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무슬림이 테러리스트? 이단 없는 종교는 없다”
  • 경남 김해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1 08:4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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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에 위치한 우즈벡 이슬람인들의 거주지 현지 르포
이슬람 공동체 이맘(지도자) 압두갑바르 “무슬림에 대한 편견 지우는데 노력할 것”

“Terrorist, that’s not my name(테러리스트, 그건 내 이름이 아니에요).”

3월4일 저녁 7시쯤, 해가 진 김해의 한 거리에서 마주친 우즈베키스탄(우즈벡)인 서비르(Sobir·33)가 파란 점퍼 주머니에서 자신의 여권을 꺼내 보였다. ‘한국 우즈벡 무슬림과 테러단체가 연계돼 있다’는 외신을 보여주자 내놓은 답이었다. 그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한 손을 이마에 올렸다. 그리고 곧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말했다. “Look at this(이걸 봐요).” 금이 간 액정 위로 팔에 깁스를 한 남자아이가 보였다. 그가 두터운 왼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서툰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말했다. “우리도 don’t like terrorism(테러를 싫어합니다). I’m just a poor dad(난 단지 가난한 아빠입니다).” 

김해에는 1800여 명의 ‘서비르’가 산다. 모국은 우즈벡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은 김해 인근 공장에 취직해 돈을 번다. 전 세계를 휩쓴 이슬람포비아(이슬람 민족 혐오증)는 한국의 작은 마을도 예외 없이 덮쳤다. 특히 지난 1월 ‘우즈벡 출신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터키를 거쳐 한국에 오려 한다’는 유엔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주홍글씨는 더 선명해졌다. 실제 관련 기사 댓글난에는 ‘무슬림을 추방해야 한다’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날 선 목소리가 드물지 않았다. 

과연 김해는 위험한 ‘테러리스트의 도시’가 된 것일까. 시사저널은 지난 3월4일과 5일, 김해에 머물며 무슬림 그리고 테러에 대한 우즈벡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경남 김해시 분성로 알 부카리 이슬람 센터(4층)가 있는 건물
경남 김해시 분성로 알 부카리 이슬람 센터(4층)가 있는 건물

김해 우즈벡 무슬림의 쉼터 ‘알 부카리’

김해에 거주하는 이슬람 신도는 약 4000명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이 외국 이주노동자들이다. 무슬림이 늘어나면서 이슬람 사원도 하나둘 생겨났다. 이렇게 지어진 김해 내 이슬람 사원만 외동의 알 마티나, 서상동의 알 따끄와 등 5곳이다. 이 중 가장 최근에 문을 연 곳이 우즈벡 이슬람 사원인 ‘알 부카리’다. 알 부카리는 지난 2015년 8월 김해 동상동에 개원했다. 우즈벡 이주민을 위한 사원으로, 주말이면 김해뿐만 아니라 밀양·양산·부산 등에 사는 우즈벡 이주노동자 200~300여 명이 찾는다. 알 부카리는 예배당 외 사무실과 부엌, 샤워실 등을 갖췄다. 종교시설이지만 사실상 우즈벡 무슬림의 작은 쉼터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3월4일 오후 3시 좁은 골목 어귀에 위치한 알 부카리를 찾았다. 알 부카리는 수백 명이 찾는 이슬람 사원이지만 그 규모는 시골 교회만 못하다. 낡은 회색 건물 4층에 위치한 알 부카리는 간판 하나 없다. 사원 입구에 붙은 ‘No cell phone zone’이라는 스티커만이 이곳이 종교시설이란 것을 암시해 줄 뿐이다. 입구 옆에는 반쯤 뜯어진 A4 용지에 계좌번호가 적혀 있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일종의 후원금을 받는 계좌로 모인 돈은 사원 운영비 등으로 쓰인다고 했다.

