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은 나중” 역주행 끝에 날아온 ‘미세먼지 청구서’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2 12:00
  • 호수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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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공화국’ 낳은 정부의 3대 실책

“그것은 네가 택한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다.” 영화 《대부3》에서 주인공 알 파치노가 남긴 명대사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를 자청하는 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후계자가 되고 싶다면 사랑하는 연인도 포기해야 한다고 말이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대가가 있음을 깨닫게 해 준 것이다. 

모든 문제 해결에는 비용이 따른다. 이 원칙은 개인, 기업, 국가 모두에게 적용된다. 예외는 없다. 실질적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일정한 인내와 고통, 불편함 등을 감수해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원하는 변화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태도는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최근 미세먼지가 더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희뿌연 공기가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었지만 시민들은 방비책이 없다. ‘재난’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일상이 지옥이 돼 가고 있다. 파란색 하늘이 회색으로 변한 집 밖으로 어린아이들을 내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속은 타 들어간다. 성인들도 밖에서 걷다 보면 목이 따끔거리고 눈이 침침해지는 게 일상이 됐다. 한반도에서 점점 숨 쉬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한 걸까. 정부는 왜 미세먼지 대책에 소홀했을까. 시사저널은 이번에 미세먼지 사태의 뿌리, 근본원인을 집중 취재했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시사저널의 취재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것은 네가 택한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다.” 미세먼지 사태라는 대가를 치르면서 ‘정부가 택한 삶’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거기에 얹혀간 우리의 삶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서글프지만 결론은 명확하다. 순간을 조금 더 ‘편하게’ 그리고 ‘값싸게’ 보내기 위함이었다. 순간의 파티를 즐긴 우리에게, 그 청구서가 지금 잔인한 짙은 회색빛으로 날아왔다.

서울 중구 일대 미세먼지가 가득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서울 중구 일대 미세먼지가 가득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유류세 인하, 미세먼지 정책 엇박자의 ‘상징’

지금 우리는 예년보다 싸게 자동차를 타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유류세 인하를 단행한 덕분이다. 휘발유와 경유, 차량용 액화석유가스(LPG)에 부과되는 유류세가 15% 한시적으로 인하됐다. 기간은 작년 11월6일부터 올해 5월6일까지 6개월간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이후 10년 만이다. 수혜 대상과 수혜 금액은 자동차 2253만 대(2017년 말 기준), 2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왜 유류세 인하를 실시했을까.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가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리게 할 것으로 기대했다. 당시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정부 합동 브리핑에서 “유류세 인하는 어려운 사람일수록 가처분소득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가처분소득을 (즉각) 늘리고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하는) 정부의 의지를 담았다”고 밝혔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결정은 어떤 효과를 낳았을까. 기름값 하락은 시민들에게 어떤 시그널(신호)을 줬을까. 차량 운행과 유류 소비를 늘리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게 기름값이 하락하는 동안 고농도 미세먼지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환경 정책에 역행하는 시책이었던 셈이다. 서민 부담 경감이라는 정책목표 달성도 확실치 않다. 유류세 인하 혜택을 오히려 고소득층이 더 많이 누린다는 연구 결과(한국지방세연구원)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과연 정부는 몰랐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당시 고형권 기재부 1차관은 기자브리핑에서 “유류세 인하가 소득 역진적일 수도 있고 환경 정책 방향에 역행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환경부와 서울시 등은 자동차로 인한 미세먼지 오염을 줄이기 위해 차량 2부제 의무 실시 등 도심 내 차량 운행 제한 정책 도입을 추진하고 있었다.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환경 피해 비용이 많이 드는 연료에 대한 상대가격 인상 등 환경친화적인 에너지 세제개편 방안을 마련 중이었다. 한쪽에선 더 많은 자동차 사용을 촉진하는 유류세 감세 카드를 쓰고, 다른 쪽에서는 자동차 사용 제한 정책을 꺼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정부에 대기오염 문제 해결을 위해 경유세를 올려 소비량을 줄일 것을 줄기차게 권고했는데, 이러한 결정과 정반대의 길로 간 것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출신인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은 “유류세 인하는 대표적인 환경 역주행 정책”이라면서 “당장의 이득과 편익을 위해 정책적 기조를 흔들어버린 셈이 됐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결정은 ‘노무현 정신’과도 사실 맞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8년 당시 여야 모두의 유류세 인하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원칙을 고수했다.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길 수 있고 유류세를 내려도 복잡한 유통구조 탓에 기름값 인하로 이어질지 확실치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경제에도 법칙이 있고, 정책은 그 경제의 법칙을 존중하면서 법칙에 맞게 해 가야 하는 것이지, 단방 특효약이 어디 있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미세먼지 30% 절감’을 공약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미세먼지 30% 절감’을 공약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노후 경유차 ‘해묵은 숙제’ 미루고 미뤘다

당장 문제 해결이 어려운 중국 변수를 제외하면 초미세먼지의 주범은 노후 경유차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2015년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이후 전 세계가 ‘클린 디젤’ 정책을 폐기했지만, 한국 정부는 이 해묵은 숙제를 계속 미루고 미루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의 늑장대처는 역시 경제적 이유가 컸다. 확고한 정책 의지가 있다면 노후 경유차에 저감장치를 달아주거나 폐차를 유도해야 하지만 정부는 생계형 경유차 운전자 등의 반발을 의식한 탓에 강력한 조치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환경부에 따르면, 미세먼지 국내 발생량 기여도는 전국적으로 공장 등 사업장이 1위, 대도시에서는 경유차가 1위다. 경유차는 수도권에선 초미세먼지 배출 원인의 22%에 달한다. 경유차가 뿜어내는 미세먼지가 휘발유차보다 9배나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경유차가 휘발유차보다 질소산화물을 23배 뿜어낸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다. 경유차의 본고장인 유럽이 경유차 퇴출에 나선 까닭이다. 

