라이데이 협정’을 통해 가까스로 일단락된 종교 및 민족주의적 유혈 분쟁이 재발하거나 아일랜드 통합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 이는 두 국가 간 힘겹게 이뤄진 평화 협정을 위협할 수 있다. 영국과 EU 모두 물리적 국경 부활을 일으키는 하드 브렉시트를 기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1월20일 메이는 내각 회의를 긴급 소집해 모두에게 외면당한 백스톱 조항 등 본 합의안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날 역시 실질적인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했다. 이튿날 오전 의회 자리에서 메이는 부랴부랴 ‘플랜 B’를 발표했다. 그 안엔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 잔류하길 희망하는 EU 시민들에게 잔류 신청 시 부과될 예정이었던 수수료를 철폐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가장 논란이 많았던 백스톱 조항과 관련해선 유럽의회와 영국 의회 모두 만족할 만한 방안을 재구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해, 사실상 기존의 브렉시트 합의안과 별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메이 총리는 부결된 합의안의 수정본인 ‘플랜 B’를 의회에 새로 제출해 1월29일 다시 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메이의 합의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설득할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미 뜻을 달리하고 있는 노동당을 제외하고, 보수당과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에서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 힘쓸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메이가 본인의 초기 합의문을 통과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의회를 진퇴양난 형국으로 몰아가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상황이 장기화되면 결국 모두가 피하고자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노 딜 브렉시트’와 메이 총리의 합의문만이 최종 선택지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노 딜 브렉시트, 탈퇴 일자 연기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난무하자 EU 회원국들의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메이가 백스톱 조항과 관련해 “영국 의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알아보겠다”고 발언하자 이에 대해 미셸 바르니에 EU 브렉시트 협상대표는 “영국은 영국 의회가 아닌 EU와의 관계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피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부 장관 역시 “브렉시트가 정당정치에 휘둘려선 안 되며, 영국과 그 이상의 다수를 위해서라도 하드 브렉시트는 배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오스트리아 역시 브렉시트 예정일인 3월29일 이전까지 합의안을 재협상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줄곧 드러내고 있다. 


국민투표 통한 EU 잔류 목소리도 여전

‘플랜 B’에 대한 투표는 벌써부터 2019년 영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순간으로 꼽히고 있다. 의원들은 투표일 이전까지 메이의 ‘플랜 B’ 안에 추가 조항을 덧붙여 개정안을 상정할 수 있다. 제출된 개정안들 중 하원 의장이 선택한 개정안이 최종 투표에 부쳐진다. 투표를 통해 의회의 최종 선택을 받은 개정안이 곧 진정한 의미의 ‘플랜 B’가 되는 셈이다. 이를 기반으로 2019년 영국과 EU의 결별도 어떻게 이뤄질지 결정된다.

3월 탈퇴 일자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답보상태를 타개하고자 메이가 제안한 이 ‘플랜 B’에 대해, 의회에 다양한 개정안이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본 투표에 상정될 것으로 예정된 주요 개정안은 노 딜 브렉시트를 선택지에서 제외하고 EU 탈퇴 시기를 연기하자는 안이다. 만일 이 안이 통과되면 노 딜 브렉시트라는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그리고 영국은 브렉시트에 대비할 수 있는 1년의 시간을 추가로 얻게 될 수 있다. 단 탈퇴 기한 연기를 위해선 EU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EU도 타당한 이유 없이 무조건적인 탈퇴 시기 연기를 요구하는 데 대해 불허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메이 역시 1월21일 의회에 참석해 탈퇴를 미루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다시 EU에 잔류하는 결정에 대한 기대도 여전히 살아 있다. 현재 노동당은 노 딜 브렉시트를 ‘고려조차 해선 안 될 선택지’라고 비판하며, 재(再)국민투표를 이끌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동당 수장인 제레미 코빈은 1월21일 의회에서 “재국민투표만이 브렉시트 교착상태를 끝낼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야당이 재국민투표에 대한 고려를 공식적으로 제안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수당 내 브렉시트 반대파 의원들도 재국민투표를 제안하는 기획안을 정식으로 상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론 메이는 “재국민투표가 사회적 통합을 저해할 수 있어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 안팎의 동상이몽과 메이와 확고한 의지, 그리고 기다림에 지쳐가는 EU 간의 신경전은 브렉시트 디데이 목전까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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