신발을 벗고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알 부카리의 지킴이인 에르가셰프 압두갑바르(Ergashev Abdugoffor·38)가 옅은 미소를 띠고 반겼다. 압두갑바르는 알 부카리를 지키는 이맘(이슬람교 교단 조직의 지도자)으로, 김해 우즈벡 이주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알 부카리가 생긴 이듬해인 2016년 한국에 들어와 지금까지 이곳에서 예배를 이끌고 있다. 

이슬람 공동체의 이맘(지도자) 에르가셰프 압두갑바르 ⓒ 시사저널 최준필
이슬람 공동체의 이맘(지도자) 에르가셰프 압두갑바르 ⓒ 시사저널 최준필

이맘, “테러리스트는 무슬림이 될 수 없다”

사원 안은 고요했다. 젊은 우즈벡 청년 1명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압두갑바르는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을 시간으로 평일에는 사람이 적다”고 귀띔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위해 자리에 앉자 그는 대뜸 자신의 대학 졸업증명서를 꺼내 보였다. 그는 타슈켄트 이슬람대학에서 종교연구학과를 전공했으며, 2008년 졸업했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엔 여권을 펴 보여줬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신분을 계속 증명했다. 무슬림이라는 하나의 정보만 가지고 자신을 대하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먼저 질문을 던진 것도 기자가 아닌 압두갑바르였다. “무엇을 묻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나.” 그는 이미 ‘한국의 언론사’가 ‘우즈벡 이맘’을 찾아온 이유를 아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에 온 계기’라는 짧은 질문에도 긴 답을 이어갔다. 이 첫 질문에 대한 답부터, 이날 인터뷰 끝까지 그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나쁜 길’이었다. “한국에만 수만 명의 우즈벡인들이 살고 있고, 이곳 김해를 포함한 경남 지방에만 수천 명의 우즈벡인들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요즘 이슬람을 앞세워 나쁜 길로 빠지는 이들이 있다. 그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가진 이들이 타국에서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굳이 ‘테러’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다만 압두갑바르는 언론이, 그리고 대중이 무슬림을 향해 어떤 것을 궁금해하고 어떤 것을 증명하길 원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모든 질문을 덮고 테러에 대해 물었다. 그 근거로 지난 1월 발표된 유엔 보고서를 짚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 들어보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유엔 보고서와 같은 일이 실제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진 않았다. 다만 전제를 붙였다. 자신이 몰랐지만 일어났을 수 있는 일이 있고, 또 남들이 몰라도 자신만 아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전자라면 그 ‘일’이라는 게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방증이라고 했다.

“그런 (테러)단체와 사람이 김해에 있다고 치자. 김해라는 이 작은, 또 거기서 우즈벡 무슬림이라는 이 제한된 커뮤니티에서 나쁜 길에 빠진 이들의 존재는 빠르게 퍼져 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생기면 빨리 교육을 시키고, 해결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런데 난 아직 그 일에 대해 모른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아주 은밀하게, (다수가 아닌) 개인적으로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다. ‘나쁜 것’들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지 않나. 무슬림도 마찬가지다.”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왜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의 대부분이 이슬람과 관계된 것인지 꼬리를 잡았다. 동시에 이는 타 종교를 배척하는 것을 넘어 정복 대상으로 보는 종교 근본의 문제점이 아니냐고 날을 세웠다. 그렇기에 ‘무슬림은 두려워해야 하는, 안에 들이면 안 되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우문(愚問)을 던졌다. 국내에 존재하는 이슬람포비아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한 셈이다. 그러나 압두갑바르는 침착했다. 익히 들은 질문이라는 듯 덤덤하게 답을 이어갔다.

“한국인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유럽 사람한테 무슬림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총을 든 사람이라고 답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실제 나쁜 단체들이 이슬람교를 내걸고 테러를 자행하고 있고,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슬람에서 인정받지 못한 이단이다. 모든 종교에 이단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이용해 사람을 죽이고 전쟁을 일으킬 뿐, 종교를 알리는 데 관심이 없다. 이슬람교에서는 다른 종교를 존중해야 된다고 가르친다. 나 역시 불교·기독교 등 다른 종교들의 장점을 배운다. 테러리스트는 절대 무슬림이 될 수 없다.”