글로벌 트렌드 변화에도 국내에서 경유차는 계속 각광받았다. 개인 입장에서는 합리적 의사선택이기 때문이다. 경유차는 상대적으로 휘발유차보다 비싸지만, 100대 85 정도로 맞춰져 있는 휘발유와 경유의 상대가격 차이로 차량 구입 후 5년 정도면 초기 비용이 회수된다. 이런 흐름 속에 국내 경유차 비율은 2011년 36.3%에서 2017년 42.5%(휘발유차 비중 46%)로 껑충 뛰었다. 전국 자동차 2253만 대 중 경유차가 958만 대다. 연간 경유 소비량도 210억 리터에 달해 휘발유 122억 리터의 1.7배에 이른다. 

정부는 더 미룰 수 없을 만큼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진 작년 말이 돼서야 ‘클린 디젤’ 정책을 폐기하기로 했다. 그나마도 경유차 퇴출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정부의 정책은 경유차에 대한 인센티브는 줄이고 친환경차량에 대한 보조금을 늘리는 식이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저공해 경유차’ 인정 기준을 없애고, 주차료나 혼잡통행료 감면 등 과거 저공해 자동차로 인정받은 경유차 95만 대가 누리던 인센티브를 없앴다. 또 정부는 노후 경유 트럭을 폐차하고 LPG 트럭을 사면 기존 보조금(최대 165만원)에 추가로 400만원을 지원하고, 오염물질 단위 배출량이 높은 중·대형 화물차의 폐차 보조금도 높여 감축을 유도했다. 여기에 더해 전기·수소·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량에 인센티브를 줘 경유차를 대체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소비자들이 경유차를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인 싼 경유 값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류세 인하의 부작용이다. 또 정부의 보조금 지원 대책은 배송차량이나 화물차처럼 운행시간이 길고 오염물질을 많이 뿜어내는 노후 경유 차량이 아닌 일반 승용차 보조금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전기승용차 3만2833대, 전기화물차 1000대, 전기버스 300대). 정부는 국민들의 원성이 극에 달한 3월6일이 돼서야 휘발유와 경유 간 상대가격 조정 검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런 모습은 이웃 나라 일본과 상반된다. 1999년 도쿄도는 경유차 판매와 구매를 금지하고 경유 가격을 인상하는 등의 이른바 ‘경유차 NO작전’을 폈다. 전일본트럭협회의 격렬한 반대에도 흔들림 없이 추진했고 2001년부터 10년 새 초미세먼지 연중 평균치를 55%나 줄였다.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에 대한 의지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언론과 국민들은 주로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보지만 사실 정부의 정책 의지는 예산에서 따져볼 수 있다. 결국 문제 해결에는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세먼지 대책 예산은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그 예산의 구체적 내용을 보면 왜 지금까지 미세먼지 대책이 실효성을 가져오지 못했는지 엿볼 수 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3월6일 서울 성동구청 앞에서 ‘도로재 비산(날림) 먼지 제거’를 위한 청소차량 운행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3월6일 서울 성동구청 앞에서 ‘도로재 비산(날림) 먼지 제거’를 위한 청소차량 운행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화석연료 지원금, 미세먼지 대책 예산의 두배” 

정부는 올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예산을 크게 늘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왜 그럴까? 미세먼지를 뿜어내는 화석연료 지원금이 전체 미세먼지 예산의 두 배 가까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 예산 분석에 정통하다는 평을 듣는 나라살림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흩어져 있는 미세먼지 관련 예산을 합치면 총 1조8240억원이다. 전년보다 32% 늘어난 수치다. 정부가 밝힌 미세먼지 예산 1조7000억원보다 조금 많다. 나라살림연구소는 분류기준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미세먼지 대책과 같은 ‘대응’ 예산은 미세먼지 ‘증대’ 예산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미세먼지 증대 예산은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화석연료와 관련된 것이다. 그 규모가 무려 3조4400억원에 달한다. 화석연료 업계에 지원되는 유가보조금이 2조원, 농어민 면세유 1조1000억원, 석탄 관련 보조금 3400억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미세먼지를 해결한다면서 브레이크와 엑셀을 동시에 밟고 있다”면서 “화석연료 업계나 저소득층에 대해서도 직접 지원보다는 소득지원 등 복지 혜택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에서 예산을 투입해 석탄산업을 유지하고, 석탄산업에 따른 환경오염을 방지하는 데 또 돈을 쓰게 되는 현 구조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지언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장도 “미세먼지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고 환경 조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또 미세먼지 대책 관련 정부 예산이 보조금 위주이며, 특히 전기차 지원에 편중돼 있어 실효성이 적다는 점도 지적한다. 보조금 지원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데다 기존 차량을 두고 ‘세컨드 차’로 전기차를 사면 미세먼지 저감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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