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초등학교 보내기 300만원 시대
  • 박견혜 시사저널e. 기자 (knhy@sisajournal-e.com)
  • 승인 2019.02.21 10:45
  • 호수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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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원짜리 가방부터 수십만원짜리 운동화까지
백화점 키즈 명품 매출도 꾸준히 증가

텐포켓(Ten-pocket)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열 개의 주머니’라는 이 신조어는 부모·조부모·이모·삼촌뿐 아니라 주변 지인들까지 합세해 아이 한 명을 위해 지갑을 연다는 뜻이다. 출산율 하락으로 아이가 귀해지다 보니, 드물게 태어난 한 아이에게 온 애정과 경제력을 집중하는 세태를 보여주는 단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조카를 둔 기자는 입학 선물 리스트에서 추리고 추려 캐주얼 브랜드 가방 하나를 선물했다. 텐포켓 중 원(One) 포켓으로서의 역할을 한 셈인데, 어린이 가방에 10만원의 비용을 쓰면서 뿌듯함과 헛헛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어느 세계에서는 10만원짜리 초등학생 가방은 수수한 쪽에 속한다. 50만원이 훌쩍 넘는 어느 책가방은 입학 시즌이 가까워지기도 전인 지난해 12월 완판되기도 했다.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이 되는 것은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는 것과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는 것과는 다르다. 학제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는 아이에게 필요한 물건은 그만큼 다양하다. 가방부터 신발, 옷, 필기구, 예체능 관련 각종 준비물부터 아이의 첫 스마트폰, 안경, 책상도 이때 구매되기도 한다. 구매 목록은 대부분 비슷하나 구매 제품의 브랜드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아울러 맞벌이 학부모들은 방과후 수업이나 학원 등록을 지금 이 시기에 진행한다.

초등학교 입학 시즌이 다가오면서 각종 준비물과 학원 비용이 늘어나면서 학부모들의 부담도 커졌다. ⓒ 연합뉴스
초등학교 입학 시즌이 다가오면서 각종 준비물과 학원 비용이 늘어나면서 학부모들의 부담도 커졌다. ⓒ 연합뉴스

옷·가방 등 준비물만 100만원+α 

실제 올해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두 가정을 인터뷰했다. 한 가정은 서울 성수동에 사는 맞벌이 가정으로 여자 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다. 또 다른 가정은 서울 서초동에 산다. 남편이 외벌이를 하며 아이 셋 중 한 명이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성수동에 사는 박민영씨(39)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100만원가량을 썼다. 박씨는 그동안 가방 세트(15만원), 운동화 한 켤레(3만5000원), 옷(20만원가량), 책상(49만원), 안경(5만원) 등을 구매했다. 박씨는 “책상은 적어도 6학년까지는 계속 사용할 생각으로 큰마음 먹고 이번에 구매했다”면서 “유치원 수업에서는 칠판을 볼 일이 없어서 안경이 필요한 줄 몰랐는데, 초등학교에서는 교실 뒷자리에 앉을 경우 칠판이 안 보일 수 있어 안경을 맞추게 됐다. 이전보다 신경 쓸 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이 물건이라 비싼 브랜드는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초등학교 보내는 데 이렇게나 돈이 많이 든다. 물건 사는 것 말고도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허리가 휘는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서초동에 사는 B씨(42)는 아이 책가방을 시부모님으로부터 선물받았다. 일본 초등학생 책가방으로 유명한 ‘란도셀’이었다. 란도셀을 생산하는 일본 브랜드는 수백 가지가 넘는다. 브랜드에 따라 싸게는 20만원대에서 비싸게는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책가방임에도 지난 몇 년 동안 국내에서 인기를 끌어왔다. 기자는 ‘혹시 살 수도 있으니까’하는 마음에 지난 2월11일 미즈노 가방사가 만드는 휘또짱 브랜드로부터 란도셀을 공식 수입하는 란도셀 코리아에 상품을 구매하고 싶다고 문의했다. 곧바로 “기존 제품은 지난해 12월 완판돼 재고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튿날 2019년 신제품 재고가 있음을 알려왔다. 해당 브랜드 홈페이지에 게재된 제품 가격은 47만~53만원 수준. 다른 브랜드 세이반의 란도셀(일명 ‘천사의날개’ 란도셀)은 해외직구 시 30만~70만원 후반대의 가격을 자랑한다. 고급 소가죽으로 만들어져 광택이 다르다는 초고가 브랜드의 경우 수십만원이 우습다는 듯이 100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B씨는 “8살이 메기에는 가방이 무거워서 사줄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시부모님께서 란도셀을 선물해 주셨다”면서 “제품을 고를 때 가격은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란도셀 말고도 수아베라망이나 봉통, 빈폴 키즈 가방도 많이들 산다”고 말했다.