3월4일 경남 김해시 분성로 알 부카리 이슬람 센터에서 무슬림들이 살라트(메카를 향해 매일 5차례씩 올리는 기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4일 경남 김해시 분성로 알 부카리 이슬람 센터에서 무슬림들이 살라트(메카를 향해 매일 5차례씩 올리는 기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테러 No, Money Ok”

테러를 사이에 둔 문답이 오가던 가운데, 어느새 시계가 오후 4시40분을 가리켰다. 그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예배(살라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예배는 이슬람의 의무로, 하루에 다섯 번 행한다. 파즈르(새벽 예배), 주흐르(정오 직후 낮 예배), 아스르(오후 예배), 마그립(일몰 후 저녁 예배), 이야(취침 전 밤중 예배)가 그것이다. 압두갑바르는 아스르 예배를 주관했고, 어느새 고요하던 사원 안에 11명의 우즈벡·파키스탄 청년들이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다. 약 15분간의 예배가 끝나고 그가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압두갑바르가 청년들을 보며 말했다. “저 친구들은 오늘 일이 없는 날이다. (해외 이주민들은)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 보니 보통 퇴근 후 저녁에는 꼭 사원을 찾아 저렇게 예배를 보고 쉬다 가곤 한다.”

가족 얘기를 꺼내자 압두갑바르는 어느새 이맘이 아닌 아빠가 됐다. 그는 “첫째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딸은 초등학교 1학년이다. 막내아들은 이제 유치원에 들어갔는데 장난꾸러기다”라며 “갑자기 가족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어 그는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 편견을 지우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그래서 아내가 해 준 밥과 다려진 옷, 아이들의 웃음을 포기한 것”이라며 “오는 4월17일에 우즈벡으로 돌아가 비자 연장을 기다려야 한다. 다시 꼭 한국에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우즈벡 전통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압두갑바르의 성의를 뒤로하고, 알 부카리를 나온 시간은 오후 6시30분. 한산하던 거리에 어느새 해외 이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그렇게 알 부카리 인근의 김해수로왕릉까지 약 450m의 좁은 골목길을 걷는 동안 23명의 무슬림 해외 이주민을 만났고, 테러와 한국에 온 이유 등을 물었다. 몇몇은 손을 저으며 떠났고, 한 파키스탄인은 188만원이 입금된 자신의 월급명세서 문자를 보여주며 “테러 No, Money Ok”라며 웃어 보였다. 한 방글라데시에서 왔다는 이주민은 “IS 개XX”라며 거친 한국 욕설을 내뱉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안 불안하면 이상하지”
 ‘테러 노이로제’ 김해 주민들

김해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슬람 혐오’라는 말에 화를 냈다. 혐오와 불안은 다른 얘기라는 게 그들의 목소리다. 알 부카리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아무개씨(45)는 “워낙 (무슬림이) 많으니까 이제 익숙하긴 하지만 (테러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보면 무섭기도 하다”며 “평소에 나쁜 짓을 했다는 건 들어본 적은 없는데, 그 종교(이슬람) 믿는 사람은 일단 의심해야 한다. 그래서 손해 볼 일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김해 PC방 앞에서 만난 중학생 한지민양(가명·14)은 “집에 갈 때 (외국인 노동자들과) 눈이 마주치면 무섭긴 하다. 안 좋은 뉴스도 많이 봤고”라며 말을 줄였다. 30년 가까이 김해 ‘토박이’로 살았다는 박아무개씨(56)는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치고 이 동네 사는 사람을 못 봤다. 경찰이 매일 오는 것도 아니고, 막상 일 터지고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며 “불안하니까 겁을 내는 것이고, 낼 만하니까 내는 거다. 귀신이 꼭 눈에 보여서 무서운 것인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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