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배구단 연고지 이전’, 헛물 켠 광주시
  • 광주=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19.04.0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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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냐 이전이냐” 고민하던 한전, 수원에 잔류 결정
선수단 경기력·경기장 훈련 여건 등 종합적으로 고려
광주시, 연고지 기습 결정 규탄…“지역 상생발전 외면“

광주시의 남자프로배구 한국전력 빅스톰 배구단 광주 이전 노력이 결국 헛발질로 끝났다. 연고지 광주 이전과 수원 잔류를 놓고 고민하던 한전 배구단이 수원에 남기로 결정하면서다. 한국전력 배구단 관계자는 7일 한국전력의 연고지가 수원으로 결정됐다고 전했다. 한전 배구단은 체육관 시설, 관중 동원능력, 경기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해 기존 연고지인 수원과 3년 재계약을 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경기도 의왕시 한전 배구단 전용체육관을 찾아 선수들에게 구애하고 돌아온 지 딱 이틀 만이다. 광주시가 될 성 싶지 않은 유치에 매달리면서 헛심만 썼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용섭 광주시장(가운데)이 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한전배구단 전용체육관을 찾아 선수단과 면담에 앞서 이호평 한전 관리본부장, 공정배 선수단장과 체육관을 둘러보고 있다. ⓒ광주시
이용섭 광주시장(가운데)이 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한전배구단 전용체육관을 찾아 선수단과 면담에 앞서 이호평 한전 관리본부장, 공정배 선수단장과 체육관을 둘러보고 있다. ⓒ광주시

한전배구단, 수원과 기습 재계약…3번째 ‘물 먹은’ 광주시

광주시가 한전 배구단 유치에 실패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4년과 2016년에 이어 3번째다. 시는 한국전력 본사가 2014년 말 전남 나주 빛가람혁신도시로 이전한 후 지역사회, 정치권과 함께 한전 배구단의 광주 이전을 원했다. 하지만 ‘긴 이동거리로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없다’는 등의 반대논리에 부딪혀 번번이 유치에 실패했다. 

앞서 3년 전에 실패한 뒤 시와 광주시배구협회는 물론 지역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이번만큼은 유치에 자신감을 보여 왔다. 한전 측과 다각도로 협상을 벌여 반드시 연고지를 광주로 옮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시는 한전 배구단 연고지 광주이전을 한전 측에 간절히 요청하고, 배구팀 유치의향서 제출과 시민서명운동 등 분위기 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최고 수준의 경기장과 훈련장, 숙박시설, 처우개선 등 선수단 사기진작을 위한 파격적인 예산 지원방안도 제시했다. 시청 문화관광체육실 체육진흥과에 ‘한전 배구단 광주 이전 업무’를 담당하는 주무관까지 두고 배구단 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용섭 시장의 의지 또한 굳건했다. 한전 배구단이 연고지 이전 여부를 위한 검토 절차에 들어가자 이 시장은 당사자인 선수들에게 연고지 이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설명하기 위해 지난 3일 오전 직접 의왕시 한전 배구단 전용체육관을 찾아 선수단과 면담했다. 

 

자존심 구긴 광주시…한전 5일 카톡으로 광주시에 일방 통보

하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전 배구단의 ‘기습’으로 광주시는 고개를 떨궜다. 한전 측은 5일 철통보완 속에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해외 출장 중이던 김종갑 한전사장이 강원도 고성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서 일정을 앞당겨 이날 오후 급거 귀국했고, 배구단 실무진은 이틈을 타 사장 결재를 받은 뒤 수원시청까지 직접 찾아가 2시간여만에 재협약을 체결했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에서 광주시는 수원과의 재협약 체결 소식을 공식적인 절차도 아닌 카카오톡 메신저로 통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자존심마저 구겼다. 한전 출신인 임대환 시 투자유치협력관은 한전 결정에 대한 반발과 유치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실망감이 컸던 탓인지 광주시의 비판 수위는 높았다. 시는 한전 배구단 수원 잔류 결정이 알려지자 7일 김옥조 대변인 명의의 성명서를 내 한국전력을 성토했다. 시는 성명서 첫줄에서 짧고 굵게 사태의 핵심을 짚었다. “최근 한국전력의 지역상생발전 외면과 지역민에 대한 무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전 배구단 유치에 나섰다가 ‘헛물’을 켜자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광주시, 본사 겨냥 ”한전, 지역민 무시 도 넘어“ 격분 

