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밥그릇 빼앗는 현대산업개발 ‘갑질’ 논란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0 10:00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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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벨로퍼 선언하며 상가임대 수익 욕심” vs “가처분 소송서 이미 우리가 승소”

중견기업을 상대로 한 HDC현대산업개발(현대산업개발)의 ‘갑질’ 논란이 최근 불거졌다. 진원은 중견 유통업체인 엔터식스. 주택개발사업 수주를 위해 자사를 끌어들인 뒤, 막상 사업을 따내자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했다는 것이 이 회사의 주장이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엔터식스의 낮은 신용도 때문에 사업 배제를 결정했으며, 정식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어서 문제가 없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하지만 엔터식스는 현대산업개발이 직접 상가임대사업을 벌이기 위해 자사를 사업에서 배제했다고 주장하며 국민국익위원회나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손을 내밀고 있다. 만일 엔터식스의 말대로 현대산업개발이 직접 사업에 나설 경우 새로운 법적 분쟁이 시작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공정거래법이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정하고 있어서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중견 유통업체 엔터식스를 상대로 갑질을 벌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임준선
HDC현대산업개발이 중견 유통업체 엔터식스를 상대로 갑질을 벌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임준선

파격적 혜택 약속하며 “다른 업체 접촉 말라”

현대산업개발과 엔터식스의 인연은 2016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산업개발은 당시 엔터식스에 공공사업 참여를 요청했다. ‘서울남부교정시설(옛 영등포교도소) 부지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개발사업’이었다. 10만5000㎡ 부지에 주택(2214가구)과 판매시설이 들어서는 주상복합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출자해 설립한 토지지원리츠가 부지를 매입하고, 민간사업자와 HUG가 출자해 설립한 뉴스테이 임대리츠에 그 부지를 임대하는 형식이다. 임대리츠는 임대수익을 출자자에게 배당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엔터식스에 1·2층에 마련될 판매시설의 상가임차인으로 사업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LH의 공모지침서상 참가조건에 판매시설 면적(4만5872㎡)의 50% 이상에 대한 상가임차인 입점확약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평가배점이 1000점 만점에 350점으로 가장 높았다. 사업권 확보에 유통기업 확보가 핵심이었던 셈이다. 현대산업개발은 엔터식스에 혜택을 약속했다. 임대차 기간을 20년간 보장해 주기로 한 것이다. 그 대가로 현대산업개발은 엔터식스에 다른 건설사와 접촉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엔터식스는 이후 여러 건설사로부터 공동입찰 제안을 받았지만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산업개발이 이처럼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으며 엔터식스를 사업에 참여시키려 한 이유는 사실상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가임차인의 조건은 ‘최근 3년간 연간 총매출액 1000억원 이상’이다. 그러나 주상복합에 현대·롯데·신세계 등 백화점 업계 빅3는 입점하지 않는다. 당시 총매출 1000억원 이상 업체는 엔터식스 외에 애경그룹(AK플라자)과 이랜드그룹(NC백화점)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나 AK플라자는 공모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이랜드는 신용도 하락으로 출점이 제한돼 있었다. 현대산업개발로선 사실상 엔터식스가 있어야 공모 참여가 가능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엔터식스는 이후 시장조사를 거쳐 사업 참여를 결정했다.

그리고 2016년 6월 LH의 공모가 나왔다. 사업비만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였지만 입찰 참여자는 현대산업개발이 유일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수월하게 우선협상대상자에 올랐다. 이후 엔터식스 역시 2016년 12월 주택보증공사의 1차 기금심사에 통과했다. 그러나 사업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인허가에 오랜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도 현대산업개발과 엔터식스는 임대차 계약 내용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는 등 계속해서 사업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왔다.

그러던 2017년 12월, 사업 인허가가 났다. 그 직후 현대산업개발은 얼굴을 바꿨다. 2018년 2월 사업을 함께 진행할 수 없다고 구두로 통보해 온 것이다. 이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엔터식스가 현대산업개발에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엔터식스는 자사가 사업에 참여돼 있는지조차도 명확히 확인하지 못했다. 사업 배제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지난해 7월 법원에 임차인지위보전 및 사업약정체결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면서다. 현대산업개발이 법원에 제출한 답변서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진행하는 2차 기금심사에서 엔터식스를 배제하고 제안서를 제출한 사실이 담겼다.

현대산업개발은 사업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다는 점과 엔터식스의 신용도가 낮고 부채비율이 높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엔터식스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장기사업이라는 점은 공모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고, 오히려 20년의 임대차 기간을 제안한 것도 현대산업개발이기 때문이다. 신용도 역시 공모신청 시 회계감사보고서 등을 제출해 이미 심사를 통과한 만큼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일부 쇼핑몰의 인테리어 공사로 일시적으로 부채비율이 상승한 것은 맞지만 공모신청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등 재무상황은 한층 나아졌다.

