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손흥민’ 콩푸엉…K리그에 열광하는 베트남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14 10:00
  • 호수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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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푸엉, 자국 국민들 시선 한국 리그로 쏠리게 해 ‘축구 한류’ 일으킨다

대한민국 프리미어리거 1호 박지성의 영향력은 그라운드 안팎에서 대단했다. 세계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에서 주전급 선수로 활약하며 그라운드 위에서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 전술의 숨은 열쇠 역할을 했다. 기량을 인정받자 그로 인한 스포츠 콘텐츠와 비즈니스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박지성을 비롯한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를 보려는 주말 저녁 각 가정의 채널을 붙잡은 프리미어리그 중계권은 재계약 때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았다. 금호타이어·서울시 등 한국 스폰서들이 맨유에 지불하는 금액만 연간 70억원으로 박지성의 연봉을 감당하고 남았다.

3월3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19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인천 콩푸엉이 드리블하고 있다. ⓒ 뉴스1
3월3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19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에서 인천 콩푸엉이 드리블하고 있다. ⓒ 뉴스1

 

K리그에서 주목받는 ‘베트남 시장’

이러한 성공 모델은 만년 적자투성이인 한국 프로축구 K리그에 해외진출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경기력 하나만 보고 영입하는 말 그대로 ‘용병’인 외국인 선수에게 비용만 들이는 게 아니라, 그들을 통해 파생되는 효과를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달리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인 K리그가 어필할 수 있는 지역은 많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K리그가 공략할 수 있는 시장은 동남아시아다. 빠른 경제성장과 많은 인구로 상업적 잠재력이 높다. 무엇보다 유럽 진출을 꿈꾸기 어려운 동남아 선수들의 현실적 기량의 문제를 역이용할 수 있다. K리그 혹은 일본 J리그 팀에 입단하는 것이 명예로운 진출 혹은 도전이라는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K리그가 주목하고 있는 나라는 베트남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최근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경제적 교류 규모에서 정부의 신남방정책 중심에 있는 데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영향력이 크다. 2017년 부임 후 베트남 축구사를 잇달아 새로 쓰는 박 감독의 존재로 양국의 거리감은 모든 영역에서 가까워지는 중이다. 

2016년 K리그에 첫 번째 베트남 선수가 왔다. 각급 대표팀의 중심으로 활약한 미드필더 르엉쑤언쯔엉(등록명 쯔엉)이었다.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첫 시즌을 보낸 쯔엉은 2017년 강원FC 유니폼으로 갈아입었지만 2년간 6경기 출전에 그쳤다. 마케팅 효과는 분명했지만, 몸싸움 등 피지컬 능력에서 아쉽다는 평가였고, 결국 쯔엉은 큰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K리그를 떠났다.

2019년 K리그는 또 한 명의 베트남 선수를 영입했다. 국가대표 공격수 응우옌콩푸엉(등록명 콩푸엉)이다. 지난 1월 아시안컵에서 8강에 진출하는 새 역사를 쓴 박항서 감독은 대표팀의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해선 주축 선수들이 해외에 나가 더 높은 수준의 축구를 경험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 결과 다수의 선수들이 유럽과 아시아의 수준 높은 무대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시안컵에서 2골을 기록하며 간판 공격수로 활약한 콩푸엉의 선택은 인천이었다. 

콩푸엉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슈퍼스타다. 과거의 쯔엉이나  박항서 감독의 황태자로 유명한 꽝하이와도 비교를 불허한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시그니처 ‘CR7’처럼 그에게도 ‘CP23’이라는 시그니처가 있다. 박항서 감독의 에이전트이자 콩푸엉의 한국 진출을 이끈 이동준 DJ매니지먼트 대표는 “한국으로 치면 손흥민 선수에 해당하는 위상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 감독의 영향도 크지만, 콩푸엉의 한국 진출과 인천 입단식은 베트남 현지에서 굉장한 화제가 됐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왼쪽)이 2월14일 인천 송도호텔에서 열린 ‘베트남 국가대표축구선수 응우옌콩푸엉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식’에서 콩푸엉을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왼쪽)이 2월14일 인천 송도호텔에서 열린 ‘베트남 국가대표축구선수 응우옌콩푸엉 인천 유나이티드 입단식’에서 콩푸엉을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콩푸엉은 ‘베트남의 손흥민’이다”

현재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베트남의 국가적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이미 다수의 베트남 언론들이 취재를 위해 인천을 다녀갔다. 인천구단의 공식 SNS는 한국어보다 베트남어가 압도적이다. 인천 홍보팀 관계자는 “콩푸엉이 출전하지 못할 때는 험한 댓글도 많지만 그것도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박지성·손흥민 선수가 출전하지 못할 때 한국 팬들이 보이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구단이 피부로 느끼는 변화는 더 크다. 토트넘 홈경기에 손흥민을 응원하는 한국 팬들의 태극기처럼, 금성홍기를 두르고 인천축구전용구장을 찾는 베트남 팬들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다. 인천구단은 “개막전 때도 수백 명의 베트남 팬들이 몰렸다. 그 경기에 결장했는데도 2라운드의 두 배가 넘는 팬들이 왔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베트남 유학생, 근로자, 관광객 등 다양한 층이 몰려든다. 

프로축구연맹도 콩푸엉의 인기에 놀랐다. 베트남 현지 불법 중계를 막기 위해 연맹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중계가 시작되기도 전에 몰려든 베트남 팬들로 인해 5만 명을 감당할 수 있는 서버가 다운되고 말았다. 2년 사이 베트남 축구와 대표팀 선수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소비 환경이 진화하며 생긴 변화다. 

국내 기업들은 콩푸엉을 징검다리로 베트남 스포츠 콘텐츠 시장에 진출했다. 네이버는 글로벌 동영상 플랫폼인 ‘V LIVE’를 통해 개설한 ‘V SPORTS’로 인천 경기를 현지에 중계하고 있다. 지난 3일 첫 중계는 누적 재생이 32만을 돌파했다. 좋아요 31만에 댓글은 3000개 이상 달렸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나 축구 A매치에 비견되는 숫자다. 현재는 스트리밍을 통한 중계 상황이지만 올 하반기에는 TV 중계를 위한 계약도 추진 중이다. 베트남에 진출한, 혹은 진출을 준비하는 국내 기업들도 콩푸엉 효과를 위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콩푸엉의 가능성은 높다. 3년 전 쯔엉에 비해 경기력도 더 뛰어나 6라운드를 마친 현재 5경기에 출전했다. 그중 선발 출전이 두 차례고, 풀타임도 한 번 있다. 인천의 안데르센 감독은 “팀과 한국 축구에 대한 적응이 된 모습이다. 연습경기에서 보여주는 좋은 경기력이 실전에서 다 못 나와 아쉬울 정도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패스와 슛으로 번뜩이는 모습은 한국에서도 관심이 크다. 콩푸엉의 데뷔골이 터지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포츠를 통한 새로운 한류가 베트남을 중심으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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