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에 분노하며 ‘걸캅스2’를 상상한다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1 16:00
  • 호수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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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죄의식 없는 디지털 성범죄 방조자들

버닝썬 유착 수사가 무혐의로 종결되고 양진호가 불법동영상 유포 혐의를 뺀 채로 기소된다는 소식에, 분노가 쌓이고 있다. 공권력은 이런 범죄들 앞에 왜 무기력한가. 아니 진짜 무기력한 것일까? 영화 《걸캅스》를 보면서 잠시 느꼈던 시원함이 도로 고구마 먹은 기분이 된다. 

답답한 마음에 걸캅스 2탄을 상상해 본다. 때는 바야흐로 바로 지금, 이상한 사건이 자꾸 벌어진다. 양장미(카이스트 출신 전직 국정원 직원 겸 성산경찰서 민원실 전산담당)는 그날도 취미 삼아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데, 갑자기 함께 게임하던 사람들이 화면에서 자꾸 사라진다. 접속이 끊기는 것이다. 한두 명이 아니다. “이거 뭔가 수상쩍은 냄새가 나는데?” 장미는 사라진 게임 멤버 중 한 명과 어렵사리 연락이 된다. 그는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갑자기 폰이고 컴퓨터고 먹통이 되었는데 복구가 안 돼.” “내 친구들도 다 그랬대.” “무슨 바이러스 감염된 거 아냐?” 사건의 진실은, 어둠 속의 해커가 디지털 성범죄 동영상을 가장해 사이트마다 클릭하면 단숨에 해당 기기를 파괴하는 강력한 바이러스를 심어둔 것이다. PC방에서 수사정보 수집차 동영상을 검색하던 장미는, 자기 눈앞에서 PC방 컴퓨터가 망가지는 모양을 보고 경악한다. 장미는 직감적으로 이 사건이 누구의 행위인가를 깨닫는데….

장미의 국정원 동기이던 A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되어 직장을 그만두고 사라져버렸다. 동양 제일의 해커였던 그녀가 잠적했을 때 장미는 “니 잘못 아니야”를 애타게 외쳤지만, 직장 동료들까지 그 동영상을 돌려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된 장미는 그러잖아도 환멸스러운 직장을 더 다닐 수가 없었다. 바로 그 A가 자신에 대한 직접 가해자뿐 아니라 동영상을 돌려본 모든 실제 가해자들을 응징하기로 한 것이다. 대한민국 집집마다 컴퓨터 모바일 폭파되는 소리가 킹스맨 폭죽 터지듯, 열혈사제 설사 터지듯 난다.

영화 《걸캅스》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걸캅스》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죄의식 없는 디지털 성범죄 방조자들

고민하던 장미에게 A에게서 연락이 온다. A를 추적하던 국내 굴지의 동영상 웹하드 소유자가 킬러를 고용한 것이다. 한편 직장에서 몰래 디지털 성범죄 동영상을 보던 자들 때문에 국가 기간전산망이 다운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A는 정부로부터도 수배되는 처지가 되어 버린다. 이때부터 A를 지키려는 걸캅스의 활약이 시작되고, 남성 중심의 경찰이 A를 보호하는 데 미온적임에 분노한 이들은 경찰직을 내놓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A를 지키기로 한다.

한편 장미는 A와 합심해 끝도 없이 생겨나는 자칭 ‘야동’ 사이트들에 동영상 파일을 가장해 바이러스 심기를 계속한다. 이들은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해서, 유사 동영상을 3회 이상 클릭한 사람들의 컴퓨터만 망가뜨리는 걸로 온정을 베푼다. 화면이 뜨면서, 하나 봤지? 너의 컴퓨터 속도가 느려질 거야. 두 개를 보면 개인정보가 유출돼. 세 개를 보면 컴퓨터 CPU가 불타버릴 거야. 너는 어느 동영상이 바이러스인가를 알 수 없어. 이미 1000개 이상 심었어. 두 번 다시 디지털 성범죄에 가담하지 않는 것만이 너에게 남은 구원일 거야. 다른 사이트 간다고 피해 갈 것 같니? 거기도 다 심어놨어 야.

킬러들의 추적과 국가의 수사망 양쪽을 피해야 하는 A와 장미, 그들을 경찰 몰래 보호해야 하는 투캅스2는 성공할까? 구하라‘들’의 극단적 선택에 아무 책임이 없는 척하는 동영상 소비자들에게 이 영화를 바치고 싶다. 일단 《걸캅스》 1탄부터 천만 영화 되시고. #WEAREWITHYOUH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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