이처럼 란도셀과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가방뿐 아니라, 해외 명품 아동 의류의 인기도 높다. 국내에서 인지도 있는 몽클레르 앙팡의 패딩은 70만~80만원대다. 구찌 키즈 운동화는 40만원대다. 성인 의류 가격을 웃도는 키즈 명품의 붐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관련 매출 역시 매년 꾸준히 오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2019년 1월1일부터 2월11일까지 전체 프리미엄 아동복 신장률은 전년 대비 4.8%를 기록했다. 현대백화점 유아동 상품군 매출도 2016년 8.1%, 2017년 10.2%, 2018년 12.9%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이에 해외 고가 브랜드 입점도 늘렸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8월 압구정본점과 판교점에 아동 수입의류 편집숍 ‘한스타일키즈’ 매장을 오픈했다. 매장에서는 MSGM 키즈, 프리미아타 키즈, 마르니 키즈 등 11개 브랜드의 아동 의류·잡화를 판매하고 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랜드 ‘마르셀로 불론’ ‘에밀리오 푸치’의 아동 라인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가격대가 30만~40만원대인 마르니 키즈 슈즈, 필립모델, 프리미아타, N21 슈즈, 디스퀘어드 슈즈 등 수입 슈즈 브랜드를 강화하기도 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60대 이상 고객의 유아동복 상품군 신장률은 매년 20%가량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B씨는 “주변을 보면 몽클레르 아이 패딩을 많이들 입히는 듯하다”면서도 “그렇다고 모두가 그렇게 고가만 입히는 건 아니고 학교 끝난 다음에 운동이나 학원을 가야 해서 아디다스나 나이키, 뉴발란스 같은 캐주얼한 브랜드에서도 많이 산다. 애들한테는 결국 편한 옷이 최고”라고 말했다. 


초등 1학년, 학원 전쟁은 이미 시작

입학으로 변하는 건 아이가 쓰는 물건뿐만이 아니다. 상황도 변한다. 맞벌이를 하는 박씨 부부는 하굣길 아이를 픽업할 수 없어 아이의 방과후를 책임질 학원 두 곳에 등록했다. 이른바 양육공백을 메우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주 2회 가는 태권도학원의 한 달 등록비는 10만원, 주 2회 가는 영어학원은 15만원이다. 박씨는 “아이가 다니는 영어학원은 그나마 저렴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두 번 가는 영어학원은 40만원대”라고 말했다. 이렇게 일주일에 4일 학원을 보냄과 동시에 친정어머니까지 합세해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이달부터 박씨의 어머니는 지방에 있는 집을 떠나 박씨의 집에서 함께 살기로 했다. 박씨 부부는 매월 150만원을 드리기로 했다. 사설 아이돌봄서비스의 시간당 이용료가 8000원~1만원 선인 것을 고려해 비슷한 수준으로 금액을 맞췄다. 초등학교 입학 준비물 100만원을 제외하고도, 앞으로 매달 학원비와 양육비로 나가야 하는 돈이 180만원가량인 것이다.

언뜻 보면 ‘초등판’ SKY캐슬처럼 보인다. 다만 속사정은 다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아이돌봄서비스의 경우 대기가 워낙 길고 미리 예약을 한다고 해도 매칭된다는 보장이 없어서 그것만 믿고 있을 순 없다. 박씨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부모님을 서울로 부른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아이를 학원의 전장으로 몰아넣는 건 부모의 욕심뿐만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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