이용섭 광주시장이 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한전배구단을 찾아 선수단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광주시
이용섭 광주시장이 3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한전배구단을 찾아 선수단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광주시

광주시는 전격적인 결정에도 분격했다. “한국전력은 수원과의 연고지 협약이 4월말에 끝남에도 불구하고 광주시와 정상적인 협의절차를 무시한 채 지난 5일 짜여진 각본처럼 기습적으로 수원시와 재협약을 체결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그것도 이용섭 광주시장이 경기도 의왕까지 가서 선수들에게 연고지 이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설명하고 돌아온 지 이틀 만에 철저한 보안 속에 전격적으로 단행했다”고 성토했다. 시는 “이는 150만 광주시민의 간절한 열망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정신과도 배치되는 것으로 프로팀 동일지역 존치라는 순리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작 광주시청 안팎에선 시의 어설픈 행정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시가 한전 배구단 측이 직간접적으로 이전불가 의중을 밝혔음에도 연고 이전에 매달려 기대감만 키웠다는 것이다. 광주시의 실책에는 결정적 정보력 부족과 안이한 기대감, 적절한 대응 능력 부재가 주 원인으로 꼽힌다. 

시는 기습적으로 협약을 체결했다고 하나 한전 경영진은 이미 내부적으로 수원에 연고지 잔류를 결정한 뒤였다. 한전 배구단의 광주에 이전 불가 전조는 있었다. 한전 측은 줄곧 “광주 이전 계획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한국전력 배구단 관계자는 지난달 13일 ‘광주 이전설’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선수단의 이동 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재로선 이전을 검토하지 않고 있는 단계”라며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다.

더욱이 이용섭 시장은 협약이 체결된 지 사흘이나 지난 8일에야 배구단 유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한전 사장 등 임원진과의 면담이 예정돼 있었다. 이는 광주시의 정보력 부재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광주시 어설픈 행정 도마…“유감 성명까지 내며 열 올릴 일이냐” 

한전이 수원 연고지를 고수하게 된 것은 지역균형발전, 시대적 순리 등 대외적인 거대 담론보다 경기력 등 현실적 분석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수도권 밖 연고지 이전 반대 배경에는 ‘긴 이동 거리와 경기력 저하’ 등에 대한 우려감이 크게 작용했다. 게다가 하위권을 맴돌 때도 아낌없이 응원해준 수원 팬들에 대한 의리도 수원 잔류로 돌아서게 한 요인이라는 게 배구계 분석이다. 결국 광주시가 이 같은 한전 배구단의 속내를 꿰뚫어보지 못한 셈이다. 

‘쓴맛을 본’ 광주시가 앙갚음이라도 하듯 비난전에 나서자 성숙하지 못한 태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평소 기업유치와 상생을 강조해온 광주시가 한전의 마음을 얻는데 부족했다고 반성하기는커녕 유감 성명까지 내며 열을 올리는 것 자체가 납득키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전 배구단 연고지 문제는 배구단의 성공과 프로배구 발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한국전력이 선택할 문제라는 것이다.

시민 조현민(39)씨는 “한전과 광주시 모두 잘못이 있어 보이긴 하나, 그렇다하더라도 시가 어설프게 한전 배구단을 유치한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헛물을 켜자 모기업에 몰매를 가하는 옹졸한 ‘유치 행정’을 하고 있다”며 “이는 그저 실패 자체에만 몰두한 나머지 분노를 이기지 못한 생떼에 가깝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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