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 “막장이라고요? 현실은 더하지 않나요”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3 09:00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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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래 풍상씨》로 국민 맏형 된 유준상

KBS 수목극 《왜그래 풍상씨》가 최고시청률 22.7%(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최근 막을 내렸다. 그 성공의 중심에는 ‘드라마 사상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맏형 캐릭터’ 타이틀롤 풍상씨, 유준상이 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국민 남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면, 《왜그래 풍상씨》를 통해 ‘국민 맏형’이 된 것이다. 
《왜그래 풍상씨》는 동생 바보로 살아온 중년 남자 풍상씨와 등골 브레이커 동생들의 아드레날린 솟구치는 일상과 사건·

사고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다. 유준상은 극 중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무너지면 내 동생들 다 죽는다’고 생각한 채 앞만 보고 달려온 이풍상 역을 맡아 열연했다.  

ⓒ 나무엑터스
ⓒ 나무엑터스

‘인생작’이라는 평가다. 

“촬영 초반에 스태프들이 제 인생작이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짧은 시간 안에 찍어야 하는 미니시리즈가 어떻게 인생작이 될까 싶었는데 마지막 회를 촬영하면서 그 말이 뭔지 알겠더라고요. 개인적으로도 반백 살에서 새로운 한 살로 넘어가는 시점에 촬영을 했던 터라 의미 있는 작품이었죠. 방대한 가족극을 녹여낸 미니시리즈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배운 점이 많았어요.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문영남 작가와의 대본 연습도 혹독했다고 들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어요. 문 작가님이 제게 ‘이번 역할, 파란만장하니 각오하라’고 엄포를 놓은 상태여서 긴장하고 있었죠. 첫 리딩을 하고 나서는 ‘풍상아, 이러면 안 된다. 나랑 만나자’고 하시는 거예요. 저의 부족함을 느껴서 아찔했어요. 이후부터 죽어라 연습했습니다. 촬영을 마치고 문 작가에게 따로 방과 후 수업을 받았을 정도예요. 연습을 치열하게 했기 때문에 첫 세트 촬영에서 12페이지 분량을 NG 없이 끝냈어요. 스태프들이 동시에 박수를 쳐주셨어요.”

동생들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역할이다. 

“답답하다는 분들도 있었지만 저는 풍상이한테 온전히 빠져 있어서 몰랐어요. 풍상이가 욕을 먹는다고 하기에 ‘왜?’라고 반문했을 정도예요. 그만큼 풍상이의 선택이 다 이해가 됐어요. 무엇보다 저는 문 작가님이 치밀하게 구성해 놓은 대본을 믿었어요.”

막장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일일이 다 신경 쓰면 사실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어요. 많은 분들이 ‘어떻게 저런 일이 다 생겨’라고 말할 때마다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지 않나’라고 반문했어요.” 

‘드라마 사상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린 맏형 캐릭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동생들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그 감정이 나올 수 있게끔 작가님이 정교하게 대본을 써주신 덕분이죠. 그리고 사실 제가 눈물이 많아요. 특히 공연할 때 너무 많이 우는데, 눈물을 너무 흘려서 눈물이 안 나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쓴 연주곡도 있을 정도예요.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았다니까요. 의사 선생님이 앞으로 10년 이상 걱정 없을 거라고 했답니다(웃음).”

제작발표회 때 카센터 직원 복장에 손톱에는 검은 칠까지 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정장을 멋지게 입고 와서 이 역할을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극 중 카센터를 운영하며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산전수전 다 겪는 이풍상을 잘 차려입은 상태에서 도저히 말할 수 없겠더라고요. 드라마를 찍으면서도 입고 나오는 옷가지 수를 최소한으로 줄였어요. 극 중 암 선고를 받게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는 다이어트를 심각하게 하기도 했지요. 그만큼 몰입이 됐어요.”

가족드라마다. 촬영하면서 느낀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사고만 치던 동생들과 희생하는 자신을 이해하길 강요했던 풍상이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 화합하죠. 풍상이가 동생들에게 ‘나 좋자고 했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게 우리 드라마의 ‘핵심’이었던 것 같아요.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잖아요. 풍상이는 동생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죠. 오해가 풀리자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던 가족에게 평화가 찾아오고, 더욱 결속하는 계기가 됐죠.”

쉰한 살이 됐다. 나이를 의식하나. 

“최근 뉴욕에서 60대 남자 배우가 나오는 연극을 봤어요. 그가 무대에서 걸어 나오는 순간 ‘우와, 나도 저렇게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느낀 게 많았어요. 나이가 들수록 연기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후 계획은. 

“곧바로 뮤지컬 《그날들》로 무대에 오릅니다. 사실 저의 시작은 무대예요. 20년 넘게 연극을 했지만 무대의 소중함과 관객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죠. 제 연기를 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제겐 큰 힘이 됩니다.”

체력적으로 힘들 텐데 공연을 많이 하는 이유가 있나.

“20년 넘는 시간 동안 무대에 섰고, 아마 70살이 돼도 뮤지컬을 할 것 같아요. 특히 인간의 깊이를 다루는 창작극은 제가 놓칠 수 없는 부분이죠. 공연은 1~2년 전에 캐스팅이 완료되기 때문에 공연 시간에 맞춰 드라마를 찍는 편이에요. 무대에서 배우는 게 많고, 에너지를 만드는 것 같아요. 안주하려고 하지 않고 나태함과 싸우는 편이에요. 어제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오늘 또 받을 거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연예계 대표적인 ‘열정 부자’다.

“4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자는 시간이 아까워요. 타고나길 안주하기 싫어하는 성미죠. 1년에 1권씩 일기를 쓰는데 훗날 쌓인 일기를 보며 느끼는 바가 많아요. 연극이나 뮤지컬을 할 때도 1막 끝나고 기록을 남기기도 하죠. 기록으로 남겨야 나중에 돌이켜볼 수 있잖아요. 저 자신에 대해 곱씹어보는 시간들이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포상휴가 때 출연진 참여율이 역대급으로 높았다고 들었다. 

“100여 명이 넘는 전체 스태프와 함께하기 위해 부산을 선택했어요. 많은 인원이 함께한 게 큰 의미가 있어요. 술집에서 OST 《나는 행복한 사람》이 나오면 떼창을 하며 즐겼어요.”

이번 작품을 어떻게 기억하나. 

“극 중 풍상이가 지혜로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건데, 풍상이는 그걸 깨달아 변할 수 있었죠. 이렇게 힘든 상황을 재밌는 설정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여줬다는 건 좋은 경험이었어요. 참 감사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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