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 정부 심기 자극할 ‘테러 지원’ 유엔 보고서
  •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유라시아투르크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1 08:5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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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정책, ‘통제와 장려’ 사이
정권 유지 위협하는 ‘정치적 이슬람’은 차단
[오은경 동덕여대 교수 기고]

우즈베키스탄은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로, 2016년 12월 제2대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취임 이후에는 더욱더 적극적인 개방정책으로 국제사회에서 자리를 확고히 하고자 야심 찬 행보를 내딛고 있다. 130여 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다문화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베크인이 대략 80% 이상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 가운데 약 88%는 무슬림이다. 그중 70% 정도는 수니파로 알려져 있다. 고대 사회에는 조로아스터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8세기경 압바스 왕조와 치른 탈라스 전투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이슬람화됐다.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은 교리 해석에 있어 인간의 이성적 판단이 적용되는 범위가 상대적으로 큰 하나피 법학파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비교적 유연하고 엄격하지 않다. 더불어 수피주의는 중앙아시아 이슬람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수피즘은 우즈베크인들의 토속 종교와 전통문화를 모두 포용했기 때문에 삶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를 ‘일상 이슬람’(Everyday Islam)이라고 부른다. 소비에트 시대 이슬람은 ‘통제와 장려’라는 이중적 정책 대상이었으며, ‘종무국’이라는 공식 기구를 두고 관리됐다. 이 시기 ‘정통 이슬람’은 공식 이슬람이었던 반면, 우즈베크인들의 삶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일상 이슬람’은 비공식 이슬람으로 치부됐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2005년 안디잔 사태 당시 사망자 수를 187명이라고 발표하고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테러라고 밝혔다. ⓒ AP 연합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2005년 안디잔 사태 당시 사망자 수를 187명이라고 발표하고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테러라고 밝혔다. ⓒ AP 연합

이슬람 원리주의, 반체제 무장세력으로 성장

구소련이 해체되고 독립을 하게 되자, 이슬람은 그 의미가 재구성되고 재발견됐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정통 이슬람으로 받아들여지던 ‘와하비즘’이 테러와 원리주의로 인식됐고 정권을 위협하는 요소로 받아들여 강력한 규제의 대상이 됐다. 반면 ‘일상 이슬람’은 독립 이후 국가의 정체성 형성과 민족주의 노선과 맞물려 정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즈베크인들에게 이슬람은 국민들의 정신문화이며,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무형유산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원리주의가 배척되고 있는 것은, 1991년 독립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반정부 경향을 보이면서 국내 정치와 국제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원리주의는 이 지역의 정치·역사적 환경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중동’이라는 ‘외부’에서 수입된 이슬람 원리주의는 외세를 반대하는 저항적 측면에서 발전했다. 정통 칼리프 시대로 회귀해야 한다는 원리주의의 지향점은 우즈베키스탄에서 민속 이슬람과 더불어 또 하나의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 

소비에트 정권에서 독립해 신정부가 출범하자, 국민들은 기존의 권위주의 체제를 답습하는 것에 대해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반감으로 ‘신정국가’라는 이상과 대의가 퍼지기 시작했고, 이는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이것은 ‘반외세, 반정부’ 세력의 명분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원리주의로 인해 벌어진 대표적인 사태가 2005년 안디잔에서 발생한 유혈사태다. 아직도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과 독립적이고 국제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우즈벡 정부, 원리주의 ‘국가의 적’ 규정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들 때문에 국가 체제 전복의 위협을 느끼게 됐다. 이에 즉각적으로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그 여파로 친서방 성향의 대표적인 다자 연합체인 ‘구암(GUUAM)’에 가입했다가 원리주의 단체들의 체제 전복 위협 때문에 2005년 탈퇴하게 되었고, 줄곧 친러시아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미르지요예프 대통령도 전임 초대 대통령의 이 노선을 유지할 방침이다.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 원리주의 단체는 ‘이슬람해방당(HT)’과 ‘우즈베키스탄 이슬람운동(Islamic Movement of Uzbekistan)’으로 불리는 IMU다. 이 두 단체는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 분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해 갔다. 전통적으로 농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던 지역주민들은 빈곤이 지속되자 반정부적 성향으로 발전해 갔다. 

특히 IMU는 나만가니(Namangani)와 율다쉐프(Tahir Yuldashev)가 1988년 창설한 단체다. 주창자 율다쉐프는 타지키스탄으로 가서 내전에 참여했고, 나만가니는 구소련에 대항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군 출신이다. 나만가니는 IMU의 군사 지도자이면서 탈레반 야전사령관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우즈베키스탄 세속정권을 전복시키고, 이슬람 신정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IMU를 포함한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를 반정부 단체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구성원들은 구속당하거나 해외로 추방됐다.

우즈베키스탄은 독립 이후 국가이념과 민족 정체성을 이슬람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정치·경제를 주도하는 권력 엘리트 계층이 특별히 이슬람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소비에트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노선과 정신문화 함양을 위한 전통문화로 이슬람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슬람 원리주의와 급진주의 단체의 발호로 인해 정권 유지에 위협을 느낀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정치적 이슬람(political Islam)’은 완전히 차단하고 배제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1998년 ‘양심의 자유와 종교조직법’을 통과시켰으며, 이 법은 국가안보에 위배되는 종교권리는 모두 제한하고 통제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이슬람 사원의 아잔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은 물론 무슬림 남성들의 턱수염 관행도 모두 금지시키고 있다. 소비에트 체제하에서 공식 이슬람과 민속 이슬람의 이중 체제로 나눠 존속하던 이슬람은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통제와 장려’라는 이중적 정책 안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한국에 체류 중인 일부 우즈베크인들이 중동의 시리아 극단주의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유엔 보고서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비보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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