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에 들어서는 ‘버닝썬’…경찰 등 권력기관 유착관계가 본질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3.15 14:39
  • 호수 15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예계 가십으로 희석시키지 말라” 경계 목소리

그룹 빅뱅의 멤버였던 승리에서 촉발된 이른바 ‘버닝썬 사태’가 본격적인 ‘게이트’로 비화하고 있다. 밤의 무대 이면에서 펼쳐지는 성(性)·마약·폭력·탈세 등을 둘러싸고 권력기관인 경찰과 국세청이 개입된 정황이 확인됐고, SNS 등을 통해 정·관·재계 인사들의 이름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사태가 날로 확산되자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2016년 가수 정준영이 여성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기소됐을 때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을 빗대어 “검찰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란 불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정준영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내용을 제보한 관계자가 경찰을 믿을 수 없어 국민권익위에 제보한 사실은 권력기관에 대한 불신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향후 게이트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 경찰과 국세청은 큰 내홍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승리와 정준영 등이 포함된 단톡방을 통해 경찰이 유흥업소와 연예인의 뒤를 봐준 듯한 정황이 포착됐다. 국세청 또한 유흥업소의 탈세 혐의를 ‘봐주기’ 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경찰은 이번 사건으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던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도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다.

ⓒ 일러스트 신춘성
ⓒ 일러스트 신춘성

연예인 단톡방에 등장하는 경찰들

지난해 11월 강남 유명 클럽 내 단순 폭행 사건으로 시작했던 버닝썬 사태는 유흥업소와 유착된 경찰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실제 서울 광역수사대는 수사 과정에서 강남경찰서 소속 전 경찰관과 버닝썬의 유착 정황을 포착했다. 미성년자가 이 클럽에 출입한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버닝썬 공동대표 이문호씨가 전직 경찰 강아무개씨의 부하직원인 A씨에게 2000만원을 건넨 증거가 발견된 것이다. 이 돈이 강남경찰서 경제팀 경찰관 2명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지만 해당 관련자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유착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승리와 정준영 등이 참여했던 단톡방이 공익제보 형식으로 공개된 가운데, 대화방에서 고위급 경찰이 일부 연예인과 사업가의 뒤를 봐준다는 식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드러났다. 공개된 대화방 내용에 따르면, 대화방 참여자 한 명이 ‘옆 업소가 우리 업소 내부 사진을 찍었는데 경찰총장이 걱정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 총수의 공식 명칭이 ‘경찰청장’이라 여기서 말하는 경찰총장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경찰 고위급 인사까지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에 대한 ‘불신론’이 더 거세졌다.

여기에 같은 대화방에 참여 중이던 FT아일랜드 최종훈도 경찰과의 유착 관계가 의심되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훈은 지난 2016년 3월 다른 가수의 음주운전 적발 기사를 단체대화방에 올리며 “난 다행히 XX형 은혜 덕분에 살았다”며 경찰이 뒤를 봐줬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에 승리는 “다음 음주운전은 막아줄 거란 생각 말아라. XX형이 자기 돈 써서 입 막아줬더니”라고 말해 사건 당시 부적절한 거래가 있었음을 드러냈다. 

버닝썬에서 시작된 유착 논란은 경찰을 넘어 국세청까지 번졌다. 버닝썬과 함께 강남 일대 대형 클럽으로 손꼽히는 아레나의 탈세 혐의를 최근 경찰이 포착했는데 서울지방국세청이 이를 묵인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해 11월 국세청이 아레나의 탈세와 관련해 사장단 6명을 조세범 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는데 당시 아레나의 실소유주인 강아무개씨를 제외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3월8일 서울지방국세청을 압수수색했다.

국내 사정의 핵심 축인 경찰과 국세청이 유흥업소와 연예인의 일탈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 봐줬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공정한 사회’를 약속했던 청와대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3월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72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며 “이제까지의 수사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불법촬영한 영상을 유포하는 등 인격을 말살하는 반인륜적 범죄마저 버젓이 저질러졌다”며 “일부 연예인과 부유층의 일탈이 충격적이다. 경찰은 끝까지 추적해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이어 “국세청 등 관계기관도 유사한 유흥업소 등이 적법하게 세금을 내고 정상적으로 운영하는지 철저히 점검해 의법조치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 총리가 국세청을 지목해 유흥업소 등의 탈세 의법조치를 주문한 것은 이달 초 경찰청에 대한 강한 지적에 이은 두 번째 개별기관 수사지휘다. 


첨예한 검경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국민권익위가 검찰에 수사의뢰한 승리의 성접대 의혹과 경찰 유착 의혹에 관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된 것으로 확인됐다. 권익위가 검찰에 넘긴 내부 검토보고서에는 승리의 성접대 정황과 정준영이 무단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유포한 정황은 물론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의혹을 짐작하게 하는 정황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직접 수사에 착수할 경우 검경 수사권 조정을 두고 깊어진 검경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급해진 민갑룡 경찰청장은 3월14일 오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 참석해 “전국적으로 종합적 수사·감찰 체제를 확대해 강남 클럽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유사 업체에 대해서도 마약·성폭력·불법촬영물·경찰관 유착에 대한 대대적이고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하고 부조리 행위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밝혔다. 민 청장은 이어 “경찰은 국민 요구와 바람을 가슴 깊이 명심하고 경찰의 명운이 걸렸다는 자세로 전 경찰 역량을 투입해 범죄와 불법을 조장하는 반사회적 풍토를 철저히 뿌리 뽑아 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준영 사건이 불거진 이후 동영상에 등장하는 상대 여성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이 SNS에서 떠도는 등 사안이 연예계 이슈로 옮겨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건의 본질은 유흥업소와 권력기관의 유착관계인데도 대중의 관심을 연예계 가십거리로 희석시키려 한다는 의심이 그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