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독일 인종차별·성차별 광고 방영 재고해달라” 공식 항의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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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남성 땀냄새에 황홀' 광고에 뿔난 현지 한인·일본인의 요청 이어져
국가 대변하는 대사관·문화원이 민간 기업에 항의한 건 이례적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주독 일본대사관이 아시아 여성에 대한 인종차별적·성차별적 내용을 담은 광고를 내보낸 독일 기업 호른바흐사(社)에 서신을 보낸 사실이 현지시각 4월 9일 공식 확인됐다.

지난 4월6일부터 트위터에는 “일본 대사관에 문의했더니 ‘항의가 이어져 호른바흐사에 광고 방영을 재고해달라는 서신을 보냈다’는 정보가 떠돌았다. 주독 일본대사관은 4월 9일 시사저널의 문의에 “해당 광고 영상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의견을 보내주셔서 대사관은 이 광고의 전송을 재고달라는 이 분들의 바람을 호른바흐사 측에 전달했다”고 확인했다. 

같은 날 주독 한국문화원 역시 호른바흐에 서한을 보내고 문제가 된 광고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해달라”고 촉구했다. 한국문화원은 서한에 “아무리 기업광고의 일차적 목표가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이라도 내용이 특정 인종이나 여성에게 혐오와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정당화될 수 없다”며 “한국 교민들은 귀사의 광고가 아시아계 여성들을 비하하고 폄하해 독일 사회에 아시아계 여성들에 대한 잘못된 성의식을 조장하고 독일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적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매우 불쾌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호른바흐사 유튜브 광고 영상 캡처
독일 호른바흐사 유튜브 광고 영상 캡처

 

"우리는 호른바흐 당했다" 독일 현지 해시태그·서명운동 물결

호른바흐사의 봄철 캠페인인 “이게 봄내음이지”는 아시아 여성을 비하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상업적 목적을 위해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특히 지난 3월25일 온라인상에서 해시태그 캠페인(#Ich_wurde_geHORNBACHt, 우리는 호른바흐 당했다)이 시작되고, 이어서 3월 27일 광고 중단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시작되면서 호른바흐사는 아시아 지역뿐 아니라 독일, 영국, 싱가포르, 우크라이나 등 세계 곳곳에서 비난을 받았다. 이 서명운동은 시작 13일만인 4월9일 현재 참여자수 3만6000명을 돌파했다.

노이즈 마케팅이 기업 이미지 악화로 이어질 조짐이 보이자 호른바흐사는 진화에 나섰다. 호른바흐사는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지난 3월28일 공청회 개최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당초 약속과 달리 회사 측이 촉박한 일정으로 일방적으로 공청회 장소와 시간을 통보했다. 그 결과 평일인 4월 1일, 인구 1200명 규모의 시골 마을인 보른하임 바이 란다우의 본사에서 열린 공청회에는 한국 여성 2명과 독일 여성 1명 등 3명만이 참석할 수 있었다.

참석자들 중 신원이 확인된 두 명의 한국 여성은 항의 캠페인 측과의 인터뷰에서 “호른바흐사가 공청회에서 비판을 받아들이고 광고를 중단할 것 같은 인상을 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호른바흐사는 다음 날인 4월 2일 “우리 회사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시켰으며, 따라서 광고를 계속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FAZ, taz 등 독일 유력 일간지들은 이 소식을 다루면서 호른바흐사가 “아시아인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과 광고를 계속한다는 행동이 모순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독일 호른바흐사 유튜브 광고 영상 캡처
독일 호른바흐사 유튜브 광고 영상 캡처

국가를 대변하는 대사관이 민간 기업의 광고 활동에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 대사관이 이 같은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호른바흐사 측의 입장표명 이후 재독 일본계 시민들이 분노하여 대사관의 개입을 요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일본 트위터에는 이미 4월6일부터 대사관의 답장을 찍은 사진이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공식적인 경로로 이 같은 항의 사실을 확인받은 것은 한국 매체로는 시사저널이 처음이다.

이어 현지시각 4월9일 오후부터 광고 반대 캠페인의 비공개 페이스북 그룹에는 곧 주독 한국 대사관과 베를린 주재 한국 문화원에서도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가 퍼졌다. 그리고 이내 심각한 상황을 인지한 한국 문화원에서 호른바흐에 서한을 보내 문제의 광고에 대한 강한 유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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