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기 秘話’ 노태우 정부의 운명 바꾼 ‘비밀각서’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1 14:00
  • 호수 15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원기 前국회의장 “‘타협 정치’ 위해 비공개 모임 주목해야”
“꼭 정치인에게만 맡기지 말고, 언론이나 시민사회가 대화 분위기 만드는 것도 중요”

혼돈의 시대다. 변화의 시대다. 시사저널은 창간 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길을 묻다’ 특별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을 만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헤쳐 갈 지혜를 구하는 기획이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 시점에 따라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현대 정치의 산증인이다. 1979년 1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고향인 전북 정읍에서 당선돼 정계에 들어온 뒤 40여 년 동안 정치권에 몸담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심복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렸다. 정계 은퇴 뒤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원로 멘토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김원기 “여야, 협치 통해 정치 불신의 벽 허물어야” 

2005년 12월9일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했다. ⓒ 시사저널 포토
2005년 12월9일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발 속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했다. ⓒ 시사저널 포토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타협의 정치’의 상징적인 존재로 비공개 모임을 꼽고 있다. 시사저널을 창간했던 고(故) 박권상 주필은 정치권 내 두터운 교분을 바탕으로 비공개 모임을 만든다. 여기엔 각 정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참여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에선 김윤환·남재희·이종찬, 평화민주당에선 김원기·조세형, 통일민주당에선 박관용·황병태(직함 생략) 등이 참석했다. 모두 박권상 주필의 주도로 모인 유력 정치인들이었다. 

이 모임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최고층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렸다. 강원도 속초나 전남 광양 등 지방에 가서 숙박을 하며 세미나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 창간 당시인 1989년부터 약 7~8년간 유지됐다.

정치인들의 모임이니 현안의 모든 문제가 자유로이 논의됐다. 그런데 정국에 난제가 있을 때도 그 모임에선 신통하게도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심지어 모임에서 나온 얘기는 언론이나 당에서 절대 얘기하지 않겠다는 ‘보안’도 철저히 지켜졌다. 각자가 알아서 각각의 정당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짐작된다.

김 전 의장은 “내가 평민당 원내대표가 되고, 작고한 김윤환씨가 민정당 원내대표를 하면서 상당히 대화와 타협 정치를 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며 “정치를 꼭 정치인에게만 맡기지 말고, 언론이나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정치인들이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협상과 타협의 정치가 이뤄지려면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1988년 당시 제1야당인 평화민주당 원내총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 김윤환 원내총무와 5공 청산 합의를 이끌어낸 ‘타협의 정치’로 박수를 받았다. 헌정 사상 첫 여소야대 정국 구도를 풀어간 중심엔 ‘비밀각서’가 있었다.

1989년 3월 여소야대 국면이 형성되고 여의도 정국은 급격히 얼어붙었다. 당시 원내 1당이었던 평민당은 5·18 때 특전사령관을 맡은 정호용 민정당 의원 퇴진을 요구했다.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 실시까지 주장하며 압박했다. 당시 평민당 원내총무였던 김 전 의장과 김윤환 원내총무는 수차례 만났다. 읍소까지 하며 정 의원의 퇴진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호남이 기반인 평민당으로선 5·18 책임자를 용인할 순 없었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정 의원을 사퇴시키는 내용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극적인 타협 속엔 양당 원내총무의 비밀각서가 있었다. 이 각서는 A4용지 6장 분량으로 △광주민주화운동 문제 처리 △5공 비리 문제 처리 △80년 언론 통폐합 및 해직 관계자 처리 △전직 대통령 증언 문제 처리 △민주화 문제 △지자제(지방자치제) 실시 △공무원노조 등 7개 항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89년 3월21일 신라호텔에서 단독 면담 후 작성됐다. 이 각서의 존재를 당시 평민당 내에서 김대중 총재와 김 전 의장만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각서는 김 전 의장이 정계를 은퇴한 2008년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연관기사

김원기 “여야, 협치 통해 정치 불신의 벽 허물어야” 
‘노무현의 스승’ 김원기 前의장이 본 문재인 대통령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