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아닌 신념 따라 예비군훈련 거부' 20대에 무죄 선고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2.1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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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감수하고 일관되게 주장"…양심적 병역거부 폭 넓어지나


그동안 '양심적 병역거부'란 표현을 두고는 갑론을박이 벌어져 왔다. 종교적 믿음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법원이 잇달아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환영하는 쪽이 있는 반면 '무엇이 양심인가'라는 의문도 뒤따랐다.

일각에서는 '종교적 병역거부'란 표현이 더 맞는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무죄 선고가 모두 종교적 양심(여호와의 증인)을 근거로 했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해 11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뒤 하급심에서 나온 무죄 판결은 100여건에 이르렀다.

예비군의 날 50주년을 맞아 지난해 3월31일 56사단 금곡 예비군훈련대에서 실시한 '최정예 예비군 탑-팀' 경연대회에서 참가 예비군들이 시가지 전투를 하는 모습. ⓒ 연합뉴스
예비군의 날 50주년을 맞아 지난해 3월31일 56사단 금곡 예비군훈련대에서 실시한 '최정예 예비군 탑-팀' 경연대회에서 참가 예비군들이 시가지 전투를 하는 모습. ⓒ 연합뉴스

 

종교 아닌 이유의 '양심적 병역거부' 첫 인정 

그런데 이제 '양심적'을 '종교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등의 논의는 무의미해질 지도 모른다. 법원이 종교가 아닌, 문자 그대로 개인적인 양심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음 인정했다. 2월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 형사5단독 이재은 판사는 병역법 및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28·남)씨에 대해 지난 2월14일 무죄를 선고했다. 

2013년 2월 제대한 A씨는 예비역에 편입된 뒤 2016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예비군훈련, 병력 동원훈련에 참석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은 병력동원훈련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지정된 일시에 입영하지 않으면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A씨는 훈련에 불참한 데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전쟁을 위한 군사훈련에 참석할 수 없다는 신념에 따른 행위라는 설명이다.

이 판사는 A씨의 주장을 검증했다. 판결문을 보면 A씨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로 인해 고통을 겪는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해 어려서부터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

 

"훈련 거부로 인한 불이익 더 커"  

이런 가운데 A씨는 미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동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잘못은 생명을 빼앗는 것이고, 그것은 전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신념을 품었다.

이런 이유로 입대를 거부할 결심까지 하고 있었던 A씨는 어머니와 친지의 간곡한 설득으로 양심과 타협해 입대하게 됐다. A씨는 신병 훈련 과정에서 군 복무는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입대를 후회했다. 다만 자원해 군사훈련을 받지 않을 수 있는 회관관리병으로 근무했다.

제대 후에는 더는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겠다며 예비군훈련에 모두 참석하지 않아 결국 기소됐다. 관련해 A씨는 수년간 수십회의 조사를 받아 왔다. 생계는 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지했다.

이 판사는 A씨의 예비군 훈련거부가 절박하고 진실한 양심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피고인은 자신의 신념을 형성하게 된 과정 등에 관해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며 "수년간 계속되는 조사와 재판, 주변의 사회적 비난에 의해 겪는 고통, 안정된 직장을 얻기 어려워 입게 되는 경제적 손실, 형벌의 위험 등 피고인이 예비군훈련을 거부함으로써 받는 불이익이 훈련에 참석하는 것으로 발생하는 불이익보다 현저히 많다"고 판시했다. 또 "피고인은 처벌을 감수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고, 오히려 유죄로 판단되면 예비군훈련을 면할 수 있는 중한 징역형을 선고받기를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로 향후 양심적 병역거부의 폭이 종교를 넘어 개인 신념·철학·윤리 등으로 그 범위가 넓어지리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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