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후폭풍④] 文정부 위기관리 능력 ‘빨간불’
  • 유창선 정치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1 08:00
  • 호수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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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되겠다”던 약속 기억해야
당청, 자신의 잘못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모습 일관되게 보여와

여권 안팎의 악재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말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로 촉발된 진실 공방전으로 청와대가 곤욕을 치르더니, 1월에는 민주당 손혜원·서영교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정국을 덮어버렸다. 특히 논쟁이 격렬했던 손 의원 문제가 소강 국면에 들어서는가 했더니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 구속이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연이어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법정 구속되었다. 하나의 악재가 매듭지어지고 다음 악재가 터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악재가 앞의 악재를 덮어버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국정을 책임진 5년 동안 잘못과 실수를 하지 않는 정권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성찰함으로써 같은 잘못이 반복되지 않도록 달라지느냐 하는 점이다. 그것이 정권의 위기관리 능력이다. 그런 각도에서 보았을 때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위기관리 능력은 매우 우려할 만하다.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내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는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1월23일 목포 현장에서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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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모습 겸손하지 않아”

 가까운 예로 김경수 지사의 법정 구속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을 들 수 있다. 김 지사가 법정 구속되자 민주당은 “사법농단 세력의 보복성 재판”이라며 법원 판결에 불복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물론 재판부가 판단한 객관적 증거들과 드루킹 등의 진술에 대해서는 여러 논쟁을 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민주당은 판결 내용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판결을 내린 성창호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이력 등을 근거로 보복성 재판이라 주장하고 나섰다. 판결문을 갖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치적 프레임을 씌운 뒤 판사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는 방식으로 민주당은 대응했다. 법원의 법률적 판단에 대해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사법농단 세력’에 대한 우려에 앞서, 자신들이 원하는 판결을 내놓으라고 법원을 겁박하는 ‘권력’에 대한 우려를 낳게 만들고 있다.

돌아보면 그동안 청와대와 여당 안팎에서 수많은 사고와 난맥들이 이어졌지만 집권세력은 무엇 하나 분명하게 성찰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청와대 내부의 기강해이가 반복해서 물의를 빚고, 일개 수사관과 청와대가 전면전을 치르느라 나라가 떠들썩했어도 누구 하나 제대로 사과하는 사람이 없었다. ‘미꾸라지’가 그렇게 물을 흐려놨으면, 어째서 그런 미꾸라지를 진즉에 내보내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책임지는 사람은 끝내 없었다. 신재민의 주장이 자기 시야에만 갇힌 나머지 과장되고 독단적인 것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청와대도 돌아보아야 할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청와대가 정부 부처의 정책에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청와대 정부’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에 대해 청와대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했다. 

여당인 민주당으로 가면 상황은 더 심각해 보인다. 재판 청탁을 한 서영교 의원은 사법농단의 공모자였음이 드러났건만, 사법개혁을 부르짖는 여당 안에서 여전히 건재하다.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위배했다고 비판받은 손혜원 의원은 원내대표의 배웅을 받으며 명예로운 탈당을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이나 손 의원은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한 적이 없었다. 투기가 아니었다고 해서 국회의원으로서의 다른 부적절한 언행들이 모두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김경수 지사는 사법 적폐세력의 보복에 의한 희생자로 자리매김되었다.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 행위가 권력기관에 의한 댓글 조작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 역시 여론조작으로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중대 범죄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청와대와 민주당은 법원의 판결에 반발만 할 것이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수혜자의 위치에 있었던 자신들을 돌아보며 보다 엄격하고 책임 있는 설명을 해야 할 위치다. 김 지사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려 봐야 할 일이지만, 민주당은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과 연루된 의혹을 받은 것만으로도 국민에게 머리 숙여야 할 일이다. 하지만 여권은 “김경수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덮으려 하고 있으니, 이 또한 국민을 이해시키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적폐정권’의 잘못들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목소리를 높이던 청와대와 여당이지만, 정작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넘어가곤 한다. 도덕의 이중 잣대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가장 강력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보여준 문재인 정부의 모습은 결코 겸손하지 않았다. 권력의 겸손함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성찰하는 자세로 국민 앞에 고개 숙일 수 있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지난 1년9개월 동안 청와대와 여당은 자신의 잘못은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일관되게 보여 왔다. 그 배경에는 현 집권세력의 도덕적 우월감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촛불시민혁명으로 들어섰고 적폐를 청산할 역사적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들이기에, 우리가 가는 길은 언제나 옳고 정의롭다는 선민의식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렇기에 다른 세력의 잘못에 대해서는 추상같고,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한, 사고의 불균형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상대의 적폐에 대해 그토록 준엄했던 정권이라면 그 이상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자신들에게도 준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롭다고 믿을수록 덜 정의롭다”

정권의 위기관리 능력이 정치공학적인 대처방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무엇보다 먼저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프랑스 철학자 제라드 벵수상의 말이다. “내가 정의롭다고 믿을수록, 또 이러한 믿음에 만족할수록 나는 덜 정의롭다.” 자신의 정의를 과신하지 말고 내가 행했을 수 있는 불의를 끊임없이 의심하라는 얘기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민심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마저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되면 “그놈들이 그놈들”이라는 냉소와 체념이 나라를 덮게 되고 만다. 그렇게 된다면 정권이 아닌 나라의 불행이다. 더 늦지 않게 문재인 정부가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기 바란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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