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인정심문 시작되자 “안 들린다”며 한때 답변 거부도
  • 광주 =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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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5·18 ‘피고인’으로 광주지법에 출석
재판 도중 꾸벅꾸벅 졸다가 방청객들로부터 핀잔 받기도
전씨 측, 헬기사격 ‘사실’ 쟁점을 재판전략으로 삼을 듯

1980년 ‘5월 광주’ 학살의 책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마침내 ‘광주법정’에 섰다. 전씨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것은 지난 1996년 내란 목적 살인으로 사형이 선고된 지 23년 만이다. 광주 법정에 출석하는 것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39년 만에 처음이다. 전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다. 10여개월에 걸친 재판 연기와 불출석 끝에 회고록에서 5·18 당사자인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이번 재판이 발포 명령 등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5·18 진실 규명의 단초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서울 서대문 연희동에서 광주지방법원까지 거리는 270㎞다. 먼 길을 강제로 끌려 오다시피한 전씨가 5·18의 본산 광주법정에서 어떤 말을 하게 될지에 이목이 쏠렸다.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예정보다 일찍 3월 11일 오후 12시33분께 재판이 열리는 광주지법 동쪽 후문에 도착했다. 법정동 현관 바로 앞까지 차로 이동해 승용차에서 내린 전씨가 뒤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예정보다 일찍 3월 11일 오후 12시33분께 재판이 열리는 광주지법 동쪽 후문에 도착했다. 법정동 현관 바로 앞까지 차로 이동해 승용차에서 내린 전씨가 뒤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지법 도착한 전씨 첫 마디 “이거 왜 이래” 버럭

사자명예훼손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씨는 예정보다 일찍, 11일 오후 12시33분께 재판이 열리는 광주지법 동쪽 후문에 도착했다. 앞서 그는 이날 오전 8시 32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부인 이순자씨와 광주로 출발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대략 4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전씨는 법정동 현관 바로 앞까지 차로 이동해 승용차에서 내린 뒤 “전두환은 사죄하라”고 외치는 시민들 쪽을 한 차례 둘러봤다. 이후 수행원들과 함께 10m를 걸어서 법원 현관 출입구에 이른 전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을 내렸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왜, 이래”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광주 시민에 사과할 마음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법정으로 들어갔다. 전씨는 법정동 건물 2층 보안구역인 증인지원실에 머문 뒤 오후 2시30분 광주지법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되는 재판에 출석했다.

이날 재판을 방청한 (사)5월 어머니집 추혜성 이사에 따르면, 전씨는 재판장이 인정신문을 시작하자마자 “못 알아듣겠다”면서 한때 답변을 거부했다. 이후 법원 측이 제공한 헤드셋을 낀 채 재판장이 “이름이 전두환 맞냐”고 묻자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재판장이 계속해서 “31년생이냐”“본적이 대구냐”“사는 곳이 서대문구 연희동이냐”고 연이어 질문하자 그때마다 “네”라고 응했다. 10개월 만에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300여㎞라는 먼 길을 달려온 전씨가 이날 한 말은 법원에 들어가면서 한 “왜 이래”와 네 차례에 걸친 “네‘라는 대답 뿐이었다.

검사의 모두진술에 이어 전씨 측 변호인은 30여분 가량 변론문을 낭독했다고 한다. 전씨 측 변호인이 “헬기사격 주장은 허위이고 조비오 신부는 성당에서 봤기 때문에 성당과의 거리가 직거리여서 잘못 봤을 수 있다”는 요지로 변론했다고 추 이사는 전했다.

'5.18 피고인'으로 재판받기 위해 광주지법에 출석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사저널 정성환
'5·18 피고인'으로 재판받기 위해 광주지법에 출석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사저널 정성환

전씨는 이날 재판도중 연신 졸고 있었으며 일부 방청객들이 “졸고 있네”라고 핀잔을 주면 그때마다 숙였던 고개를 쳐들었다고 한다. 재판 말미에 재판장이 오는 4월 8일 다시 출석할 수 있느냐고 묻자 전씨 대신 담당 변호사가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답변하면서 재판은 시작한 지 1시간만인 3시30분께 마무리됐다. 이후 전씨는 3시 40분께 법정을 나와 대기해 놓은 승용차를 타고 앞서 출정 당시 들어왔던 동쪽 후문이 아닌 다른 통로를 통해 법원을 빠져나갔다.

