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열풍] ‘마블 열광’ 만든 두 개의 공식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5.10 08:00
  • 호수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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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법칙’과 ‘팬덤 경제학’
BTS 성공 스토리와 비슷한 흐름

자, 솔직해져 보자. 과연 어느 쪽인지. BTS가 왜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가. 5월5일 미국에서 월드투어를 시작한 BTS를 보기 위해 LA의 로즈볼 스타디움에 6만 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비한국어권 팬들이 야광봉을 흔들며 ‘한국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장면을 진정 이해할 수 있는가.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2관왕에 오른 것을 넘어 비틀스에 견주어지는 이 신드롬을 설명할 수 있는가. 

‘마블 열풍’은 어떤가. 전 세계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타이타닉》과 《아바타》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한국에서도 이 열풍은 뜨겁다 못해 무서울 정도다. ‘마블 마케팅’도 자동차·유통·통신·패션·식음료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거세게 불고 있다. 이와 같은 마블 열풍은 마치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스스로 점점 진화하는 모습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과연 이 신드롬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그런데 왜 1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 때는 이런 열풍이 불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라는 대사가 인기를 끌며 ‘갈비 치킨’이 반짝 유행한 것과 앞선 두 신드롬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역대 최고 흥행을 기록한 《명량》의 이순신과 열두 척의 배는 왜 ‘마블 열풍’처럼 되지 못했을까? 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 

5월8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어벤져스 대형 피규어가 전시되어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5월8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어벤져스 대형 피규어가 전시되어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될성부른 떡잎에 ‘올인’

마블 열풍은 BTS 신드롬과 맞닿아 있다. 두 현상은 묘하게 닮았다. 무엇보다 ‘성공 스토리’가 비슷하다. BTS의 성공 신화와 마블의 연타석 홈런에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수없이 나온 분석들 중 지금까지 간과돼 온 게 있다. 바로 ‘블록버스터 법칙’이다. 

‘블록버스터 법칙’은 될성싶은 ‘블록버스터급 콘텐츠’에 집중하라는 주문이다. 대중문화에서의 ‘선택과 집중’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돈이 되는 영화와 돈이 되는 스타에게 자원을 집중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역사상 최연소로 종신교수가 된 애니타 엘버스(Anita Elberse)가 처음 주창한 이론이다. 그녀는 “콘텐츠 제작자가 초대형 사업을 외면하면 장기적으로 실패 확률만 높인다”고 강조한다. 특히 “승자 독식의 시장에는 ‘평균’이 통하지 않으므로 다른 모든 산업 분야에도 블록버스터 전략이 스며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니타 교수는 블록버스터 법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추구하는 기업으로 바로 ‘마블’을 꼽았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제작비로 3억5600만 달러(약 4175억원)를 투입한 마블의 ‘무모한 결정’이 지금의 세계적 흥행몰이의 핵심이라는 설명인 셈이다. 그녀는 저서 《블록버스터 법칙》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남들이 듣는 음악, 남들이 읽는 책, 남들이 보는 영화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인기 높은 제품을 선호한다”며 “결론적으로 말해 블록버스터와 슈퍼스타에 투자하는 것은 합리적이다”고 설명했다. 

BTS를 키워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방시혁 대표의 전략도 ‘블록버스터 법칙’과 다르지 않았다. 실패한 여성 아이돌 그룹에 대한 미련을 일찍 접고 BTS에 모든 자원을 투입하며 ‘올인’했다. 단순히 아이돌 그룹 하나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BTS 글로벌 프로젝트’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기획을 추진해 나갔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략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5월8일 서울의 한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어벤져스를 예매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시장은 논리적이지 않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법칙은 ‘팬덤의 경제학’이다. 이 법칙은 ‘트랜스 미디어’ 세상에서 ‘블록버스터 법칙’과 결합해 더욱 강조된다. 트랜스 미디어란 트랜스(trans)와 미디어(media)의 합성어로, 미디어 간의 경계선을 넘어 서로 결합·융합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낳은 디지털 기술이 ‘승자 독식 콘텐츠’인 블록버스터와 결합해 더욱 대중들에게 가까이 간다는 것이다. 바로 팬텀 현상의 시작이다. 

팬덤은 오늘날 시장의 정체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의 가슴을 두드리는 이들만 살아남는다. 지금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한 유령은 팬덤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브랜드 전략가 제레미 홀든은 저서 《팬덤의 경제학》에서 재미있는 말을 했다. 바로 “시장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주장이다. 모든 기업이 팬덤을 원한다. 하지만 팬덤을 얻는 기업은 극소수다. 왜 그럴까. 

그에 따르면 팬덤을 만드는 핵심은 광신자·신봉자·신도의 세 집단을 차례로 사로잡는 것이다. 최초의 관심에 불을 지피는 광신자가 없다면 신봉자는 자기 의견을 내지 못한다. 그리고 신봉자의 신중한 보증이 없다면 신도는 좀처럼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세 집단은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수동적인 사람들까지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 팬덤은 네트워크 세상에서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마블과 BTS 신드롬을 잘 살펴보면, 이 관찰은 꽤 설득력을 가진다. 특히 ‘쏠림 현상’이 강하고 트랜스 미디어 시대가 개막한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실상 무한 정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은 본능적 편의를 위해 쏟아지는 정보들을 편집하고 삭제하며 구미에 맞는 정보만을 수용한다. 그렇게 ‘새로운 사실’을 창조한다. 그리고 동조자들과 결속해 자신의 의사결정이 틀릴 수 있다는 잠재적 불안감을 해소한다. 바로 ‘팬덤’의 탄생이다. 

물론 팬덤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브랜드(기업)와 소비자(팬) 간의 약속, 즉 일종의 ‘사회적 계약’이 있어야 한다. 브랜드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식대로의 선한 존재로서의 의무를 다하면 소비자들은 구매로서 이를 지지한다는 상호 약속이다. 바로 BTS가 그렇고, 마블이 그렇다. BTS가 ‘Love yourself(너 자신을 사랑하라)’라고 외치며 팬들과 꾸준히 소통하는 것이 바로 ‘상호 약속’인 셈이다. 팬들의 가슴을 울리는 한마디, 여기에 BTS의 세계적 신드롬이 담겨 있는 것이다. 마블도 마찬가지다. ‘마블 유니버스’는 팬들의 소망을, 불가능할 것 같던 소망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구축한 일종의 마블 팬을 위한 헌사와도 같다. 

자, 다시 솔직해져 보자. BTS와 마블처럼 되고 싶은가. 팬덤을 얻기 위해선 브랜드는 단순한 물건이어서는 안 된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울림 있는 존재가 돼야만 한다. 맞다. 이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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