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숙련된 뻔뻔함과 그 조력자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1 09:00
  • 호수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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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이 대세인 시대임에도 주변에는 여전히 SNS(사회 관계망 서비스)와 담을 쌓은 채 지내는 이가 적지 않다. 그들은 대부분 득실을 따졌을 때 SNS를 멀리하는 편이 자신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해 기피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영국의 유명한 축구 감독은 소셜미디어를 ‘인생의 낭비’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과도한 SNS 활동으로 인한 폐해는 최근 지명된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시절 그가 SNS에 남긴 숱한 독설들이 그 자신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바뀌었다. 

SNS에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우리는 모두 거대한 정보의 관계망 속에서 살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로 ‘TMI(Too Much Information)’의 시대다. TMI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는 유익한 말이나 정보는 오히려 많을수록 좋아 권장할 만하다. 하지만 사회 시스템을 비웃듯 함부로 교류되는 저급한 욕망이나 반사회적인 정보들이 부도덕의 카르텔 속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기승을 부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왜곡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 최근 온 사회를 발칵 뒤집은 ‘버닝썬’ 사건이다.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적으로 촬영·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가수 정준영과 버닝썬 MD 김모씨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2019년3월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성관계 동영상을 불법적으로 촬영·유포한 혐의로 구속된 가수 정준영과 버닝썬 MD 김모씨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2019년3월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사건 속의 인물들은 그들이 단체 채팅방에 남긴 말들을 두고 단순한 허세·허풍의 표현이거나 가벼운 농담이었다고 변명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어줄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 중 한 명이 몇 해 전 비슷한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으러 가기에 앞서 했다는 “죄송한 척하고 올게”라는 말이나, 또 다른 당사자가 자신이 운영한 사업장과 관련해 남긴 “불법으로 제재하기 애매해서 다들 그냥 쉬쉬한다. 우리도 별문제 없다는 말이다. 단속 뜨면 돈 좀 더 찔러주고”라는 말이 과연 허풍이나 농담으로 쉽게 얼버무려질 수 있을 만큼 사소한 언사일까.

이번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스스로의 언행에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질 나쁜 연기로 대중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는 뻔뻔함과, 돈과 권력을 앞세우면 어떤 편법·불법도 다 무마될 수 있다는 파렴치한 인식이 너무나 놀랍고 황당할 따름이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내던져지는 ‘아무 말’ ‘아무 행동’, 그 불편하고 불량한 TMI들은 그대로 우리 사회에 엄청난 독소가 되어 남겨진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버닝썬 수사에 경찰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이번에도 조직에 파고든 비리의 얼룩들을 읍참마속의 각오로 철저하게 털어내지 못하고 돌아선다면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부도덕의 카르텔들은 기고만장해져 더 거침없이 세력을 넓혀갈 것이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권력형 비리 수사가 매번 거대한 벽을 넘어서지 못한 채 변죽만 울리다 고꾸라지곤 했던 ‘삼류 사회’의 고질을 이번에는 반드시 털어내야 한다. 그것만이 뻔뻔한 그들과 그 조력자들이 더는 우리 사회에서 활개 치지 못하도록 할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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