이날 재판은 일반인에게 공개됐지만 질서 유지를 위해 참관 인원을 총 103석으로 제한하고 입석 등은 허용하지 않았다. 법원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법정 보안관리대원 뿐만 아니라 경찰에 기동대 80여명의 지원을 요청하는 등 내외곽 경비를 강화했다.

전씨가 재판을 받는 동안 법원 주변에선 5·18단체와 진보정당 등의 사죄를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졌으며 오후 3시 20분께부터는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많은 비가 내리는 등 궂은 날씨로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연출됐다. 5월 단체와 시민들은 전씨가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법원 주변에 속속 모여들어 참회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라며 피켓시위를 벌였다. 5월 단체는 행여나 전씨가 과격한 행동을 이유로 재판의 관할 이전(서울)을 시도할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소동(?)은 갑자기 엉뚱한 곳에 벌어졌다. 법원 후문 바로 10여m 길 건너편에 있는 광주 동화초등학교 일부 학생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전씨가 법정에 들에 들어가는 장면을 3층 창문을 통해 지켜보며 “전두환 물러가라” 등을 큰 소리로 외쳤다. 이에 일부 시민들은 “광주의 장래가 밝다”“어른들보다 낫다“며 박수를 쳐주며 호응하기도 했다.

 

5월 단체 등 전씨 사죄 촉구 …“빌미주지 말자” 자제 역력

5월 단체와 광주시민들이 전두환 씨가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법원 주변에 모여들어 참회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라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5월 단체와 광주시민들이 전두환 씨가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법원 주변에 모여들어 참회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라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시사저널 정성환
ⓒ시사저널 정성환

5월 단체 등은 전씨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SNS를 통해 “이번만큼은 반드시 전두환의 입을 통해 39년 전 만행을 낱낱이 밝혀 오월영령들의 한을 풀어 드려야한다”며 “오월 어머니들의 힘들이 모아져 5·18역사를 지켜내는 바탕이 됐다. 마침내 전두환을 광주법정에 세우는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조비오 신부의 조카인 조영대 신부는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진실이 덮어질 순 없다. 그가 헬기사격을 명한 장본인이고 주범이라는 사실이 결국 백일하에 드러나게 될 것”이라며 “법정에 서는 동시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해 5·18진상규명에 협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반성이나 사죄 없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더욱 강경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 1988년 열린 5공 청문회에서 전씨에게 ‘발포명령자를 밝혀’라고 외쳤던 정상용 전 국회의원은 “전씨가 사죄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사죄를 할 생각이었다면 재판에 임하기 전에 망월묘역에 가서 사죄를 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광주지법 앞에서 만난 5·18부상자동지회 김일권 간사는 “전씨가 망월묘역에서 ‘사죄드린다’ ‘잘못했다’ 한 마디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김 간사는 “5월 가족들은 전씨와 신군부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인정하고 암매장지를 찾는데 협조하면 용서하겠다고 39년간 수없이 이야기 해왔다”며 “국민과 역사가 알고 있는데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39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고 지적했다.

다소 결이 다른 온건한 목소리도 나온다. 자신도 5·18에 직접 참여했다는 시민 채아무개(63)씨는 “전씨의 남은 생애가 많지 않은 만큼 이참에 털고 갔으면 한다”며 “(전씨가) 어떤 식으로든 진정성있는 사죄를 표하면 광주시민들도 용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자명예훼손 전두환 첫 재판...쟁점은 ‘헬기 사격’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7년 3월 20일 오전 광주 동구 전일빌딩에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당시 계엄군이 헬기 소사한 총탄 자국을 살펴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7년 3월 20일 오전 광주 동구 전일빌딩에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당시 계엄군이 헬기 소사한 총탄 자국을 살펴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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