엔터식스는 자사가 사업에서 배제될 경우 현대산업개발 역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핵심 공모 입찰 요건인 ‘판매시설 면적 50% 이상에 대한 상가임차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공모지침에는 계약 체결 전까지 사업계획 요건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취소한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현대산업개발이 엔터식스를 사업에서 배제하면 현대산업개발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도 원칙적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택도시보증공사는 현대산업개발을 정식 사업자로 지정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엔터식스 배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확약서를 제출해 문제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엔터식스가 법원에 낸 가처분 신청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식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는 현대산업개발의 주장을 법원이 그대로 인용하면서다. 이로 인해 결국 사업은 지난해 11월 착공에 들어갔다. 엔터식스로선 수년간 공들여온 사업을 한순간 잃게 된 것이다. 다만 법원은 엔터식스에 현대산업개발의 불법행위를 주장하며 손해배상청구를 통해 손실을 보전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엔터식스는 단순히 손해배상청구를 넘어 현대산업개발과의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현재 국민권익위에 신고를 마쳤고, 향후 본안 소송은 물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다면 대체 현대산업개발이 엔터식스를 배제한 까닭은 무엇일까. 엔터식스는 현대산업개발이 직접 사업을 벌이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현대산업개발은 건설사 가운데 드물게 유통사업을 벌이고 있다. 자회사인 HDC아이파크몰(아이파크몰)을 통해서다. 당초 아이파크몰은 공모에 참여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1999년 설립 이래 2013년까지 15년 동안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했고, 2005년부터 현재까지 자본잠식 상태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공모 당시에도 자본잠식 규모는 800억원대에 달했다. 이 때문에 아이파크몰은 현대산업개발의 현금지원을 통해 적자를 충당해 나가는 등 그룹 내 ‘골칫거리’로 통했다.

그러나 공모가 올라온 2016년과 엔터식스가 사업에서 배제된 2018년 사이에 현대산업개발엔 변화가 있었다. 먼저 디벨로퍼로서 새로운 도약을 선포했다. 기존 시공 중심의 사업영역을 물류와 유통, B2C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엔터식스가 담당키로 했던 상가임대사업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2017년 말 지주사 체제 전환을 의결, 지주사인 HDC에 부동산임대사업을 영위하는 개발운영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유통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HDC신라면세점 오픈과 용산 아이파크몰 리모델링 등이 대표적이다. 결국 상가임대 수익을 직접 챙기기 위해 자사를 배제했다는 것이 엔터식스의 주장이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현대아이파크몰 ⓒ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 용산구에 있는 현대아이파크몰 ⓒ 시사저널 이종현

현산, 직접 사업 벌이면 새로운 법적 분쟁 소지

만일 현대산업개발이 아이파크몰 등을 통해 상가임대사업을 직접 벌이게 될 경우 새로운 법적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공정거래법은 자기의 지위를 이용해 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거나 다른 사업자의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현재 소송 중인 사안이어서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아 보인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엔터식스는 장래 임대차계약 체결을 위한 제안서를 제출한 것일 뿐 정식 계약은 물론 양해각서(MOU)도 체결하지 않았다”며 “이 점 때문에 법원도 우리 손을 들어줬다”고 설명했다. 

 

현산 “7000평 중 3000평 줄 테니 소 취하” 회유 시도

현대산업개발이 엔터식스가 법원에 낸 가처분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회유를 시도한 정황이 확인됐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7월 가처분소송 전까지 엔터식스를 사업에서 배제한 배경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가처분소송이 제기된 직후 현대산업개발 뉴스테이 사업 담당 임원으로부터 연락이 와 회유를 했다는 것이 엔터식스의 설명이다. 해당 임원은 먼저 사업 배제 배경을 묻는 엔터식스의 내용증명에 회신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다음은 양측 간 통화 녹취록의 일부다.

“지난번 내용증명에 대한 거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중략) 제가 직원들한테 엄하게 지시를 했는데, 직원들이 그걸 못 보냈어요. ○○○ 상무한테도 지시를 하고 밑에 직원들한테도 직접 지시했는데, 그걸 안 보내 갖고 좀 뭐 그랬던 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사과 말씀드리고요.”

그러면서 이 임원은 또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전체 판매시설 부지 가운데 일부의 상가임대차 사업권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소송을 취하해 주신다면 지금이라도…. 당초에 면적(판매시설)이 한 7000여 평 됐거든요. 7000여 평 됐는데, 패션전문이니까 패션만 한다고 봤을 때는 뭐 한 3000평 미만으로다가 이렇게 사용해서 패션만 할 수 있으신지….”

이런 제안을 거절하자 유명 법무법인을 통해 엔터식스를 사업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재차 회유를 시도하기도 했다.

“김앤장에다 이 사항에 대해서 법률검토를 해주십사 했었거든요. (중략) 현재 상황에서 마스터리스(상가임대차 사업자)를 변경할 수 있는 그런 법적인 근거가 된다고. (중략) 법적으로 감정에 이렇게 골이 깊어지면 아까 제가 제안했던 사항들하고 저희가 협상할 수 있는 여백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엔터식스 측이 제안을 거절하고, 최근 가처분소송에서 법원이 현대산업개발의 손을 들어주자 이 임원은 소식을 끊었다. ‘을’의 입장인 엔터식스 측이 ‘갑’인 현대산업개발에 법적 소송과 별개로 국민권익위나 공정위에까지 손을 내민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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