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품은 중흥그룹, 대관 ‘갑’으로 거듭나나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5.22 08:00
  • 호수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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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그룹 측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인수”

재계 34위 중흥그룹이 헤럴드경제와 코리아헤럴드를 발간하는 헤럴드의 새 주인이 됐다. 중흥그룹은 홍정욱 헤럴드 회장과 헤럴드 지분 47.8%를 매입하는 지분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가는 양측 합의에 따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6월말 인수 절차가 마무리되면 중흥그룹은 헤럴드의 최대주주로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 홍 회장은 헤럴드의 경영지원을 위해 지분 5%만 유지하기로 했다. 중흥그룹이 밝힌 헤럴드 인수 배경은 미디어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언론을 통한 문화사업과 사회공헌 확장에도 양팔을 걷겠다고 했다.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 ⓒ 연합뉴스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 ⓒ 연합뉴스

중흥그룹은 ‘중흥S-클래스’ 브랜드를 앞세운 주택사업을 통해 급성장한 신흥 재벌이다. 2014년 자산총액 5조원을 넘기면서 대기업집단에 합류했고, 지난해 말 기준 자산총액은 9조5000억원대까지 불어났다. 그 결과 현재 중흥건설과 중흥토건을 비롯한 계열사 60여 곳을 거느린 재계 34위의 재벌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중흥그룹은 이 과정에서 확보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언론사 인수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헤럴드 인수 이전에도 광주 지역 일간지인 남도일보를 사들인 바 있다.

그동안 기업이 언론사를 인수한 사례는 적지 않았다. 기업 중에서도 유독 건설사가 많았다. 부영그룹은 한라일보와 인천일보의 최대주주다. TV조선에도 출자했고 2014년엔 한국일보 인수전에도 뛰어들었다. 태영건설은 SBS 외에 강원민방G1과 KNN부산경남방송 지분을 보유 중이며, 호반건설은 KBC광주방송의 오너다. 이 밖에도 두진건설(청주방송)과 SM그룹(UBC울산방송), SG건설(강원민방G1) 등은 모두 언론사를 소유하고 있다.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에 위치한 중흥건설 본사 ⓒ 시사저널 포토
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에 위치한 중흥건설 본사 ⓒ 시사저널 포토

건설사들이 언론사에 눈독 들이는 까닭

그렇다면 어째서 건설사들은 언론사의 주인이 되려 하는 걸까. 언론계에서는 건설업에서 언론사의 활용도가 높은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건설업 특성상 공공기관 발주사업 수주나 각종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대관(對官)의 비중이 높고, 각종 민원도 많다. 이런 가운데 언론사를 소유하게 되면 관할 당국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고, 민원 해결에도 동원할 수 있다. 언론사를 홍보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은 ‘보너스’다.

그런 사례는 적지 않다. 호반건설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호반건설은 2015년 광주시 서구 광천동에 48층 규모의 광주방송 신사옥 건립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광주시와 마찰이 생겼다. 광주시가 건축심의 과정에서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KBC광주방송이 나섰다. 뉴스 때마다 광주시를 비판하는 보도를 쏟아낸 것이다. 결국 사태는 광주시가 ‘백기투항’하고 호반건설에 건축 승인을 내주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SG건설은 언론사를 홍보의 창구로 활용했다. 강원민방G1을 통해 사실상 분양광고에 가까운 무리한 방송을 내보낸 것이다. 그 결과 강원민방G1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제재 대상이 됐다. SG건설이 공공자산인 전파를 사적으로 이용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방심위는 당초 방송법상 최고 수위 제재인 과징금을 건의했지만 강원민방 기자들에 대한 불이익이 우려돼 법정제재 경고 조치를 내렸다.

이처럼 건설사의 언론사 활용도는 높다. 반대로 사주의 필요에 따라 움직일 경우 언론사는 논조가 전환되거나 공정보도 원칙이 침해되는 등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부영그룹이 인수한 인천일보가 그랬다. 인천일보는 부영그룹이 인천에 추진 중이던 송도테마파크 건립 사업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러나 2017년 5월 부영그룹에 인수된 직후 인천일보의 논조는 ‘송도테마파크 사업이 인천 발전을 견인할 것’이라는 취지로 바뀌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선행이나 아파트 분양 소식 등 홍보성 기사가 쏟아졌다. 인천일보 노조는 이에 대해 ‘낯 뜨거운 부영찬가야말로 해사 행위’라고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중흥그룹이 인수한 남도일보도 다르지 않았다. 2017년 1월부터 5월까지 남도일보 홈페이지에는 ‘중흥건설’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기사가 총 14건 게재됐다. 이 가운데 홍보성 기사는 단 2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중흥그룹이 남도일보를 인수한 2017년 5월부터 올해 5월16일 현재까지 ‘중흥건설’이 언급된 기사가 300개 이상이었다. 대부분 중흥건설이 분양하는 아파트에 대한 홍보나 사회활동을 부각하는 등 긍정적인 내용 일색이었다.

중흥그룹은 헤럴드경제 인수를 발표하며 편집권 독립과 자율경영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헤럴드경제에서도 벌써부터 중흥그룹의 영향력이 감지되고 있다. 과거 작성된 중흥건설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우호적인 내용으로 뒤바뀐 것이다. 물론 새 주인에 대한 예우 차원의 자발적인 움직임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내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건설사를 사주로 둔 언론사 기자들이 사업권이나 인허가 문제를 두고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하거나 민원 관련 ‘해결사’로 동원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건설사를 새 주인으로 맞게 된 언론사 구성원들의 집단 반발이 빈번히 벌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해 11월 UBC울산방송 노조는 SM그룹의 인수를 반대하며 매각 원천무효를 주장한 바 있다. SM그룹이 아파트 건설과 SOC 건설사업 등에 방패막이로 내세우기 위해 영향력 있는 지역 지상파 방송사를 인수하려 한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UBC울산방송은 올해 3월 방송통신위원회가 인수를 승인하며 SM그룹에 넘어간 상태다.


중흥 “사업 편의 위한 언론사 동원 없을 것”

이와 관련해 중흥그룹 관계자는 “주력사업인 주택사업이 한계를 맞거나 침체기에 빠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판단에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헤럴드 인수를 결정한 것”이라며 “건설업은 물론 이전에 인수한 남도일보와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언론사를 통해 홍보를 진행할 수는 있겠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의 편의나 민원 해결에 헤럴드경제를 동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헤럴드경제에 노조가 있어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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