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유치 포기’ 잡음 끊이지 않는 이유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1 10:00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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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공동개최 앞세워 “여자월드컵 유치 올인”…‘평창 女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 재연도

지난 5월15일 대한축구협회는 2023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유치 신청을 철회했다고 발표했다. 아시안컵 유치는 정몽규 현 대한축구협회장이 줄기차게 추진해 온 아시아 최고 권위의 대회다. 아시아 축구 맹주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은 1964년 이후 50년 넘게 아시안컵을 들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UAE에서 열린 2019 아시안컵에서 손흥민을 내세워 우승에 도전했지만 카타르에 막혀 8강에서 탈락했다. 그러자 축구팬들 사이에서 “아시안컵 유치를 통해 우승을 노려야 한다”는 요구가 더 높아졌고, 대한축구협회도 2023 아시안컵 유치 의지를 강력하게 천명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돌연 포기 의사를 밝힌 것이다.

아시안컵 개최국을 결정하는 AFC 임시총회를 20일 남기고 한국이 철회를 결정하며 후보지는 중국 혼자만 남아 사실상 투표가 무의미해졌다. 이미 8개의 유치 희망 도시까지 정했던 상황이지만 일순간 철회가 결정 난 것이다. 대신 같은 해 열리는 FIFA(국제축구연맹) 여자월드컵 유치에 집중하기로 했다. 전한진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은 “아시안컵과 여자월드컵의 일정이 겹쳐 선택이 필요한 시기”라며 “국제 축구계 동향 등을 다각도로 검토한 결과 여자월드컵에 전략적으로 집중하기로 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축구 여자대표팀선수들이 경기도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달리며 몸을 풀고 있다. ⓒ 연합뉴스
축구 여자대표팀선수들이 경기도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달리며 몸을 풀고 있다. ⓒ 연합뉴스

‘어차피 중국에 이기기 어렵다’는 현실론 작용했나

대한축구협회가 아시안컵 유치를 포기하고 여자월드컵 유치에 올인한 표면적 이유는 선택과 집중이다. 여자월드컵은 남자월드컵처럼 6월 개최가 원칙이다. 아시안컵도 한국·중국 같은 동아시아에서 열리면 6~7월에 개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두 대회의 개최 시기가 겹칠 경우 국내 축구 인프라가 한계치에 도달해 감당할 수 없었고, 축구협회는 여자월드컵을 최종적으로 잡았다.

하지만 아시안컵을 포기한 데는 현실론도 강하게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국 축구의 외교력이 AFC 내에서 점점 밀리는 상황이다. 아시안컵 개최지는 AFC 소속 47개 회원국 투표로 결정되는데, 그 바로미터가 될 수 있는 지난 4월 AFC 총회에서 정몽규 회장은 빈약한 지지 기반만 확인했다. FIFA 평의회 위원과 AFC 부회장에 도전했지만, 모두 고배를 들었다. 5명을 뽑는 FIFA 평의회 위원 선거에서는 7명의 출마자 중 6위에 그쳤다. AFC 내 영향력이 높은 카타르·중국·일본은 물론 필리핀·인도·몽골에도 밀려 충격을 줬다. 국제 축구 정세에 밝은 축구인들은 예견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확실한 지지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셰이크 살만(바레인) AFC 회장과 그의 조력자인 카타르에 반발하는 정치적 판단 미스를 범했기 때문이다. 정몽규 회장은 소신과 원칙을 강조했지만 축구 정치와 외교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AFC의 표심을 간접적으로 확인한 상황에서 중국과 2파전이 된 아시안컵 유치 경쟁은 어려움이 예고된 상황이었다. 자칫 또 한 번의 외교적 망신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한축구협회는 남북 공동개최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며 여자월드컵 유치로 방향을 돌렸다. 2016년 7월 축구협회장 연임에 성공한 정몽규 회장의 임기는 2020년 12월까지다. 3선 도전 의지를 갖고 있지만 국제 외교력과 정치적 입지를 상실해 물음표가 붙었다. 최근 제2 NFC로 불리는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건립을 추진하며 어느 정도 분위기를 환기시킨 정 회장은 여자월드컵 유치라는 외교 성과로 3선 발판을 마련하고 싶어 한다.

여자월드컵 올인이라는 결론 뒤에는 정부와 FIFA가 지원할 것이라는 기대가 숨어 있다. 국제대회 유치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여자월드컵은 남북 공동개최라는,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최대 명분을 내세우는 게 가능하다. 한반도 평화무드 조성에 집중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매력적인 요소다. 그동안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남북 단일팀, 남북 공동입장은 있었지만 남북 공동개최는 아직 실현되지 못한 사안이다.

FIFA도 남북 공동개최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이 아예 지난 3월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열린 국제축구평의회(FIBA) 회의에서 “남북한의 2023년 여자월드컵 공동유치는 굉장한 일이 될 것”이라며 선제안을 했다. FIFA의 의도는 조금 다르다. 인판티노 회장은 취임 후 FIFA 주관 대회의 상업성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26년 대회부터 월드컵 본선을 현 32개국 체제에서 48개국 체제로 확대하는 것이 확정됐다. 수익 중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중계권 규모를 키우고, 중국과 인도 등 거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차원이다. FIFA 클럽월드컵도 2021년부터 24개 팀 참가로 확대된다.


“정치적 이벤트에 그칠 것” 비판적 전망 많아

FIFA와 인판티노 회장의 그런 계획에서 최대 장애물은 여자월드컵이다. 중계권과 상금 규모에서 남자월드컵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상업성이 저조하다. 여자월드컵에 기폭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인판티노 회장이 주목한 것은 남북 공동개최다. 2017년 6월 청와대를 방문했던 인판티노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남북 공동개최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호주 등과 경합 중인 여자월드컵 유치는 단독개최로 갈 경우 밀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남북 공동개최가 전제되면 FIFA는 한국 개최로 적극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정부 반응도 호의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내용을 전달받았다. 공식 논의는 없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 중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부작용과 비판도 만만찮다. 평화라는 명분을 이용해 스포츠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FIFA의 영원한 불문율을 위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단일팀 수준이 아닌 공동개최는 대북 경제제재 위반과 닿을 가능성이 커 유치 경쟁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반발을 살 수 있다. 국내 축구 팬덤도 아시안컵을 통한 실익을 손쉽게 포기하고, 명분밖에 없는 여자월드컵에 집중하는 데 큰 지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남북 단일팀 구성을 놓고 진통이 적잖았던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 정신이나 평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대의에 의해 개인의 노력이 희생된 데 대한 국내 반발 여론이 컸다. 실제로 논란에 비해 성적이나 관심은 크지 않아 정치적 이벤트라는 지적도 존재했다.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개최 실현 여부의 키를 쥔 북한의 반응이 미온적이라는 것도 변수다. 지난 3월 대한축구협회가 공식 신청에 앞서 제출하는 유치 희망 의향서를 공동개최를 전제로 냈다. 향후 공식 신청 때는 북한도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FIFA 주관 대회 유치 경험이 없고, 아직 폐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는 북한이 결단을 내리기 위해선 결국 고위층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자칫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여자월드컵 유치마저 놓치게 된다. 2023년 여자월드컵 개최지는 내년 3월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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