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인 작가가 말하는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7 15:00
  • 호수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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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남성들을 위한 심리 치유서 펴낸 윤용인 작가
“거침없이 당당하기보다 ‘샤이’한 어른이 돼라”

“인간이 정말 늙는다는 것은 신체의 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감성이 죽었을 때 인간은 늙은 것이라고, 나는 늘 주문처럼 중얼거린다. 사람에 대해, 시대에 대해, 늘 그때그때 아파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대가로 새로움 앞에서 또다시 설렐 수 있는 것. 나는 이것이 정녕 살아 있는 것들의 특권이라고 확신한다.”

공감력 높은 문장으로 독자와 소통하는 작가이자 치유 프로그램 전문 회사 ‘노매드 힐링’의 대표인 윤용인씨가 최근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을 고찰한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을 펴냈다. 이십대 못지않게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잘 다루고 더 팔팔한 정치·사회적 지능과 활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무는 세대로 분류되는 이 시대의 희한한 어른들을 위한 공감적 사유물을 만들고 싶었다던 그는, 지나온 50년에 대한 회한보다 앞으로의 50년에 대한 기대로 설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자고 제안한다.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윤용인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296쪽│1만4000원 ⓒ 위즈덤하우스 제공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윤용인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296쪽│1만4000원 ⓒ 위즈덤하우스 제공

우아한 나이 듦을 위한 반전과 설렘의 기록

“요즘 중년 남성들의 고민은 빠르게 변하는 세대, 문화, 세태 속에서 나름대로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자신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에서 오는 혼란이 가장 클 것이다. 과거에는 50대에 찾아오는 갱년기, 우울증 등의 신체적 변화, 혹은 갑작스러운 명예퇴직 등이 고민이었다면 지금은 우리와 너무 다른 아랫세대라는 외계적이고 낯선 우주와의 대면에서 찾아오는 당혹감이 마음을 힘들게 한다. 내 입장에서는 상식적으로 젊은 직원들과 소통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어떤 대화법이 문제를 일으킨다거나, 아버지로서 어떤 말을 했는데 자식에게 그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등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옳음’에 대한 생각이 빠르게 뒤집어진 데서 느껴지는 혼돈이다.” 

윤 작가는 이번 책을 쓴 시기가 ‘혼돈의 시기’였다고 고백한다. 특정 사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나이 대에 찾아오는 고민 때문이었다. 

“보통 각 나이마다 누군가에 의해 삶을 평가받곤 한다. 10대 때는 선생님이나 부모님, 20대에는 직장 상사나 친구, 30~40대에는 직장 동료 또는 후배들에게 평가를 받는데, 50대가 되면 자녀가 그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굳이 부모의 삶을 평가하려 들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렇게 느껴진다. 이전까진 내가 아이들의 삶을 검토해 주고 있었다면, 이제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는데 그게 자신 없고 불안한 거다.”

윤 작가는 젊은 시절 ‘딴지일보’의 편집장을 지내며 책과 칼럼, 방송을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활 심리의 관점에서 풀어내 왔는데, 나이가 들면서 특히 중장년 남성들의 소통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혼돈에 빠진 중년의 고민을 풀어주려 몇 가지 제안을 하는데, 우선 ‘샤이(shy)한 어른’이 될 것을 주문한다. 

“대다수 젊은 사람들은 타인을 많이 의식하며 사는 것 같다. ‘혹시 나 때문에 누군가가 불편하진 않을까, 내가 폐를 끼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비교적 뻔뻔해져서 행동이나 언행이 거침없어진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을 하거나, 옆에 사람이 가까이 앉아 있는데도 신문을 크게 펼쳐 보는 것처럼. 옛날에는 지하철에서 신문 읽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어떤 사람은 양팔을 크게 벌리고 신문을 펼쳐 본다면 어떤 사람은 16분할로 손바닥만 하게 접어서 보곤 했다. 후자가 ‘샤이한 어른’인 거다. ‘shy’를 대체할 적절한 모국어를 찾지 못했다. 수줍어하자는 것도 아니고 부끄러워하자는 의미도 아니다. 자기 공간을 좁게 쓰고, 자기 존재를 작게 드러내는 것 정도가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shy’함의 형상일 것이다. ‘거침없이 당당하게’라는 자기에게 용기 주기와 남성성의 신화는 가부장적 시대에나 통용됐던 유용함이었으리라. 또는 아직 자기 무기를 갖추지 못하고 미숙했던 젊은 시절에나 처방될 수 있었던 자기최면이었으리라.”


‘나이 먹기’가 아닌 ‘나이 버리기’

윤 작가는 이와 함께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으로 ‘왜’ 그랬는지 이유를 따지기보다 ‘어떻게’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어떻게 하면’ 나아질 수 있을지 과정을 돌아보자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 점유하는 공간을 좀 버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일으키는 소음도 마찬가지고. 평생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많이 애써 왔으니 나이를 먹으면 거꾸로 그 존재감을 축소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소심하고, 조금 더 부끄러움을 탄다면 훨씬 우아해질 수 있지 않을까. 또,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은 깊어지며 마음은 넓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어떤 철학이나 사상, 이념이나 가치보다 개인들의 사소한 사정을 더 중히 여기고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갖고 싶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러면서 윤 작가는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 같은데 인생의 어느 순간, 고립과 혼돈에 빠져버린 중년들에게 ‘내일 일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삶의 반전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전한다. 그는 말년의 양식을 위한 10개의 자기 수칙 중 첫 번째로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먼저 구상하라고 한다. 늘어가는 나이에 대한 생각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흔히 나이를 ‘먹는다’고 하는 표현을 바꿔보면 어떨까 싶다. 언어를 바꾸면 우리의 인식도 변하니까. 예를 들어 태어날 때 카드를 85장 가지고 태어난다고 보자. 해가 지날 때마다 우리는 그 카드를 한 장씩 버려야 한다. 그러면 몇 살이냐고 물어왔을 때 ‘53살 먹었다’가 아니라 ‘53장 버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결국 모든 카드를 다 버리면 내 삶은 끝나는 거다. 그렇다면 카드 한 장을 내놓을 때마다 얼마나 아깝겠는가. ‘먹는다’는 말에는 아까움에 대한 의미가 없다. 배불러서 더 먹기 싫은데도 꼭 먹어야 하고. 하지만 버린다는 것에는 자기 의지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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