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태 “부드럽지만 위협적인 악역 표현하고 싶었다”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4.27 12:00
  • 호수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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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에 이어 《이몽》으로 안방극장 돌아오는 유지태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장르와 캐릭터를 불문하고 급이 다른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유지태. 최근 개봉한 영화 《돈》에서는 전매특허인 악역을 연기해 호평을 받았다. 《돈》은 제목처럼 돈을 둘러싼 류준열-유지태-조우진의 팽팽한 트라이앵글과 빠른 속도감, 예측불허의 전개로 개봉 후 박스오피스 1위는 물론, 국내외 신작들의 거센 공세에도 흥행 역주행을 기록했다. 부자가 되고 싶었던 신입 주식 브로커 ‘일현(류준열)’이 베일에 싸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게 된 후 엄청난 거액을 건 작전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의 조감독을 거친 박누리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유지태는 MBC 특별기획 《이몽》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으로 변신해 단호하고 냉철한 눈빛과 몸을 사리지 않는 액션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몽》은 일제 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일본인 손에 자란 조선인 의사 이영진과 무장한 비밀결사 의열단장 김원봉이 펼치는 첩보 액션 드라마로 유지태를 비롯해 이요원, 임주환, 남규리 등이 출연한다. 《사임당 빛의 일기》 《태왕사신기》 등을 연출한 윤상호 감독, 《아이리스》 시리즈를 집필한 조규원 작가가 의기투합한 2019년 5월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 쇼박스
ⓒ 쇼박스

《꾼》(2017) 이후 《돈》으로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컴백했다. 

“그동안 작품들을 조금 디테일하게 봐왔어요. 좋은 작품으로 찾아가고픈 욕심이 컸거든요. 영화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시나리오를 보고 두 번째가 배우, 그리고 스태프를 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맡은 ‘번호표’라는 캐릭터가 참 멋있게 느껴졌어요. 한번 해 볼 만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 참여하게 됐지요. 《돈》은 개인적으로도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돼 개봉 전부터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극 중 캐릭터 이름이 독특하다. 스스로 정의한 ‘번호표’라는 캐릭터는 어떤 사람인가.

“브로커들이 번호표를 뽑아서 기다릴 정도로 큰돈을 만들어주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에요. 작전 설계자라고 하죠. 영화 제목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어서 더 매혹적인, 돈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지요. 돈은 잘 쓰면 그 어떤 것보다도 선한 영향을 끼치지만 잘못 쓰면 악해지고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해요. 그 양면성을 잘 표현한 캐릭터예요.”

‘번호표’라는 캐릭터는 감정이 1도 없는 냉혈한이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아마도 연기자들은 대부분 그럴 거예요. 감정을 시원하게 표출해야 ‘연기를 좀 했다’라고 생각할 때가 있거든요. 한데 저는 절제하는 연기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그 연기를 조금 고급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제 연기가 감독님이나 제작진들이 생각한 연기와 일맥상통하는지를 생각하는 편이에요. 배우와 감독은 영화 현장에서 부부 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감독님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최대한 잘 그려내는 게 배우의 역할이죠. 제 감정과 욕심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전작에서 보여줬던 악역들과 어떤 점이 다른가. 

“그동안 영화를 20여 편 했어요.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악역 캐릭터가 몇 개 있었죠.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요.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도 그 부분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했고요. 악역이지만 새로운 인물을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수많은 영화 속에 전형적인 악역이 등장하는데, 그 전형적인 악역을 전형적으로 표현하면 전형적인 것에 머무는 것이고, 흔한 악역이지만 나만의 옷을 입히면 분명 관객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요. 그래서 최대한 그 안에서 차별을 주려고 노력했고, 감독님이 그것을 재창조한 거죠.”  

《돈》을 연출한 박누리 감독은 유지태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본을 쓰면서 상상했던 이미지가 있었어요. 멋있는 풍채, 목소리, 지적인 카리스마가 그것인데, 딱 떠오르는 사람이 유지태 선배님이었어요. 실제로 만나보니 대본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이미지였어요. 뭐랄까, 검은색 옷을 입고 걸어오는데 뒤로 후광이 비치는 거예요. 존재만으로도 공간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더 놀라운 건, 선배님이 첫 만남 때부터 대본을 다 외워 왔어요. 아무렇지 않게 툭 대사를 던지는데, 선배님 자체가 ‘번호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정공법을 쓰는 스타일이에요. 시나리오를 파는 스타일이죠. 그것을 기반으로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그리려고 하는 결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 많은 작품을 해 오면서 스스로 정의를 내린 것이긴 하지만, 연기는 분위기나 뉘앙스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돈》에서 목소리 연기가 압권이다.  

“사실 감독님에게 요청을 좀 드렸어요. 신을 최소화하고 음성을 늘리는 게 어떻겠느냐 하고요. 긴장감도 그렇지만 캐릭터도 더 매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악역이라 억지로 악역인 척 목소리를 내지는 않고, 부드럽지만 사람을 위협할 수 있는 느낌과 아우라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연기를 하면서 내가 좀 나이를 먹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힘 뺀 목소리에서 오히려 힘이 더 느껴질 것 같았거든요.”

패션이 의외였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슈트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편으로는 기존에 봤던 영화 속 악역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했죠. 사실 대본을 읽고 염두에 둔 캐릭터가 있었어요. 실존 인물이라 누군지 말씀을 드리진 못하지만 그분의 풍채가 굉장히 좋아요. 정장 핏이 굉장히 멋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파격적인 의상을 입게 됐죠. 뭐랄까, 잘못 입으면 좀 양아치스러운 의상요(웃음). 그 와중에도 품위가 느껴져야 해서 스태프들도 고심을 많이 했어요. 패셔너블하면서도 품위가 느껴져야 하는데, 그 밸런스를 감독님이 잘 잡아주셨어요.”

팀워크가 좋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사실 조우진씨, 류준열씨를 배우로서 좋아했어요. 류준열 씨는 영화 《소셜포비아》에서 실감 나는 연기를 보고 ‘아니 뭐 저런 양아치 같은 친구가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여러 작품들에서 자유자재로 변주하더라고요. 그 모습들이 인상 깊었어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는데 바른생활 청년이었고, 현장에서 재치 만점이었어요.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우예요. 조우진씨는 영화 《내부자들》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샤프하지?’라고 감탄한 기억이 있어요. 만나보고 싶었는데, 특유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더군요. 참 좋은 파트너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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