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여론 악화될라…'탄도미사일 딜레마' 빠진 정부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6.0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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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北미사일 '이스칸데르'와 유사…분석 중"
'탄도미사일' 여부엔 "분석 중" 답변 회피
'대북 식량 지원' 빼든 정부 입장 난처해져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또 한 번의 고비를 맞았다. 발목을 잡은 것은 지난달 북한이 발사한 ‘의문의 발사체’다. 당초 북한의 발사체를 두고 정부는 “(미사일로) 단정짓기 어렵다”며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한 바 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의 군과 정보당국은 북한이 지난달 4일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를 20여 일간 분석 끝에 '단거리 미사일'로 결론 내렸다. 한미가 북한 미사일을 '탄도미사일 범주'에 포함할지 여부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대북 식량지원 카드를 꺼내 든 정부의 입장은 난처해졌다. 가뜩이나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언급하며 대북 지원안에 날을 세우고 있던 보수진영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어서다.

북한 단거리 미사일 추정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단거리 미사일 추정체가 이동식 발사차량(TEL)에서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 "북한 발사체, 미사일 맞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4일과 9일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는 거의 같은 종류의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밝혔다. 아시아안보회의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정경두 장관은 1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동발사대가 "차륜형과 궤도형의 차이가 있어 분석하고 있는 단계인데 거의 유사한 종류로 본다"며 이 같이 말했다.

국방부와 합참은 정 장관의 공개 전까지도 5월4일 발사체가 단거리 미사일인지에 대해서는 "정밀 분석 중"이라며 ‘단거리 발사체’라는 모호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발표를 통해 지난 북한이 5월에 두 차례 쏴 올린 발사체가 미사일이란 사실을 국제사회에 천명한 셈이다.

다만 한미 군과 정보당국은 이들 미사일을 '탄도미사일 범주'에 포함할지, 이스칸데르급과 비행특성이 유사한지에 대해서는 정밀 분석 중이라는 입장을 계속 유지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차례 발사된 단거리 미사일의 고도가 낮았고, 사거리도 탄도미사일인 스커드-B(사거리 300㎞) 또는 스커드-C(사거리 500㎞)보다 짧았기 때문이다. 정 장관이 이날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의도를 ‘과잉 해석’하는 것을 염려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정 장관은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북한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대화로 풀어가려는 분명한 생각은 갖고 있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미국의) 정책 변화를 바라는 부분이 있고, 한국도 북한에 대해서 중재자, 촉진자 역할보다 실질적인 당사자로서 적극적으로 북한문제 해결에 나서달라는 주문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 내부적으로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따른 부담감을 안고 있고 때문에, 대내 체제결속을 바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악화된 여론에 '대북 지원안' 흔들

일각에선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을 탄도미사일로 규정하는 것을 고의로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정밀 분석’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북한의 미사일 이슈를 지우기 위해 고의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실제 미국 백악관은 북한의 미사일을 ‘어떤 미사일’로 분류할 수 있는 지 검토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지난달 30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 외교관라운드테이블에서 "미국은 북한이 어떤 종류의 무기를 발사했는지 명확히 알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정략적인 이유로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정의를 밝히지 않고 있는 셈이다. 행여 백악관이 북한 미사일을 탄도미사일이라 공인한다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올스톱’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전면중단을 강제하고 있어서다.

2006년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1718호는 북한에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행하지 않도록 요구했다. 2017년 12월에 채택된 결의 2397호도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이나 핵 실험, 또는 그 어떤 도발을 사용하는 추가 발사를 해선 안 된다는 (안보리) 결정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했다. 만약 북한의 미사일이 탄도미사일로 확인될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추가제재를 받을 수 있다.

통일부는 남북 긴장국면이 다시금 조성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달 31일 “정부가 다음 주 국제기구를 통해 식량 5만 톤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을 당시, 통일부가 “확정된 바 없다”며 난색을 표한 것도 ‘여론 눈치 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국내 대북 여론이 좋지 않은 가운데, 대북 지원책을 다시금 꺼내들었다가 ‘북한 퍼주기 논란’에 휩싸일 수 있어서다.

결국 문재인 정부로서는 딜레마다. 지난달 9일 문 대통령은 "북한의 식량난은 10년 새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면서 "북한 동포의 심각한 기아상태를 외면할 수 없고, 동포애나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우리가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같은 공언을 뒤집는 다면, 진보 진영 내부에서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31일 북한 농업·식량 전문가인 권태진 GS&J 북한동북아연구원장은 제26차 통일한국포럼 발표문에서 "북한의 금년 식량 부족량에 대해서는 전문가 별로 의견이 갈리지만, 최근 10년 내 (올해) 식량난이 가장 심각하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며 대북 지원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야당의 한 3선 국회의원은 “어차피 (문 대통령은) 북한에 지원을 해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지지층 호응을 얻을 수 없고, 자신을 공격하는 쪽(보수 진영)의 말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국제 사회가 정한 선이 있는데, 그걸 자기 마음대로 넘나들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해도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어서 아마 머리가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오는 3일 오후 청와대에서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을 접견한다. 문 대통령은 섀너핸 대행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면서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뒷받침해줄 것을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과 섀너핸 대행이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발사체 및 미사일의 성격을 두고 어떤 대화를 나눌 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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