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관객보다 값진 《보헤미안 랩소디》
  • 서영수 영화감독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2.2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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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수 영화감독의 [영화로 보는 세상 7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2월18일까지 달성한 누적관객 993만8005명은 ‘작은 기적’이다. 지난해 10월31일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역주행 신드롬과 ‘싱 어롱’ 관람이라는 초유의 신무기로 장기 흥행에 성공했다. 누적관객 592만 명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음악영화 흥행 1위를 2012년부터 지켜온《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을 제치고 음악영화 흥행 챔피언에 《보헤미안 랩소디》가 등극했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배급한 이십세기폭스 코리아의 희망사항은 관객 150만 명이 최대 목표였다. 개봉 초기에 유료 관객 100만 명도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는 배급사의 자체 예상을 《보헤미안 랩소디》는 기분 좋게 뒤집어버렸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같은날 개봉한 한국영화 《완벽한 타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관객 동원으로 불안한 출발을 했다. 개봉 2주차인 지난해 11월8일 100만 관객을 넘기면서 《완벽한 타인》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록 밴드 ‘퀸’을 기억하는 장년층을 위한 팬 서비스 차원에서 CGV가 이벤트로 ‘싱 어롱’ 상영을 시도했다. ‘퀸’을 아는 세대보다 ‘퀸’의 음악을 전혀 몰랐던 젊은 세대의 호응이 더 뜨거웠다. 기성 세대의 레트로(Retro) 현상과 디지털에 지친 청춘들이 신(新) 복고를 지향하는 뉴트로(new-tro) 트렌드가 절묘하게 맞물리며 동일한 시공간에서 ‘떼창’을 함께 불렀다. 함께 노래를 부르며 손뼉 치고 발을 구르는 세대 화합이 극장 안에서 극적으로 이뤄졌다.

ⓒ 폭스코리아

《보헤미안 랩소디》를 관람하기 전에 ‘퀸’을 접해보지 못했던 1020세대의 열렬한 반응은 매진과 ‘N차’ 관람으로 이어졌다. 단발성 이벤트로 치부하던 메가박스도 ‘싱 어롱’ 상영관 운영에 뒤늦게 합류했다. 최고 음향을 자랑하는 MX관을 ‘싱 어롱’ 상영관으로 활용하면서 450명 객석이 연일 가득 찼다. 2012년 개관한 코엑스 대형 상영관 MX관은 사상 최대 관객이 몰렸다. 지상파 TV 뉴스와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에 대한 경쟁적 특집방송까지 더해져 《보헤미안 랩소디》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관객수가 점차 하락하는 상식을 깼다. 관객수가 개봉 첫주부터 4주차까지 줄곧 상승하며 흥행 역주행 신기록을 갖게 됐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시작과 대미를 장식하는 ‘라이브 에이드(LIVE AID)’의 실제 상황인 ‘퀸’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을 MBC가 방영하며 영화를 넘어 방송에서도 ‘퀸 신드롬’이 불었다. 1985년 7월13일 개최된 ‘라이브 에이드’는 에티오피아 난민의 기아구호를 위해 밥 겔도프, 밋지 유르가 기획한 대규모 록 페스티벌로 전세계 19억 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인기 연예인들의 ‘퀸’ 따라하기와 코스프레는 숱한 패러디를 양산하며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페라파트를 받아 하드 록이 곡의 정점을 찍어대면 관객은 ‘퀸’과 혼연일체가 된다. 록으로 달아오른 심장을 달래주듯 애잔한 프레디 머큐리의 발라드가 속삭이며 바람처럼 가슴을 훑어간다.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듯 로저 테일러가 커다란 징을 치며 《보헤미안 랩소디》는 6분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이 될 것이다”라는 프레디 머큐리의 공언은 현실이 되어 전세계를 다시 감동으로 이끌었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비슷한 시기에 상영된 《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 (누적관객 48만8958명)》은 프레디 머큐리 역을 한 라미 말렉보다 인지도가 높고 훈남인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과 주연을 했다. 레이디 가가는 여주인공을 맡아 주제가를 열창했지만 《보헤미안 랩소디》에 비하면 흥행성적은 초라했다. 지난 1월6일 미국 베버리힐즈 힐튼 호텔에서 열린 제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국계 연기자 샌드라 오(48)가 사회를 본 시상식에서 라미 말렉은 “심장이 터질 것 같다”며 “이런 음악을 남겨줘서 퀸의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에게 감사하다”고 경의를 표했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스타 이즈 본》은 3월에 개최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맞대결을 하게 되겠지만 현재는 죽은 프레디 머큐리가 살아있는 ‘레이디 가가’를 이긴 셈이다. 아카데미 수상 여부, 1000만 관객 돌파와 무관하게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미 값진 결과를 만들어냈다. 좀처럼 쉽지 않은 세대간 격차를 음악과 영화로 녹여 소통과 화합을 잠시라도 누리게 해줬다. 프레디 머큐리는 결코 도덕적인 위인이나 지구를 구한 영웅은 아니다. 오히려 주류 사회와 거리가 먼 난민 출신의 가난한 공항노동자였으며 성소수자였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대한민국에서 ‘퀸알못(퀸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퀸망진창(퀸과 엉망진창의 합성어)’같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만성 침체기였던 음악 시장에 훈김을 불어넣었다. 대중에게 영합하기보다 ‘내 것이란 느낌을 주는 음악’을 추구하며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지 않고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개척한 프레디 머큐리의 자세와 노력은 ‘퀸’을 오늘도 사랑받는 전설로 만들었다. 프레디 머큐리가 영화 도입부에 거울을 보며 “내가 누군지는 내가 결정해”라는 대사는 잊고 싶지 않은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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